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첫 번째
그날도 역시 아침 빵을 사러 밖으로 나갔다. 가는 길은 익숙했지만 이상하게도 평소와는 조금 다른 낌새가 들었다. 오랜만에 화창한 날씨에 신나고 활기찬 기분이 든 것은 그저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도로 건너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내가 알던 텅 빈 길은 복작복작한 시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토요일 아침'이었다.
전에 러닝을 뛰었던 그 길은 분명히 평범하고 널찍한 길이었다. 어제는 그토록 아무것도 아닌 길이었는데, 매일 같은 루틴의 러너들만 오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길에 갑자기 시장이라니. 이런 광경은 한국에서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호기심 많은 나는 어제 갔던 베이커리는 제쳐두고 새롭게 등장한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시장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시장에서는 그 지역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물건을 취급하는지 모든 것이 투명하게 비춰진다. 투박한 로컬 음식을 먹는 것은 도시를 발로 산책하는 것만큼 좋다. 그곳에서는 과하게 꾸며지지 않은 모습, 가장 일상적인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여행을 하면서도 일상 속의 나처럼 살아갈 때, 그곳의 사람들에게 또 다른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집 앞의 주말 시장에서는 먹음직스러운 음식과 식재료를 많이 팔고 있었다. 치즈, 버터, 육류, 햄, 닭고기, 각종 빵과 파이, 키쉬까지. 하지만 그것들을 다 사지 못하고 눈으로만 구경해야 했다. 아무리 작게 팔아도 나에게는 5인분은 나올 분량이었기 때문이다.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눈앞에 두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곳에 오래 머물렀다면 잠봉과 치즈가 가득한 바게트 샌드위치를 아침마다 만들어 먹었을 텐데. 키쉬를 종류별로 사서 매일마다 하나씩 맛볼 텐데.
그렇지만 이 먹음직스러운 것을 하나도 사지 않은 채 후회할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의 주말은 이번이 마지막일 테고 앞으로 이런 주말 시장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나는 시장을 배회했다. 가장 눈에 아른거리고,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을 골라보기 위해서. 잠봉은 양이 너무 많고, 통닭은 너무 비쌌다. 키쉬는 여러 개를 먹을 수 없어 아쉬울 것 같았다. 오랜 고민 끝에 치즈 가게로 향했다. 새하얗고 눈덩이 같은 치즈를 사서 조금만 맛보자는 생각으로.
종류가 몇 십 개는 되어 보이는 치즈들 중에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치즈의 이름조차 읽을 수 없는 나는 그 맛을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얀 치즈들 중 둥근 모양의 치즈와 네모 모양의 치즈는 무엇이 다를까? 표면이 자글자글한 치즈는 무슨 맛이 날까? 답이 내려지지 않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치즈 파는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치즈는 뭔가요?'
치즈 상인은 곰팡이가 자글자글하게 표면을 덮고 있는 네모난 치즈를 추천했다. 부드러운 식감의 치즈를 좋아한다는 내게 그걸 골라준 것이다. 나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그 치즈를 하나 담고, 가장 많이 팔려 몇 개 남지 않은 흰색 치즈도 하나 골랐다. 그리고 옆 가게에서 치즈와 함께 먹을 빵도 사 왔다. 아무리 작게 잘라 달라고 해도 5번은 먹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아주 거대한 빵을.
품에 먹을 것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빵과 치즈를 접시에 담았다. 크리미 한 치즈는 포슬포슬한 치즈케이크를 자르듯 부드럽게 잘렸다. 한국에서 많이 먹는 치즈와 다르게 쌉싸름했지만 그것대로 매력이 있었다. 새하얀 치즈와 곰팡이핀 치즈는 의외로 멀지 않은 맛이었다. 따로 먹었다면 그 차이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얀 치즈가 좀 더 고소했고, 곰팡이 치즈는 좀 더 발효의 쌉쌀한 맛을 가지고 있었다. 함께 산 빵은 견과류를 태운 맛을 가지고 있어서 그 치즈를 더 쌉싸름하게 만들었다. 결국 빵과 치즈는 따로 먹기로 했다.
나는 배부른 주말 아침을 더욱 여유롭게 보냈고, 바깥의 사람들은 여전히 활기가 넘쳐났다. 아주 입에 맞는 식사는 아니었지만, 부족한 대로 좋았다. 집 주변에 이렇게 멋진 시장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행운이라며, 곰팡이 잔뜩 핀 정통의 자연 치즈도 먹었다며 기분 좋은 주말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