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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Aug 10. 2023

운동이 습관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쁘게 출근을 서두르며 집을 나선 날이었다. 비를 피해 다닐 것만 같은 막연한 희망을 가진 자가 집을 나선 시점과 이제 막 내리기 시작한 비가 그 기세를 더할 시점이 일치할 가능성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파트 입구에 서서 저만치 신랑이 대기한 차에 뛰어들기 위해 비 맞을 각오를 다지는 잠깐의 시간. 사실 우산을 미리 챙기지 못했다며 자책하기보다는 하필이면 그때 들이치기 시작한 비를 원망하는 마음이 앞섰다.


우연히 휴대폰을 열었는데 시분초가 딱 맞아떨어져 모자람 없는 기분이 된다거나, 렌즈 세척액이 마침 오늘 쓸 만큼만 남아서 덤으로 하루가 더 밝아진 듯한 기분이 된다거나, 바쁘게 주워 든 셔츠가 마침 다림질이 되어 있어 구겨진 마음마저 펴진다거나, 현관문을 나섰는데 기다렸다는 듯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와락 안기듯 달려들며 내딛는 발걸음이 새삼 가볍게 느껴진다거나.


그런 사소한 우연에 한 주의 운을 점치기도 하는 월요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하여 갑자기 마주한 비는 신문의 잉크 냄새를 맡으며 후루룩 넘겨서 찾는 오늘의 운세와도 같은 것이었다. 가령 출근이 숙명 같은 직장인이 마주한 '재물이 들어오는 날이지만 문밖으로 나서면 반감될 가능성이 크다'라는 문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체로 운보다는 노력한 만큼의 대가만 정직하게 돌아오는 생이 지배적이었기에 이런 소소한 상황에서마저 지극히 운이 비켜가는 것에 못내 서운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이 나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차가 어디 있어요?


단정함이 소리가 된 듯한 목소리다. 마침 아파트에 들어서며 우산을 정리하던 한 여성분이 묻는다.


내가 씌워줄게요.


불편한 친절이다. 호의를 기대하며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은 아니었다. 행여나 진짜 우산이라도 씌워준다면 너무 부담스러울 것만 같아 다급히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여성분 역시 잰걸음으로 쫓아와 우산을 받치고 나를 따라온다. 감사하다는 말을 했는데 거세진 비가 내 소리마저 집어삼키는 듯해 몇 번 더 말을 했던 것 같다.   


여자니까요.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느끼는 여운처럼 문장이 남았다. 후다닥 차에 올라타서도 그 말이 귓가에 맴돈다. 여자니까요. 마음에도 비가 들이친 듯 그 말이 휘감고 돈다. 조금 전까지 일말의 동정심도 얻지 못하는 정직한 생 앞에 좌절하던 한 사람에게 당신은 그 자체로 너무 소중한 존재라는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말의 온기가 오래도록 느껴졌다.


월요일 오후. 몸은 주말을 미처 벗어나지 못해 허우적대는데 마음만은 가쁜 호흡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한 주가 시작되었음에 마음을 곧추세우고 몸의 컨디션은 조금 외면한 채 무언가를 시작하기 좋은 날. 앱을 켜고 필라테스 수업을 예약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예약 확정과 동시에 가기 싫은 마음이 덮쳐오며 갈등이 시작된다.


요샌 부쩍 퇴근 후 운동을 하는 직원들이 많아졌다. 여름이니까, 건강검진 후 깨달은 바가 많아서,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해. 운동을 하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그럼에도 한결같이 한 목소리를 내는 말이 있었다. 운동을 오래 해서 습관이 되면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더 힘들어지는 경지에 도달한다고 했다. 그들은 누구도 경지라 표현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겐 그 어떤 경지였다.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몸이 움직인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수없이 패배감과 좌절감을 느꼈다. 나는 왜 운동친화적인 신체 리듬을 가지지 못하였는지, 도대체 얼마나 운동을 해야 이 힘든 몸짓이 습관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입을 수 있는지. 습관이 되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체득하지 못한 사람이 이방인이 되는 이 세계에서 나는 속으로만 앓으며 애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피곤해지려 하거나 감기 기운이 오는 것 같으면 앞서 몸을 쉬게 하는, 자신에게 더없이 관대한 나 같은 이는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내겐 필라테스를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견한 일이었기에 습관이 되는 경지까지는 바랄 수도 없었다. 운동을 함에 있어서도 지극히 정직한 대가 앞에 습관이 되는 일은 뜻밖에 찾아오는 행운같이 멀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내 속도대로 운동을 한다. 피곤하면 충분히 쉬어가며. 나를 아끼는 일을 더 우선하며. 운동을 하는 일보다 나를 아끼는 일이 습관이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난 그저 내 운동일지가 조금 여운이 남는 문장으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다. 가령 여자니까요 같은.


그런 마음으로 여전히 한 번씩 운동을 간다.  


- '드디어 운동이 습관이 되었어요'라는 글을 쓸 날만 고대하며 매거진 마지막을 내내 쓰지 못하던 약체 인간이 습관이 되는 날을 기다리는 것보다 제목을 바꾸는 것이 더 빠르겠다는 결론에 이른 날에 -



# 사진 출처 : 리포즈플라테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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