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역성(可易性)

아직은 실개천이 불러주니......

by 박점복


너무 멀리 와 버렸나 보아요.


양지바른 낮은 담벼락 그 아래 피었던


채송화의 재잘거림이 가물가물 어슴프레 하고


자치기 하던 골목이 하얀 도화지로


안개처럼 날아가 저만큼에서 손짓하고


보릿대 엮어 여치집 만들어 주던 때도


도무지 계산이 안 될 만큼 까마득한 걸 보니


와도 너무나 멀리 와 버린 건 분명하네요.



좁은 툇마루 위에 피어 물끄러미 내려보던 나팔꽃


보랏 빛으로 나비랑 벌들을 유혹했지요


소리 없이 뿜 뿜 뿜 나팔을 불어대면서


큰 건 애초부터 들어 올 수도 없었던,


자그마한 행복만 드나들던 문이어서


헨젤과 그레텔처럼 군데군데 과자 조각을


흔적처럼 남긴다고 떨구긴 했어도


새들 같은 세월이 몽땅 쪼아 먹어 치우기 전에


나 때문에 화장도 못했다는


실개천이, 나지막한 구릉이


쪼글쪼글 패인 주름뿐이어도 여전히


기다려 준 은행나무가


행여 치매로 날 못 알아보기 전에


아니 나마저 그만 기억의 끈을 놓기 전에


돌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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