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고양이 여러분
사람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아닐까?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이가 어디 있으랴 싶지만, 이토록 불안에 잠을 못 이루긴 실로 오랜만이었다. 새로운 공간이 주는 들뜸. 그와 비례하는 고단함. 터를 옮기는 것에 대한 피로도가 어찌나 묵중 했는지 허리 통증과 생리불순으로 고생 중이다. 그럼에도 무사히 해냈다는 안도감이 심신을 안정시킨다. 이사 전날에는 조금이라도 짐을 옮겨 놓기 위해 재산인 양 쌓아두었던 책들과 책장, 건조기 등을 새 집에 미리 가져다 두었다. 가진 것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버릴 건 왜 이리 많으며, 매일 아침 입을 옷이 없어 고민하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버려야 할 옷들이 산더미였다. 이별을 미루다 보니 한낱 짐으로 전락해버린 오래된 물건들을 아무런 감흥 없이 쓰레기 통에 내던지길 반복하며 하루를 다 보냈다. 뿐만 아니라 동물병원에 가서 안정제 다섯 알을 얻어오는 것 또한 중요한 일정 중 하나였다. 그 와중에 약을 조제해주신 테크니션 선생님의 말씀이 우리를 공포에 떨게 했다.
“차에 타기 30분 전에 먹이시면 되구요. 한 가지 기억하셔야 할 게 있어요. 안정제를 개가 복용했을 때는 옆에서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지는데, 고양이는 반응이 두 가지예요. 잠이 들거나, 미쳐 날뛰거나.”
결과가 정확히 제시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어두운 동굴 속을 탐험하는 어느 SF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더듬더듬 하룻밤을 보냈다. 하얀 알약 다섯 알이 세계를 구할지 혹은 망하게 할지 한숨으로 점철된 시간이 느리고도 신속히 흘러갔다. 우리는 아침 8시에 이사가 예정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들을 새 집에 옮기기 위해 새벽 5시에 기상했다. 해가 스멀스멀 떠오를 기미를 보이던 시각. 평소 구토할 때 마비가 오곤 하는 솔을 제외, 가장 큰 복병 택을 시작으로 간식에 약을 섞어 아이들에게 차례로 먹이고 30분을 기다렸다. 그런데 40분이 다 지나가도록 그 누구 하나 변화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았다. 왕복 이동 시간 약 80분에 아이들을 싣고 내리는 시간까지 계산을 해둔 터라 오차가 발생해서는 안 되었고 우리는 하는 수없이 하나 둘 아이들을 이동장에 넣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택이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울부짖었다. 우리가 사악한 사냥꾼이라도 되는 것마냥 잔뜩 겁을 먹은 눈동자는 마치 갈 곳 잃은 나약한 초식동물을 닮아 있었다. 녀석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계획이 틀어져 조급해진 우리는 서운해할 여유조차 없었다. 결국 안정제 한 알을 추가로 먹였다. 그 상황에서, 울망울망한 눈을 하고 약 섞은 간식을 핥아먹는 녀석이 귀엽고도 딱했다. 허나 귀엽다고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떠나야 했다. 집안의 방문을 모두 닫아 퇴로를 차단한 뒤 구석으로 몰았다. 온 집안 가구들을 밟고 뛰어넘어 다니며 도망가던 아이가 서럽게 울어대며 부엌 구석에 몸을 낮추고 웅크렸다. 그제야 안정제가 효력을 발휘하는지 아이 눈이 끔뻑이며 느려졌다. 괜찮아. 등을 어루만지며 속삭이는 데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우우…’ 소리를 내던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아 조심스럽게 이동장에 넣고 담요를 덮었다. 월세살이 무주택자의 서러움이 격하게 밀려들던 순간. 분명히 빈 방 어딘가에 우리로부터 나온 사리 하나가 굴러 다니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고양이 네 마리와 새 집에 머무르며 전자제품 및 인터넷 설치 기사님들을 맞이하기로 했다. 삼월은 전 집에 대한 청소 및 계약 마무리를 맡았다. 어렵사리 도착한 새 집 안방에 총 네 개의 이동장을 내려놓고 숨을 몰아 쉬었다. 이 웬수들.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얌전히 와 주면 어디가 덧나니. 나와 삼월 모두 씩씩대며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한탄하기 바빴다. 곧이어 이동장 문을 오픈하자 망구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얼마 안 가 하얀 방바닥에 붉은 발자국이 찍혔다. 놀란 마음에 살펴보니 망구의 흰 발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왼쪽 앞발 새끼발가락 발톱이 뽑힌 모양이었다. 당장에 집을 비울 수 없는지라 피를 닦고 녀석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얼굴 또한 가관이었다. 본래도 눈물이며 콧물이 많은 우리 아이지만 순막(고양이 눈앞머리에 하얀 막)이 동공의 반을 덮고 있었다. 얼굴이 부어서 그런지 꼭 처음 만났을 때의 녀석을 떠올리게 해 마음 한 곳이 무너진 건물처럼 가라앉았다. 안정제를 먹지 않은 솔은 내내 울다가 이동장을 나와 주변을 살폈다. 제 냄새라곤 하나 없는 낯선 공간. 불현듯 내던져진 장소에 대한 예민함으로 아이는 으르렁거리며 몸을 낮추었다. 한편 풀과 택은 안정제의 약효에 지고 말았는지 조용했다. 간혹 택은 수면마취를 한 인간처럼 앓는 소리도 냈다가 발을 허우적거리기도 했다가 ‘어웅어웅’ 울기도 했다. 방 안에 장난감과 물, 사료, 화장실까지 구비해 놓았지만 그들은 그것들 모두 사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망구는 내내 온전하지 않은 걸음걸이로 나를 따라다녔다. 티브이 설치 기사가 방문해 내가 잠시 거실로 나갔을 때는 방 안에서 목이 터져라 울었고, 내가 들어가 앉자 무릎 위에 느릿느릿 올라와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 연약하고 순수한 생명체. 좁은 이동장 안으로 등을 떠민 게 나인데도, 기어이 내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거스를 수 없는 책임을 명 받은 것만 같았다. 살다 보면 나 자신이 참 무의미하다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들은 나를 무이하고 유의미하게 만들어준다. 나의 존재를 알아주고 기대어 주는 작은 심장들. 그들의 좁다란 흉곽이 오르내림을 멈추는 날까지 그들의 애정에 보답하고자 힘쓸 것이다.
새 집에 온 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고양이들 모두 무리 없이 새 집에 적응했고 짐 정리도 대부분 끝마쳤다. 비로소 드러난 넓은 거실은 제법 사람 사는 집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전에 살던 집은 부엌과 거실 사이에 아일랜드 식탁이 배치되어 있어 공간이 가로막힌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면 이번에 살게 된 집은 거실과 주방이 트여있어 확실히 시원해졌다. 방 두 개 중 하나는 드레스 룸으로 사용하기 위해 벽 면에 행거를 설치했다. 풀은 검은 막대가 직선을 그리고 주렁주렁 매달린 옷가지들이 괴생명체처럼 보였는지 며칠 동안 그 방 앞에 서서 꼬리를 부풀리고 울어대기 바빴다. 네 마리가 일방적으로 제 할 말만 해대니 조만간 옆집이나 아랫집에게 사과를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여 미리 각오를 다지는 중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베란다다. 고양이들은 베란다에 설치한 캣타워 위에 옹기종기 모여 밖을 살핀다. 저번 집보다 층수가 낮아져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낮게 나는 새들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식상한 일상과 풍경들이 그들의 눈에는 매일 새롭고 신기하게 보이는 듯하다. 바깥에서 개가 짖어도, 누군가 기침을 해도, 커다란 트럭이 지나가도 후다닥 달려가 꼬리 끝을 슬렁슬렁 흔들며 쳐다본다. 아이들 눈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담겼으면 좋겠다. 그들의 세계는 부디 평화롭기를.
문득 떠오른 이야기. 거실을 덮은 수북한 옷가지들을 하나 둘 개키던 새벽 3시에 삼월이 그러더라. “나는 널 정말 사랑하는데.... 이제는 전우애까지 생긴 것 같아.” 그 말에 웃을 힘도 나지 않아 시들해진 풍선처럼 바람 빠지는 소리만 냈다. 우리는 대전 하나를 치르고 열반에 한 걸음 다가섰다. 다 지나갈지니, 사소한 것에 온 마음을 다하여 노하지 말라는 하늘의 뜻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