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가 살던 파리

Paris, 첫 번째

by 방토

올해 가장 길게 붙잡고 있었던 책이라고 하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내가 사랑한 파리’ 일 것이다. 그것은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쓴 책이다. 나는 그 책을 우연히 알게 된 후 푹 빠져들었다. 백 년 전쯤의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브이로그를 보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을 파리를 상상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남은 책장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쉬워 가장 여유로운 시간에만 조금씩 펼쳐보았다. 그 책을 다 읽어내는 데에는 몇 달이 걸렸다.


그 시절의 헤밍웨이는 이십 대였다. 글을 갓 쓰기 시작한 아마추어 작가의 서투른 글솜씨와 넉넉하지 못한 생활이 책에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은 우리들 주변의 흔한 이삼십 대의 모습과 다를 것 없었다.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의 풋풋하고 소소한 일상적 이야기였다. 훗날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될 그의 모습도 그랬다. 책의 화자가 헤밍웨이가 아니었다면, 등장인물이 스콧 피츠제럴드나 에즈라 파운드가 아니었다면 그냥 어떤 주변인의 이야기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헤밍웨이의 팬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책을 많이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고집 있는 사람들의 취향을 탐구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다. 그가 평범한 이십 대보다 조금 독특한 면이 있다면, 주관과 취향이 확고해 보였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자주 가던 카페, 좋아하던 공원과 서점을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 가면 그가 어떤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었는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고 낡은 파리에서는 백 년 전의 서사를 언제나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이 이 도시의 매력이다. 나는 센 강 아래쪽의 생제르맹 거리로 걸어갔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그가 글을 쓰곤 했던 ‘레 뒤 마고’와 ‘카페 드 플로르’였다. 그 카페들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위치해 있다.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그곳들이 어디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였기 때문이다. 특히 카페 드 플로르는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많은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넷플릭스 드라마인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촬영지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레 뒤 마고는 북적이긴 했지만 대기줄이 거의 없었다. 나는 사람이 적은 쪽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Les Deux Magots


테라스 자리에 앉아 커피와 염소치즈 토스트를 주문했다. 비싼 가격에 비해 단출한 구성의 음식이 나왔다. 반 쪽짜리 토스트 세 조각과 약간의 채소가 나왔는데, 훌륭한 맛은 아니었지만 작은 배를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음식을 천천히 먹으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주변의 테이블에 오가는 사람들. 숙소가 있는 동네와 달리 북적이는 거리는 오랜만이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임이 틀림없었다.


헤밍웨이가 살았던 시대의 카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다양한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이 모여 사상을 나누고 논쟁을 했다는 철학카페.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종종 보았다. 그 시대에는 무슨 일이 펼쳐졌길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름을 날리게 되었을까. 지금 이곳의 우리들은 우주의 먼지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Shakespeare and company


그가 습관처럼 들락거린 책방이 있다. 돈이 없던 그에게 공짜로 책을 빌려줄 정도로 그와 신의가 깊었던 그 책방은 ‘셰익스피어 앤 콤파니’다. 그곳 역시도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책을 구경하러 안으로 들어갔다. 독립서점이라고 하기에는 상업성 높은 영어 번역서들로 가득한 책방이었다. 외관의 모양은 그때와 같지만, 묘사는 다른 내부의 모습에 약간의 실망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흐르며 변하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나는 다른 곳에서 본 적 없는 책 두 권을 구매해서 나왔다. 한 권은 불어로 쓰인 프랑스의 음식 문화에 관한 책이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프랑스어를 꼭 공부하겠다며 집어든 그 책은 과감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또 한 권은 고집 있는 작가가 말하는 세상을 바꾸는 예술가에 관한 책이었다. 예술과 혁명의 도시에 참 어울리는 책이었다. 얼핏 봐도 폭력적인 말투로 이야기하는 저자의 강력한 주장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 두 권의 책을 들고 뤽상부르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 역시 헤밍웨이가 자주 가던 공원이었다. 나는 잘 조경된 정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곳은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넓은 정원의 주변으로 두 개씩 쌍을 지어 놓여 있는 의자들은 다정했다. 둘끼리 뭉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아름다워 보였다. 사람이 이토록 많아도 공원은 여유로웠다. 탁 트인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볕이 눈을 따갑게 했지만 그것을 굳이 등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서쪽의 해를 바라보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방금 산 책을 꺼내 펼쳤다. 영어는 약하고 프랑스어는 불능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천천히 읽어나갔다.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지친 마음을 달랬다. 남아있는 것은 외관뿐이라는 것에서 오는 씁쓸함을 달랬다. 우리가 정말로 찾고 싶었던 흔적들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에 대하여. 불과 백 년 만에 달라진 사람들에 대해 실감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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