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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음 Jun 14. 2023

진정한 8살, 꼬맹이들의 순수함

1학년 담임의 따뜻한 시선

올해 2월 어느 날, 예상치도 못 하게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불안해하고 있던 나였다. 1학년을 연속 3년 지도한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니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숨 쉬는 것 빼고는 다 가르쳐줘야 해!’      


군더더기 없는 찰떡과도 같은 표현이다. 정말로 1학년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해줘야 한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이해 못 하고 질문해대니 매일같이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게다가 때로는 우기고 버티기가 쇠심줄보다도 질기니 고구마가 10개쯤 목에 걸려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살 꼬맹이들의 크나큰 매력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순수함. 그 어떤 결점도 덮고도 남을 치명적임, 그 자체이다. 학교 현장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순수 100%의 일화 몇 가지를 들어보라. 당신의 꼬질꼬질 때 묻은 심성이 뽀얗게 정화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학교 주변 횡단 보도에서 통학 지도를 하는 분들을 알고 있는가? 보통 노란 조끼를 입고 노란 깃발을 들고서 말이다. 학교마다 다소 차이가 있고 최근에는 노인 인력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5년 전 1학년 담임을 할 때 당시 근무 학교에서는 ‘녹색 어머니회’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하는 말이 무심히 내 귀에 꽂혔다.      


‘오늘 우리 엄마 초록 어머니야’     


순간 무슨 뜻인가 싶어 고개가 갸우뚱해졌지만 ‘빵’ 하고 내 웃음이 터지기까지는 3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괜찮다, 괜찮아. 녹색과 초록은 동색 아니던가. 하지만 고유명사이니 제대로 알고 갈 필요는 있어 보였다. ‘00야, 초록 어머니가 아니고 녹색 어머니야. 오늘 엄마가 횡단보도에서 깃발들고 봉사하셨지?’   

   



아무래도 5년 전 제자들의 순수함이 유독 정점을 찍었나보다. 이번에는 ‘굿네이버스 편지쓰기’ 관련 일화이다. 굿네이버스 편지쓰기란 이름 그대로 굿네이버스 재단에서 주최하는 편지쓰기 행사이다. 환경이 열악한 다른 나라의 어린이 1명을 선정해, 그 어린이에게 편지를 쓰거나 기부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마침 그해에는 아프리카 케냐의 어떤 아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억한다. 편지 제출 마감일 아침, 한 여자아이가 해맑게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파프리카 아이한테 편지 써왔는데요’      


이번에는 듣는 즉시 아이가 하려는 말의 속뜻과 오류를 이해했다. 첫사랑에 빠진 남녀의 행복한 미소, 터져 나오는 기침이나 재채기만 참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황당하지만 귀여운 아이의 순수함 앞에서 삐죽이 나오는 웃음이나 미소 또한 절대 막을 수가 없다.     




이번에는 올해 우리 반 꼬맹이의 말이다. 가족이나 친척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해 공부하던 중이었다. 최근에 집에서 잘 지킨 예절이 있다면 발표해보자고 제안했다. 한 남자아이가 자신있게 손을 들었다. 며칠 전에 두 동강 난 지우개를 들고나와 울상을 짓던 그 아이였다. ‘선생님, 지우개가 딱풀로 안 붙어요’ 라며. 이번에는 무슨 엉뚱한 말을 할까 기대가 되어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집에 달팽이가 있는데요. 달팽이가 70살이예요. 그래서 어제 달팽이가 상추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 밥숟가락을 들었어요.’     


풉. 전날 말해주었던, (어른이 먼저 숟가락을 드신 후 숟가락을 들라는) 식사 예절을 실천했던 것이다. 아이의 기발함과 순수함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분명 내 눈에서 하트가 무한 발사되었을 것이다. 나머지 아이들의 시샘이 염려스러워 크게 칭찬하거나 사랑을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1학년 천사들과 함께 할 남은 200일 가까운 시간 동안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아이들이 이토록 해맑을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일 것이다. 그러니 이것도 모른다며 답답해 가슴을 치지 말고 하나하나 세심히 알려줘야겠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1학년의 매력에 흠뻑 빠져 ‘꼬마들을 잔뜩 만나고 싶다’ 라고 생각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랬다면 1학년 담임으로서 단번에 말리고 싶다. 열에 아홉은 5분 안에 두손 두발 다 들고 줄행랑 칠 것을 장담한다. 자기 얘기만 해대는, 왁자지껄한 20개 정도의 목소리 틈에서는 그 어떤 순수한 말도 제대로 알아듣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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