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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Mar 25. 2022

5월이 평화의 달이 되길 바라며

이사에 대한 두려움

새벽 여섯 . 까만 하늘에 물감처럼 푸른빛이 차츰 물들 시각이다. 어디선가 나타난 풀이 삼월의 얼굴에 대고 애앵, 잠긴 목소리로 칭얼거린다. 이불을 들춰 달라는 뜻이다.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삼월은 잠결에도 웅얼거리며 몸을 뒤척인다. 그럼에도  길이 트이지 않았는지 이불속에 고개를 넣고 다시 한번 운다. 소리에  내가 이불의 면적을 크게 잡고 들어 올린다. 비로소 아이가 이불 동굴로 발을 디딘다.  번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지나면 고요해진다. 그다음은 모로 누운 나의  뒤로 묵직한 무게감이 덧대어진다. 망구가 자러 왔구나. 어디서 누워 있다 왔는지 따끈따끈한 몸뚱이를  등에 기댄다. 뒷다리를  뻗고 앞다리는  고개를 받친다. 그럼 나는 몸을 돌려 팔을 내어준다. 동그랗게 살이 오른 볼이  팔에 얌전히 기대 푸르르, 소리를 내며 눈을 감는다.


요즘 저녁 7시에 출근해 새벽 2시에 퇴근을 하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덩달아 고양이들의 생활 패턴도 바뀌었다. 어스름하게 달이 지고 해가 뜰 무렵 잠에 들기도 하며, 더 이른 다섯 시나 네 시에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리기도 한다. 우리가 잘 채비를 마치면 고양이들도 각자 좋아하는 자리로 가 잠을 잔다. 주로 소파, 혹은 침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간혹 우리가 자는 침대로 옹기종기 모여 함께 잠을 자기도 한다. 고양이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자리의 조건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저들의 영역이 안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적의 눈에 띄지 않을 자리를 선점하려 한다. 택과 솔이 옷장 속이나 소파와 캣 타워 사이 남은 빈 공간에 들어가려는 것처럼. 끝내 남아있는 본성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인간으로 치면 이성일까? 그들도 잃지 않는 존재만의 특성을 인간들은 점차 망각하고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현재 살고 있는 월세집 계약 만료 기간이 다가오고 있다. 5월에는 이사를 가야 한다. 이사란 고양이들에게 무엇인가. 본성이 한계에 달해 서로간에 이빨을 드러낼 수 있는, 그야말로 혼돈의 이벤트라고 할 수 있겠다.


어제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보고 왔다. 들어갈 집인지, 스쳐갈 집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창이 크고 베란다가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머릿속으로 미리 집안의 풍경을 짜 맞추어 봤다. 내 뜻대로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 거주하는 집보다 층이 낮으니 날아가는 새들과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계절마다 변하는 냄새와 소리들을 아이들이 가까이서 보고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네 마리의 고양이를 반려하는 우리는 꿈도 꿀 수 없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텅 빈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캣 타워는 어디에 둘지, 화장실은, 스크래처와 수반은 어디에 위치해야 아이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 설계하기 바빴으니 앞으로도 미니멀리즘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집이 한껏 미니멀하게 보이려면 가구가 차지하는 공간보다 훨씬 넓은 공간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끝없이 일을 할 운명을 타고난 거다. 게다가 이사는 정말이지, 고통의 연속이다. 2년 전, 지금 집으로 이사를 올 때도 참 복잡했다. 이삿짐 센터가 도착하기 전 먼저 고양이 세 마리를 어렵사리 이동장에 넣어 담요로 외부 시야를 차단했다. 짐이 트럭에 실릴 때까지 아이들은 우렁차고 서럽게 울어댔다. 나도 서러웠다. 그 당시에는 차가 없을 때라 지인의 차를 빌려 고양이들은 따로 싣고 새 집으로 옮겨야 했다. 차마 트럭에 태울 수는 없었다. 역할 분담이 관건이었다. 한 명은 내내 집을 지키며 짐이 오는 것을 살폈고 고양이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한 명은 전 집에 남은 짐들을 정리하며 새 집을 오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둘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밤에는 짐 정리와 더불어 하루아침에 낯선 땅(?)에 내던져져 잔뜩 성이 난 고양이들을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극한의 스트레스는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병이 되기 마련이니까. 이사를 하고 나면 앞서 적었던 평화롭고 애틋한 밤도 며칠간은 뚝 끊길 것이다. 고양이들은 새로운 공간, 즉 자신들의 영역에 적의 존재 유무를 밤낮 할 거 없이 살피기 바쁠 것이고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넷 중 하나라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 네 마리의 관계 또한 틀어질 수 있으니 우리 또한 수시로 예리한 시선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사에 대한 설렘보다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비상사태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게 먼저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리 여섯은 다시 침대에 두런두런 모여 안온한 잠을 잘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것이 미지수다. 평화로운 5월이 되길 바란다.



고양이 키우지 마세요….


고양이, 키우고 싶으세요?


키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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