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첫 번째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나섰다. 날이 쌀쌀하긴 했지만 그런 날씨가 그립기도 했다. 한국에서 무더운 여름을 지내느라 모닝 런을 못 뛴 게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달려서 숙소 주변의 몽소 공원에 가보기로 했다. 모네가 그림을 6점이나 그렸다는 공원이다. 그 그림을 보고 몽소 공원의 모습을 상상했다. 모네의 마음에 쏙 들 법한 공원, 꽃과 풀이 어우러진 정원 같은 공원.
공원으로 향하는 길에도, 공원에 도착해서도, 아침 일찍부터 달리는 사람들은 많았다.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원의 시간에 내가 있다니. 나도 어쩌면 부지런의 씨앗 정도는 가진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달리기를 꾸준히 하지는 못하지만 가끔씩 해본다. 그런 나의 지구력은 발전되지 못하고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부지런하다고 하기에도, 게으르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나. 하나를 꾸준히 하지 못하고 이곳저곳 방황하는 나는 과연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건물로 둘러싸인 공원은 안개 낀 아침에 더욱 짙은 녹색이었다. 내가 공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나무와 풀의 다양성이다. 다양한 종류, 다양한 키, 다양한 모양의 식물들이 불규칙적으로 어우러진 모습. 산속을 옮겨 담은 듯하면서도 잘 정돈되어 흙먼지가 날리지 않는 완만한 흙길. 자유로움을 담고 있으면서도 어지럽지 않게 관리된 모습이 중요하다.
그런 모습보다 몽소 공원은 더 잘 다듬어져 있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그 공원을 정원 같아 보이게 했다. 모네가 좋아할 모습이었다. 숲을 떠올리게 하는 공원은 아니었지만, 다채로운 색으로 잘 조경된 그 공원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걸음 갈 때마다 다른 식물이 있었으니, 그날도 관찰일지를 가지고 갔더라면 공원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초록의 세상이 건물들 사이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행복이었다.
공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먹음직스러운 과일을 파는 작은 가게를 발견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무화과가 빨간 속을 드러내며 예쁘게 쌓여 있었고, 그 옆에 더 새빨간 딸기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안쪽에는 철이 다 지나 구하기 어려운 납작 복숭아가 쏟아질 듯 쌓여 있었다. 모든 과일들이 신선하고 저렴하기까지 했다. 나는 납작 복숭아를 몇 개 집어 들었다. 먹고 싶은 다른 과일들을 뒤로하며,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매일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과일을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또다시 발걸음을 멈춰 서게 하는 곳이 있었다. 빵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아침의 빵을 쌓아둔 가게였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종류의 빵들이 나를 붙잡았다. 크루아상, 타르트, 각종 패스츄리, 그리고 바게트 샌드위치. 이 많은 빵들로 인해 앞으로 얻게 될 행복을 가늠해 보았다. 쌓여있는 빵들만큼 셀 수 없는 날들에 걸쳐 탐험할 빵의 세계를. 나는 신중을 기해 바게트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을 사서 다시 집으로 향했다.
8층의 높은 집에 올라갈 때는 1인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두 층을 더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좁은 복도를 지나 안쪽에 위치한 방 문 앞에 섰다. 큼직한 구멍에 굵고 투박한 금색 열쇠를 꽂아 돌리면 문이 열렸다. 그곳은 파리의 지붕들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방이다. 창문을 활짝 열고, 지붕 위로 평행하게 흘러가는 구름과 하늘을 구경했다. 사 온 음식들을 창문 앞에 펼치고 커피를 마시며 여유로운 아침을 즐겼다. 뚜렷한 계획이 없는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
흐릿한 하루는 그것대로 좋다. 애매한 나는 흐릿한 것들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낸다. 뭐든 쉽게 시작하고, 온갖 것들에 호기심을 느끼고, 가볍고 흐릿한 것들 속에서 사랑을 발견한다. 이런 것들이 때로는 나를 그 자리에 멈춰있게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순간에도 쉽게 걸음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남들을 볼 때면 이런 나를 걱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멀리 가지 않고도 가장 쉽게 행복을 얻는 방법인 것을 안다. 짧은 여행이 흘러가는 동안 이렇게 여유로워도, 그 여행이 망하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