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첫 번째
소매치기들이 널려있는 곳. 팔찌 강매단이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는 곳. 몽마르트에 대해 아는 정보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무얼 보러 그 언덕에 올라가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모두가 가기 때문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리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전경이 얼마나 특별할 수 있을까.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숙소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그곳에 한 번쯤 들러 소매치기를 구경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언덕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사랑해 벽을 만났다. 그곳을 지나 경사진 골목의 빵집에서 바게트를 하나 사서 물고 올라갔다. 곧이어 높게 이어진 계단이 보였다. ‘여기가 소문에 등장하는 그 계단일까?’ 잠깐 멈춰 서서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수상한 사람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곳을 지나가는 다른 여행객들은 그런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도 그들을 따라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혹시 모르니 친구들이 시킨 대로 팔짱도 꼈다. 소문으로만 듣던 위험한 길목이 어디일지 유심히 관찰했다. 내가 유일하게 궁금했던 것은 소매치기였으니깐.
얼마 올라가지 않고서 눈앞에 커다란 성당이 나타났다. 수상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전에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벌써 도착한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평화롭게 계단에 앉아 있었다. 경계할 것도 없어 보였다. 그들이 몸을 향하고 앉아있는 방향 멀리에는 파리가 전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졌다. 빠르게 흐르는 구름이 덮인 파란 하늘이 반, 작은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펼쳐져 있는 그림의 도시 같은 풍경이 반. 파란 하늘 사이로는 햇빛이 비추다 숨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계단의 가운데에는 파리의 배경을 무대로 기타 치며 노래하는 예술가가 있었다.
거리 공연은 낭만적이지만, 가끔은 너무 아마추어적이기도 해서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실력이 뛰어난 거리 예술가를 발견할 때면 네잎클로버를 찾은 듯 우연을 마주한 기분이 든다. 한 치의 기대도 없이 올라온 몽마르트에서 마주한 거리 예술가가 그랬다. 바람에 날리는 긴 머리칼과 검은 선글라스, 꾸깃한 흰 셔츠 위를 지나는 화려한 기타 스트랩. 파란 청바지 아래로는 갈색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기타 치며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유와 낭만이 가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리의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기타 치며 노래하는 그를, 아니면 그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펼쳐진 도시의 그림 같은 모습을. 노래하는 사람은 멋들어진 파리의 풍경만큼 주인공 같았다. 그에게 사람들이 듣기 좋은 목소리를 내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즐기며 노래하는 것이 확실했다. 목소리에는 꾸며지지 않은 힘과 리듬감이 있었고, 기타의 손가락은 신이 나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버스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걔네 늘 하던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공연하는 거야. 다 정해져 있는 것들이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적인 공연이라고 평가하는 시선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게 꼭 필요한 생각인지 궁금했다. 누군가에게는 공연의 진짜 의도를 알아내는 게 본질일 테지만, 나에게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음악이 거리를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누군가에게는 낭만적인 추억이 될 것이다.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이 가끔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슬슬 자리를 떠나려고 일어섰다. 그러자 갑자기 평소에 좋아하던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영국 밴드 Oasis의 노래였다. 그걸 따라 부르고 싶어 흥이 올랐다. 일어선 대로 걸음을 옮겨 무대 정면의 계단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기타와 마이크는 더욱 가까워졌고, 파리의 전경은 더 멀게 느껴졌다. 그렇게 그곳에서 두 시간이나 앉아 있었다. 음악과 함께 자유로운 모습을 눈앞에 두고, 에너지를 충분히 얻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