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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Feb 04. 2022

Too Good

너희로부터 우리가 존재할 때


새벽 4시, 잠을 자다 이유 없이 깨는 날이 있다. 언제였는지 모를 지난 새벽이었다.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눈꺼풀이 아주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시야는 깜깜했고 맞추어 놓은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이라는 걸 깨닫고 탄식했다. 때마침 내 왼쪽 허벅지 옆에 드러누워 자고 있던 막내가 인기척에 깨어난 건지 고개를 들었다. 컴컴한 어둠 안에서 새까만 동공과 마주쳤다. 동그란 형체가 노곤하고 따뜻한 숨을 내뱉고 있었다. 그 애는 어슬렁 일어나 내 팔과 옆구리 사이에 풀썩 자리를 잡고 누웠다. 그리고는 내 팔에 통통한 뺨을 대고 다시 눈을 감았다. 한숨처럼 웃음이 번졌다. 따뜻한 몸을 덮고 있는 검은 털을 쓰다듬으며 나도 눈을 감았다. 고롱고롱. 몸체가 나른한 숨을 내쉬느라 오르내렸다. 잔잔한 움직임과 숨소리가 새벽을 데웠다. 평온에 잠식되어 숨이 가쁠 정도였다. 나는 그 순간, 이상하게도, 몹시 새삼스럽게도 그 애의 곁을 영원히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뜬금없었다. 그런 다짐이 없어도 나는 그 애의 옆을 영영,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을 텐데. 사랑이 해일처럼 덮쳐오는 순간엔 속수무책이다. 그 순간은 아주 사소하고도 일상적이다. 이런 순간이 처음은 아니었다. 비단 나 혼자 그런 순간을 맞이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 풀을 데려왔을 때, 그때만 하더라도 삼월은 풀보다 솔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이방인이 달갑지 않아 예민해진 솔을 더 걱정했다. 그녀가 솔을 계기로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었다고는 하나, 그러면서도 솔과 나 사이에 허물 수 없이 두터운 유대감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솔은 그녀에게 ‘우리의 고양이’가 아니라 ‘이재의 고양이’였다. 그런데 어린 풀이 집에 적응하면서부터, 사람의 온기를 깨닫고 필요로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삼월도 변화를 느꼈다. 풀은 유독 삼월을 따랐다. 잠을 자기 위해 불을 끄면 솔은 제가 좋아하는 책장 위에 자리를 잡았고 풀을 혼자 놀다가도 달려와 삼월의 다리 사이를 선점했다. 어떤 날은 그녀의 품에 비스듬히 기대 골골 노래를 불러대기도 했다. 그러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자그마한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작은 갈비뼈 안에 콩닥거리고 있는 그 심장이 멈추는 날까지 그 애를 사랑해야겠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아이들이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우리를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다. 천천히 스며드는 빗물처럼, 반복하다 보면 생기는 습관처럼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자라고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종류는 무한하며 생각보다 사랑은 내 주변 곳곳에서, 아주 작은 부분마저 점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고양이들에게 느끼는 사랑을 무엇이라 명할 수 있을까.      

     

설을 맞아 나 홀로 본가에 다녀왔다. 고양이가 없는 집에 가니 종일 누워 책을 보거나 잠을 자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전을 부칠 때 말고는 빈둥빈둥 지냈다. 일주일 전 도배를 새로 해 낡은 세월을 벗어던진 방에 혼자 누워 잠을 잤다. 넓은 침대. 세탁한 지 얼마 안 된 이불에서는 섬유유연제 향이 푸근하게 스며 있었고, 새벽은 조용했다. 그럼에도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악몽을 꿨다. 꿈은 드문드문, 옴니버스 형식으로 나를 괴롭혔다. 한 챕터 끝에 내가 깨어났다가 다시 잠에 들면 새로운 챕터가 시작됐다. 기억에 남는 것은 누군가를 피해 지하실로 숨어들었던 꿈이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서야만 겨우 문이 닫히는 벽장 틈, 문의 걸쇠를 잠그자마자 문 중앙이 휑하니 뚫리더니 매섭게 찢어진 두 눈이 가까워졌다. 주먹을 쥐었으나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겁에 질린 내가 꿈에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쥘 것도, 매만질 것도 없었다. 뒤흔들리는 불안감을 잠재울 것이 없어 한동안 멀뚱히 천장을, 밝아오는 창밖을 속절없이 바라봐야만 했다.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내 삶에서 고양이란 사랑을 넘어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하물며 보송한 털끝이 잠든 침대 맡마저 그리워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고양이 네 마리와 살며 알레르기가 생겼고 천식 치료를 받았으며 퇴근 후 바로 내 할 일을 하지 못 한다. 명절에는 각종 염려 어린 말속을 유영해야 하며 통장은 질끈 허리끈을 졸라매야 한다. 허나 이 모든 것들이 손해라고 생각되지 않는 까닭은 상응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갖가지 자질구레한 것들을 가뿐히 넘길 수 있을 만큼의, 그다지 큰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의. 실보다 득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이 내 양분이 되었다는 것을. 삶의 원천이, 원동력이, 이유가 되었다는 것을. 누군가는 이들이 우리 삶에 얹어졌다 할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받는 것 없이 주기만 한다고 할 것이다. 세상에 신경 쓸 것이 얼마나 많은데 한낱 미물에 시간과 돈을 할애한다고 조소하기도 할 것이다. 이들이 나와 삼월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서로 유익하게 융화된 것이다. 공생하는 것이다. 잠을 자다가도 별안간 드리워진 손길에 놀란 마음을 감출 만큼, 가장 귀찮은 것들을 매달 얌전히 참을 만큼. 우리는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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