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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Oct 29. 2021

고양이 네 마리, 한 달에 얼마 드냐면요

많이 들어요


종종 그런 질문을 받는다.


고양이 네 마리 키우면 한 달에 얼마 들어요?


고정지출로 분류되는 모래 대략 5 만원, 사료 5. 4킬로짜리 6 만원 안팎. 두어 달에 한 번씩 간식과 장난감 지출 비용 약 5 - 6 만원. 이렇게 들으면 생각보다 금액이 적다고 할 수 있지만 그건 고양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이전에 한 마리가 링웜에 걸려 네 마리가 돌아가며 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한 마리 당 진료비 5 만원이라 치면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기 위한 초기 비용도 따져봐야 한다. 화장실, 캣 타워와 식기 등을 했을 때 얼마나 좋은 것을 사느냐에 따라 금액은 50 만원을 훌쩍 넘을 것이다. 카드 한 번 긁을 때마다 통장 속 0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이런 것들을 알고 시작하는 것과 모르고 시작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와 고양이 모두 함께 늙어가는 처지다. 그들의 시간은 우리보다 한 수 앞서 나갈 테고, 조금이라도 젊은 우리가 그들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 사태가 생긴다. 대한민국에 의료 민영화가 도래했을 때가 궁금하다면 동물병원에 가 보면 된다고들 하듯, 작은 진료 하나에도 돈이 많이 든다. 나는 아이들이 늙고 큰 병을 앓게 됐을 때,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싶지 않다. 고로, 아이들이 아플 시점에라도 넉넉한 형편을 가꾸어 놓아야 한다. 언제인지 모를 어느 날의 미래에 치료비를 전해 듣고 놀라지 않기 위해, 카드를 내미는 손이 단 1초라도 망설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염두하며 계좌를 채워야 한다. 다시 돌아가서, '고양이 네 마리 키우면 한 달에 얼마 들어요?'라는 질문에 간혹 뜻 하나가 숨어있다. '한 마리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네 마리 케어에 이 정도고 한 마리는 4분의 1인 꼴이니 비용적인 면에서도 훨씬 가볍지 않을까 하는 안이함. 괜찮지 않다. 작은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오면 대개 식기도 화장실도, 아이가 쓰는 가구도 몸집에 맞춰 작은 것으로 준비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몸이 커지면 그에 맞게 튼튼하고 큰 물품들로 바꿔줘야 한다. 때에 따라 영양제도, 습식 캔도, 좋은 칫솔과 치약, 샴푸도 구입해야 한다. 일 년에 한 번씩 백신 주사도 맞혀야 한다. 습한 여름에는 피부, 건조한 겨울에는 감기. 그러다 갑자기 복막염 같은 큰 병이라도 걸리면? 결코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 각오도 변질되기 쉽다. 기대가 낳은 실망은 굳건해진다. 그렇게 파양을 한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고양이가 귀엽거나 본인이 외로워서 고양이를 데려 온다. 사랑과 끈기가 결합되어야 한다. 키우지 말라는 게 아니다. 많은 상황을 고려하고 충분한 여유를 갖고 고민해야 한다. 참, 단순히 동물이 귀엽거나 본인의 외로움을 달래려는 목적으로 입양을 고려하고 있다면 포기하라. 동물은 유튜브로 보고 외로움은 사람으로 달래라.


식구를 늘린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만 고양이 네 마리가 따로 용돈 벌이를 하는 것도 아닌지라 나와 삼월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추석, 본가에 갔다가 온갖 걱정과 타박을 한 바가지로 받고 온 덕에 돈에 대해 생각을 하는 시간이 늘었다. 알고 봤더니 우리 부모님과 내 동생은 재테크에 관심도 많고 수익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가진 게 없더라! 엄마가 어디 주식 사라고 할 때 살걸 그랬다. 후회해봐야 상층권에서 놀고 있는 그 주식들을 지금 당장에 살 수도 없다. 내년 5월이면 현재 살고 있는 오피스텔 계약이 만료된다. 엄마는 내게 언제까지 월세 살이를 할 거냐며 전셋집을 알아보라고 했다. 필요하다면 전부는 아니어도 보증금 일부를 지원해주겠다고도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부산으로 돌아와 현재 살고 있는 동네 전세 시세를 알아봤다. 나와 삼월이 갖고 있는 돈으로는 턱도 없었다. 턱걸이도 못할 금액이었다. 그렇다고 싼 동네를 찾자니 회사와 멀어지고 교통편도 불편해지는 거다. 이럴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던 유년기로 회귀하고만 싶고, 그때에도 어른이었던 우리 부모님은 대한민국에서 자식 둘을 키우며 살기 위해 얼마나 골머리를 싸맸을지 떠올리면 머리가 아득해진다. 어른이 되고 싶어 된 것도 아니고 살다 보니 나이를 먹은 것뿐인데 아직 징징거리고 싶기만 한 내게 세상은 너무 가혹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다시 태어나려면 죽어야 하는데, 죽을 수는 없으니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얻기 위해 뭐든 해 봐야 한다. 따라서 내년에는 대출이라는 것을 받아볼 생각이다. 결국 우리는 빚을 지고 살며 빚을 갚고 죽어야 하는 쳇바퀴 위에 덜렁 놓인 것 같다. 자본주의의 순리는 참 이상하다. 집 살 돈이 없어 월세를 사는데, 또 몇 년간 집을 빌려 살자니 그것도 돈을 빌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빈익빈 부익부. 내가 그중 ‘빈’을 맡고 있다니. 사회 책에서 배웠던 단어들은 더 이상 책 속에만 존재하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성인이 되고 통감한다. 가뜩이나 없어 죽겠는데 갖다 바쳐야 할 돈은 눈두덩이처럼 불어난다. 기세를 모르고 커진다. 그 와중에 고용주는 어떻게든 적은 돈으로 최대한의 노동력을 갈취하기 위해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을 갖다 붙인다. 불평등의 역사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거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비관적인 시각으로 우리 인생을 바라볼 수만은 없다. 빈익빈에서 '빈' 한 자라도 떼어버리기 위해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연 채 세상을 탐구해야 한다. 나 자신을, 동물을, 아이를 부양하는 많은 이들, 우리 모두 돈 앞에 절망하지 않아야 한다. 갈 길이 멀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 우린 아직 사랑할 게 너무도 많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행복이 널려있다. 오늘도 열심히 돈 번 당신, 수고했다. 나도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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