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lawa Szymborska
2022년 10월 10일 월요일
갑자기 생긴 일정 때문에 분주하게 일주일을 보내야 했다. 이렇게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으니 일상의 궤도를 벗어났다가 이제야 제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십여 년에 걸쳐 호흡에 집중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온 덕분에 얻은 귀한 열매가 있다면 '알아차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행을 통한 심오한 깨달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작은 균열을 바로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안팎으로 모두 어수선하던 시기에 적힌 일기를 보면 그러한 알아차림에 대한 경험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포슬포슬 살이 오르고 있는 핑크 뮬리(Pink Muhly Grass)가 너울거리는 트레일을 걸으며 뭉개짐에 대한 사색에 잠겼다. 저무는 해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와 책을 펼치니 때마침 Aristotle (384 BC - 322 BC)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겨난다.' 이렇게 글을 통해 우연히 만나는 운 좋은 발견은 언제든지 신선하고 반갑다. 대체로 잘 유지되고 있던 마음챙김이 흐트러지면 누구에게나 다양한 증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데, 나의 경우는 다음과 같은 모습이 관찰된다. 말이 뭉개지고, 글이 뭉개지고, 자세가 뭉개지고, 걸음걸이가 뭉개지고, 얼굴이 뭉개진다. 감사함이 줄어들고, 짜증이 늘어나며, 숨이 밭아지고, 말하는 속도가 빨라지며, 귀는 닫히고, 문장이 토막토막 끊긴다. 가만히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집중이 어렵고, 평정심을 잃는다."
내가 이런저런 뭉개짐을 경험한 뒤에 다시 돌아오는 곳은 '숨'이다. 어쩌면 '숨결'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 숨결에 집중하면 매 순간 들이키고 내뱉는 호흡의 속도와 높낮이가 느껴진다. 그렇게 숨결이 지닌 고유한 리듬 안에 머물고 있으면 서서히 나만의 중심을 되찾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아직도 뭉개짐과 맑아짐 사이를 오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마치 여러 차례 길을 떠났다 매 번 집으로 돌아오는 여행자처럼, 나는 뭉개짐의 세계에 머물다 숨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길을 잃고 헤매는 처지지만 그래도 위안이 되어주는 건, 예전보다 귀로(歸路)를 찾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과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안식처가 내 안에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오늘 미국은 콜럼버스의 날/원주민의 날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휴일이다. 그러기에 더욱 패러독스와 상생의 따뜻함을 모두 끌어안은 아름다운 여류 시인 Wislawa Szymborska (1923 - 2012)의 작품이 생각나는 날이기도 하다.
<두 번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실습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