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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by Rainsonata

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사랑을 받으면 선(善)해지고, 사랑을 하면 용감해진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그 후 나의 삶을 반추하거나,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 문장이 배너 광고처럼 마음의 시선을 주목시킨다.


누군가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은 모두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단 한 사람을 위해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 진다. 그 사람 앞에서는 잘난 사람이 아니라 됨됨이가 된 사람이 되고 싶고, 짐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나의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나의 시간과 공간까지도 모두 아껴주는 것을 알기에, 나 또한 스스로를 돌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남도 나를 이렇게 아끼는데, 어떻게 나 자신이 나를 아무렇게나 방치할 수 있겠는가. 나를 진정 사랑하는 그 사람은 지금의 내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과거와 미래의 나까지 와락 끌어안는다. 여기서 무조건적인 사랑의 미덕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데에 있다. 이러한 사랑은 뜨거울 수 없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낀다면 뜨거운 사랑이 아닌 따뜻한 사랑을 주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나를 자라게 하고, 나를 꿈꾸게 하고, 나를 자유롭게 하는 그러한 사랑은 위대하고 성스럽다.


'사랑을 하면 용감해진다'는 표현에서 '용감함'의 한계치가 무한하다는 것을 엄마가 되어 비로소 깨달았다. 아무래도 그전까지 '받는 사랑'에 더 익숙했던 터라 '주는 사랑'의 어마 무시한 괴력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꼬물꼬물 하던 작은 생명체의 엄마가 되어 아이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다. 이토록 경이로운 여정 속에서 나는 그동안 받았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랄라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는 사랑을 주는 행복을 모르고 죽었을 것이다. 랄라의 안전과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나는 용감해지고 싶었고, 신기하게도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정말 더 용감해졌다. 처음에는 소란스러운 용감함이었다. 말과 표정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용감함의 시기가 지나자, 용기라는 것이 제법 중심을 잡고 내 안 깊은 곳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끈과 같아서 나의 용기를 랄라가 느끼고 있음을 나도 느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사랑하기에 용감해질 수 있는 사람은 결국은 선(善)한 사람이기도 하다.


한자로 사랑 애(愛)의 어원은 '감싸고 지킨다'는 뜻이라고 한다. 감싸기 위해서는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해석으로는 '마음을 소중히 여겨 천천히 상대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사랑(愛)의 한자에 담겨있다고 한다. 오래전에는 '마음을 전해준다' '아낀다'는 의미로 사랑(愛)을 사용했다고도 한다. 받는 사랑과 주는 사랑은 둘로 나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사랑을 둘로 쪼갤 수 있겠는가. 오른쪽 사랑 왼쪽 사랑은 없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사랑은 편을 가를 수 없었다. 그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프랙털처럼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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