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해방은 맨손체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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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똑딱이

나의 골프 인생은 일명, 똑딱이로 시작됐다. 일주일쯤 뒤 하프 스윙을 하게 됐다. 그리고 다시 이주쯤 뒤에 풀스윙. 7번 아이언 한 개의 클럽만 가지고 달포 가량 보냈다. 공은 맞았다 안 맞았다를 반복했다. 30대 중반 골린이 시절 일이다.


그전에 더욱 충격적인 사건. 2006년 당시 근무 중이던 회사의 사장과 LA 출장을 갔다가 거래처 일행들과 골프를 치게 된 것이다. 골프채를 잡아 본 적도 없던 내가 머리를 올리던 날, 당시 거래가 있던 미국 회사의 직원(교포) 한 분이 나를 전담해 함께 필드를 누볐다.


LA 교외의 광활한 필드에서 7번 아이언으로 공과 땅을 번갈아 쳐야 했다. 손가락과 손바닥 모두 물집이 잡히다 못해 허물이 벗겨졌고, 몸은 여기저기 쑤셨다. 세상에서 제일 쉬워 보이던 골프는 그렇게 내 인생 최대의 난제로 등극했다. 우습게 보였던 골프 앞에서 내가 우스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

2006년 LA 근교 골프장에서 구입한 나의 첫 골프화


골프를 시작하게 된 경위

LA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코스트 코에서 골프 클럽을 세일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됐다. 풀세트에 캐디백까지 포함된 가격이 겨우 30만 원! 싸다 싸!!! 브랜드는 탑플라이트 Topflight.


사장과 임원들이 과장의 직급을 맡고 있던 내게 골프를 권한 이유는 장거리 운전과 골프백 운반을 시키기 위함이었다. 골프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나는 토요일마다 새벽 3시나 4시부터 차를 몰고 사람들과 채를 걷으러 다녔다.


이천이나 여주, 또는 충주, 때로는 강원도, 제주도로 직장 상사와 거래처 사람들로 구성된 멤버와과 골프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골프 실력은 늘 제자리걸음, 아니 심지어 후퇴했다. 사장과 임원들로부터 핀잔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매달 해외출장에, 야근에, 술자리에 시달리느라 나의 정신력과 신체능력은 골프에까지 할애되기 어려웠다. 레슨을 받아도 따로 연습할 시간이 충분치 않으니 역시 쓸모없는 짓일 뿐이었고, 즐기지 못하니 재미가 있을 리 없었다. 당시 내겐 골프 또한 그저 업무의 연장이었을 뿐이다.


Muscle Memory

나이를 먹자 골프라는 운동에 대해 다시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골프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형제들과 가족들, 직원들이 너도나도 하는 골프, 안 할 거면 모르지만 할거면 잘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골프는 가장 먼저 몸을 만들어야 하는 운동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등과 복부, 허벅지 같은 큰 근육에 동작을 저장하는 -muscle memory-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운동이 골프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클럽으로 공을 치는 것은 나중에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이었다. 4센티 미터 남짓한 직경의 작은 공을, 쇳덩이가 달린 길이 1미터도 넘는 채로 쳐서 100미터 넘게 보내야 하는, 생각하면 마술과도 같은 운동이 골프다.


처음부터 무작정 공을 치면서 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훈련과정을 통과하면 쉬워지는 운동이 골프 아닐까. 푸쉬업이나 스쾃을 특별히 배우지 않고도 누구나 할 수 있듯이 필시 골프도 그런 훈련법이 있지 않을까. 이어지는 생각의 끝은 몸으로 수렴됐다.


체조가 답이다

동반자들이 만들어 준 싱글패

나는 그것이 체조라고 굳게 믿는다. 체조를 꾸준히 하면 할수록 긴 채, 즉 드라이버, 우드를 잘 다룰 수 있게 된다. 일단, 가장 긴 클럽인 드라이버를 잘 다뤄야 그다음이 있지 않은가.


그런 믿음으로 체조를 꾸준히 한 결과 2년 전 처음 79타를 기록했다. 나는 여전히 하루 20분씩 체조를 하고 있다. 매달 서너번의 라운딩에서 80대 중반 타수를 유지한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작년 MZ세대들 중 꽤 많은 수가 골프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골프가 만만한 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중 많은 수가 그만뒀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사실이라면 연습이나 레슨에 투자한 만큼 효율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체조라는 새로운 학습 경로가 그들을 다시 골프장으로 불러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독학으로 골프에 재미를 붙이는 것이 중요하다. 독학의 가장 좋은 점은, 자신이 생각하고 기획한 훈련방법을 아무 때고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체력과 근력이 좋아지는 체조를 통해 골프 실력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다고 믿는다. 시간과 돈이 많아야 즐길 수 있다는 운동인 골프를 최소의 비용과 적절한 시간을 들이면서도 흥미롭게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만드는 것이 <골프 해방 일지>가 추구하는 바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건강과 체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자발적이고 일상적인 신체활동"이 생활체육의 정의다. 골프도 이제는 생활체육의 한 종목일 뿐이다. 골프야말로 건강과 체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평생 운동이다. 체조로 시작하자.


18년 전 골프를 시작하던 30대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아마추어 챔피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 준비도 없이 공을 먼저 쳤던 탓에 나는 10년도 넘는 기간, 돌고 돌아서 맨손체조로 골프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소중한 나의 경험을 골린이나 백돌(순)이에게 들려줄 기회가 생긴 것, 또한 이 길고 길었던 우회(迂廻)의 덕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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