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트자트 섬의 토요일 오후

Paris, 첫 번째

by 방토

자연스럽지 않은 것보다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한다. 나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근처를 지날 때마다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받곤 했다. 관광객들이 즐비한 거리를 지날 때면 그곳에 간 목적을 잊어버렸다. 그곳의 다른 사람들 역시도 자연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들의 하루가 특별하다고 할 수도 없어 보였다. 그곳을 찾은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이유를 가지고, 비슷한 하루를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공장 같은 하루를 찍어내는 게 싫었고 별일 없어도 평범한 일상이 좋았다.


주말에는 사람들을 피해 나들이를 가고 싶었다. 나는 파리의 서쪽 편에 있는 불로뉴 숲과 그랑트자트 섬 중에서 고민을 했다. 두 장소는 지도상으로 거의 붙어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거리를 가늠할 수는 없었다. 불로뉴 숲의 면적은 지도를 아주 많이 덮을 정도로 거대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파리 도시 전체 면적과 비교해도 절대 작아 보이지 않았다. 그에 반해 그랑트자트 섬은 작았다. 파리를 조금 벗어난 곳에 있긴 했지만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려운 것과 쉬운 것 중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늘 쉬운 것이었다.


나는 쉬운 그랑트자트 섬에 가고 싶었다. 오랜만에 해가 따뜻한 파리의 날씨에 더 어울리는 곳은 그랑트자트 섬이었다. 일요일은 아니지만 토요일 오후에 어울리는 곳도 그랑트자트 섬이었다. 쇠라의 빛이 멈춰있는 그림, 그 그림의 모습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은 그곳이었다. 작은 섬에서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파리를 그린 그림들을 볼 때면 꼭 그 배경이 된 곳을 찾아가고 싶어졌다. 그림 속의 아름다운 세상이 진짜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위대한 작가의 세상이 내가 본 세상과 아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나는 그곳에 있는 나를 보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가며 그 섬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생각했다. 백 년 전의 모습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상상일지도 몰랐다. 그 사이에는 세계 전쟁과 수많은 사회 운동이 있었고, 난해한 미술 작품들이 세상을 가득 채워놓았다. 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에는 지난 몇 세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시간에 꾹꾹 눌러 담긴 역사는 어느 때보다도 복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의 풍경이 조금은 남아있길 원했다. 그 많은 시간을 견뎌내고도 연속적인 시간의 흔적을 가지고 있길 바랐다.


섬에는 백 년 전의 화가들이 그림을 그린 장소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관광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지만, 안내판에는 친절하게 적혀있었다. 이곳은 모네가, 쇠라가, 시냐크가 그림을 그린 장소입니다. 그곳에 설명된 그림과 센강이 흐르는 풍경을 번갈아 보았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생각보다 닮은 부분은 많지 않았다. 희미한 흔적들만 있었다. 저기 보이는 다리는 백 년 전에도 저기에 있었구나. 강 건너 희미하게 보이는, 이제는 다른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구나. 그림에 그려진 강 건너편의 주황 지붕의 집은 저걸 보고 그린 걸까. 지금은 이렇게 보도 블럭이 깔리고, 잔디밭은 많이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양산을 들고 앉아 있었을까.


아무것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쇠라의 그림에서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일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었지만, 지금의 그곳은 사람 없이 한적한 토요일 오후를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주거지의 역할만 하고 있는 그 섬은 상상과 다른 모습이었지만 자연스러웠다. 나는 점심을 때울 식당도 거의 없는 그곳에서 오후를 다 보냈다. 한적한 남의 마을에 놀러 와 홀로 산책하며, 주말의 휴식은 이런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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