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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Oct 09. 2021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인간은 의연해야 한다



고양이들은 토를 자주 한다. 그들의 일상에 그루밍은 필수이며 그렇게 혓바닥에 걸려 목구멍으로 넘어가 속에 뭉친 털이 입으로, 변으로 나오기도 한다. 사료 토, 공복 토, 헤어볼 토 등 토의 이유도 다양하다. 나는 특히 솔이 토를 할 때 온 감각 기관이 곤두서는 편인데, 과거 모종의 사건들 때문이다. 


3년 전, 삼월과 원룸에서 지낼 때였다. 근래에 친구가 고양이들이 좋아한다는 캣그라스를 선물해 주었고, 베란다에 화분을 두었더니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나도 솔도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캣그라스는 고양이 풀이라고 하여 고양이가 먹을 수 있는 풀이다. 귀리나 보리, 호밀 등과 같은 식용 곡물의 잎사귀다. 풀을 먹고 토를 함으로써 미처 흡수되지 않은 불필요한 음식들을 바깥으로 배출할 수 있다고 하더라. 마찬가지로 솔도 풀을 와삭와삭 맛나게도 씹었다. 후식처럼 풀을 뜯어먹는 게 몹시 기이하긴 했어도 해가 되지 않는다기에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솔이 풀을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삼켰고 평소처럼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솔의 등줄기가 바짝 서며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그리고 또 한 번. 텅 빈 내용물을 확인함과 동시에 아이가 쓰러졌다. 픽 고꾸라지더니 누군가 억지로 잡아당기는 것처럼 뒷다리가 길게 펴졌다. 나와 삼월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이가 놀란 눈으로 우릴 올려다봤다. 타일 바닥에 누운 채로. 제 힘으로 일어나려 비척거리는가 싶다가 또 옆으로 쓰러졌다. 마비 증상이었다. 몸이 제 뜻대로 되지 않아 버둥거리는 고양이를 두고 나는 발을 굴렀다. 처음 겪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의 확장된 동공에 내 얼굴이 거울처럼 비추고 있었다. 그 상태로 아이 숨이 멎을까 두려웠다. 정작 삼월은 평온했다. 차분하게 솔과 나를 달랬다. 


“괜찮아, 솔이야. 일어나. 천천히 일어나 봐.”


삼월이 낮고 다정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이윽고 헐떡이던 아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도 아이는 한참을 넋이 나간 채로 제자리에 동상처럼 서 있었다. 삼월은 우리가 놀라 호들갑을 떨면 아이가 겁을 먹고 당황할까 싶어 애써 침착했다고 한다. 일순간 휘발된 내 이성을 다잡아 주고 재빨리 현실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그토록 감정적으로 지혜로운 이가 곁에 있어 행운이었다. 솔이 진정된 후 병원을 찾았다. 선생님께서는 특발성 마비 증세일 거라고 하셨다. 간혹 어떤 이벤트(일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 목욕, 미용 등.)가 벌어졌을 때 마비가 오는 경우도 있다고. 솔에게는 이것이 토였을 거라며. 추후 증상이 반복되는지 확인 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셨고, 다행히 그 후로 솔이 쓰러지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날 이후 집안에 식물을 들이지 않는다. 


같은 해 말, 솔이 위염에 걸린 적이 있다. 구역질 횟수가 늘어났다. 아이는 새벽에도 내내 나오지도 않는 내용물을 토하기 위해 잠도 자지 못하고 몸을 들썩였다. 그날도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이고 잠시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온 집안이 묽은 피 투성이었고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온갖 불길한 생각들이 화마처럼 번졌다. 죽어있으면 어쩌지. 솔이 더 이상 나와 같은 세상에 살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 애를 어떻게 보내주지. 지금 생각해 보면 별 쓸데없는 생각이라 민망해지기도 하지만, 그 순간은 1초가 지옥과도 같았다. 구석구석 살피다 옷장 안에 둥글게 몸을 말고 있던 아이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비로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우리 기억 속에는 그 사건이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아이는 여전히 건강한 고양이답게 토를 자주 한다. 그중 정신이 쏙 빠진 얼굴을 하는 때가 있다. 든 것 없는 노란 분비물을 뱉어낼 때 유독 그런다. 한 번, 그리고 두 번까지 횟수가 넘어가면 당황해 어쩔 줄 모르고 도망치듯 집안을 누빈다. 괜찮아질 때까지 우리 손길을 거부하고 구석으로 들어간다. 혀가 빼꼼 나와 맑은 침을 뚝뚝 흘리면서. 그럴 때는 솔의 길게 뻗은 꼬리가 바닥을 툭, 툭 내리치는 걸 보며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린다. 꼬리가 움직임을 멈추고 바닥을 짧게 쓸면 안심해도 좋다는 의미이므로. 침묵을 닮은 시간 속에서 작게 오르내리는 아이의 등을 바라보며 허튼소리가 새어 나갈까 입을 다물곤 한다. 그 애를 달래기 위해서는 내가 의연해야 한다는 걸 잘 아는 까닭이다. 괜찮아, 괜찮아. 나 자신에게도, 솔에게도 작게 읊조린다. 그럼 정말 괜찮아진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괜찮다고 말하면 마법처럼 모든 게 괜찮아지길. 


나는 종종 삶을 살며 내 인생이 혹시 누군가가 꾸민 쇼의 코너 중 하나는 아닐까 생각해 보곤 한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처럼 말이다. 쇼의 창시자는 내가 망하길 바랄까, 행복하길 바랄까. 내게 주어진 선택지들이 많은 갈등을 초래할 때마다 이름 모를 창시자의 의도를 간파하기 위해 신경을 날카롭게 다듬는다. 내 앞에 놓인 투명한 허들이 얼마나 높든 상관없다. 뛰어넘든, 돌아가든 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확신컨대 내게 허울 좋은 비극을 선사하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생명들을 쇼에서 빼 버린다면 나는 하릴없이 무너질 것이다. 기꺼이 함락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그들이 내 곁에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란다. 그 순간에도 괜찮다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아주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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