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ch Fromm
2022년 9월 28일 수요일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오는가 싶더니, 며칠 전부터 다시 고개를 내민 더위가 여름이 떠날 때까지 조금 기다려주자고 양해를 구하고 있다. 여름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듯, 가을은 조바심을 내지 않고 먼발치에서 그녀의 마지막 춤사위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조금 시간이 있어서 그동안 저장해 두었던 메모 파일을 열어보았다. 메모는 영문 알파벳 순서로 나열된 각각의 폴더 안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었다. 불교심리학/ 칼 융/ 가족/ 음식/ 명상/ 마음챙김/ 미니멀리즘/ 음악/ 부모교육/ 철학/ 시/ 심리학/ 성찰/ 슈퍼비전/ 선(禪)으로 정리된 폴더를 살펴보았다.
그렇게 이 메모 저 메모를 뒤적이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Erich Fromm (1900 - 1980)의 <자기를 위한 인간>를 읽고 나서 발췌해 놓은 보물단지를 찾았다. 어제 문득 떠오른 톨스토이에 이어, 오늘 이렇게 프롬을 만난 건, 나의 주특기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 작용의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메모장에는 참으로 '프롬다운' 지혜가 아주 '프롬스럽게' 표현된 글로 남겨져 있었다. 그중에서 몇 개를 나눠보자면 아래와 같다.
"생산적 사랑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성장을 위한 수고와 배려와 책임이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을 생산적으로 사랑한다는 뜻은 그 사람의 인간적인 핵심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이 인류를 대표하는 존재라 생각하며 그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배려와 책임이 사랑을 구성하는 요소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지식이 없으면 사랑은 지배와 소유로 전락할 뿐이다."
"어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을 그 자체로 사랑한다는 뜻이다."
"불행의 근본적인 이유는 생산(자발성)의 결여, 공허한 삶, 사랑할 수 없는 무력감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많은 '내적 결함(inner defect)'이 있다."
"거듭 말하지만 지적인 통찰만으로는 신경증 치료에 충분하지 않다. 치료적 효과가 있는 통찰은 경험에 기반한 통찰, 즉 자아에 대해 지적으로는 물론 정서적으로도 알고 있는 통찰이다."
"삶의 존중, 즉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존중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존중은 삶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것이며, 정신적인 건강을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파괴적인 사람은 파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결코 행복하지 않다. 파괴로 인해 그 자신의 존재까지 약화되고 훼손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건강한 사람은 예절과 사랑과 용기를 동경하며, 그와 관련된 행위에 영향을 받는다. 예절과 사랑과 용기가 그의 삶을 떠받치는 힘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양심은 인간을 본래의 자신에게로 되돌려 보내는 목소리며, 양심을 통해 인간은 본래의 자신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깨닫는다."
"인간의 삶에서 주된 과제는 자신을 잉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잠재된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결과물은 자신의 인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