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2020년 12월 15일
며칠 전 스톰과 함께 공사가 한창인 새집이 내려다보이는 산책로를 찾았다. 이제 지붕이 올라갔으니 한국식으로 말하면 서까래가 놓였다. 이곳에서 간소하고 아름다운 삶을 꿈꾼다. 드디어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생각'에서 '현실'로 바꾸는 과정을 경험 중이다. COVID-19가 아니었다면 이미 올가을에 랄라를 캠퍼스로 떠나보내고, 빈 둥지 시기(Empty Nest Period)를 맞이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도 가족이 무사히 이주하고, 곧 새집 장만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일등 공신은 ‘비움의 실천’이다. 앞날을 대비해 차근차근 준비해두면 위기의 순간에 힘이 될 거라고 하신 할머니 말씀은 이번에도 옳았다.
실제로 우리는 비움의 선행학습 덕분에 참 많은 것을 얻었다. 지난 10년간 꾸준한 ‘비움’을 실천한 결과로 7피트 정방형 소형 컨테이너에 모든 이삿짐을 실을 수 있었고, 덕분에 장거리 이사 비용도 훨씬 절약할 수 있었다. 특히 지금처럼 여러 사람과 접촉하는 상황이 조심스러운 시기에, 살림살이가 워낙 단출하다 보니 우리끼리 비대면으로 안전하게 이삿짐을 옮길 수 있었고, 이사하는 내내 마음도 편했다. 불필요한 물건이 사라지자 필요한 것만 남았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작은 집에서 소소한 일상을 꿈꿀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어느 날, 오랜 동료가 ‘비움’에 관심이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나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정리해 놓은 글이 있는데, 이 기회에 여러분과 나눠보고 싶다. 혹시 ‘비움’에 관심이 있거나, ‘간소한 삶’을 실천하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우리의 경험담이 조금이나마 용기와 희망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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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의 연습
제 경우에는 물건을 정리하는 과정 모두가 연습이며 놀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호기심과 동기부여에 도움이 되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시작해야지 오래 꾸준히 할 수 있어요. 절대 무리하지 마시고, 매 순간이 소중한 경험이라고 스스로 상기시켜주는 지혜가 필요해요.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생각하면, 더 멀리 내 보폭에 맞춰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어요. 제가 실천한 몇 가지 정리법을 나눠볼게요.
1. 버릴 물건은 쓰레기 수거 일에 맞춰 즉시 처리하기
2. 아직 쓸만하지만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모아, 한 달에 한 번씩 시민단체에 기부하기
3. 고가의 물건은 경매 또는 중고 매매 사이트를 통해 판매하기
4. 주위에 내가 가진 물건이 필요해서 찾는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전해주기
(이만큼만 해도 집에 공간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것을 보고 음미하는 시간도 큰 활력소가 돼요. 그리고 수천 번 이 생각을 했죠. ‘내가 도대체 왜 이 많은 물건을 끌어안고 살았을까?’ 그런데 이게 아주 좋은 마음공부가 돼요)
5. 필요한 물건은 따로 분류해서 잘 보관하기
6. 언젠가 때가 오면 처리할 수 있는 물건도 미리 분류 작업을 세밀하게 한 후에 보관하기 (예: 옷, 신발, 장신구, 소품, 식기, 주방용품, 책, 화장품, 문구용품, 아이가 만든 작품, 귀중품, 선물, 서류, 사진 등등)
지금 이 단계부터는 물건이 가진 가치/보관/의미의 한계성을 고려하며 남겨진 물건을 찬찬히 검토해보시고, 마음이 준비된 만큼만 정리하세요. 그런데 이 과정은 반드시 규칙적으로 반복되어야만 정리가 탄력을 받고, 결정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개인적 경험을 통해 제가 어떤 물건에 대한 미련, 집착 또는 과잉된 의미를 부여할수록 결정이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단계를 극복하고 난 후,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과 인간관계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하고, 연습이 계속될수록 자연스럽게 내면의 소리가 들려왔어요. 이제 이 물건과는 안녕~ 하자. 그런 마음이 들 때, 물건의 새로운 임자가 짠~하고 나타나기도 하고, 상황에 맞는 처리법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이런 순간을 놓치지 말고, 물건을 잘 떠나보내면 제 마음도 편하고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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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소한 삶의 선물
1. 시간 (청소하는 시간, 정리하는 시간, 물건을 관리하는 시간이 줄면서 시간의 여유가 생기고, 몸과 마음을 쉴 수 있어요)
2. 공간 (시각적 소음과 자극이 없어지면서 여백의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어요)
3. 자유 (언제 어디서나 여행길에 오를 수 있는 자유, 물건으로부터의 해방감, 불필요한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홀가분한 삶이 찾아와요)
4. 고요 (눈, 귀, 마음이 고요해지면 불필요한 말을 하는 횟수도 줄어요)
5. 충만감 (물건이 줄어들수록 만족감과 내면적 충만감은 더욱 커져요)
6. 깊어진 관계 (주변이 정리되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도 깊어져요)
7. 집중 (소유물이 적어질수록 to-do-list 또한 짧아지고, 그만큼 인생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돼요)
8. 절약/저축 (견물생심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서, 저축이 늘어나고 친환경적인 삶에 관한 관심도 깊어져요. 자연보호는 물론이고 우리 아이와 다음 세대들이 사용해야 할 몫의 자원을 절약하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어요)
9. 알아차림 (필요 이상의 물건을 소유하고 있을 때와 간소한 삶을 살 때의 차이점이 뚜렷해지면서, 마음 작용과 인과관계에 대해 알아차림이 더욱 선명해져요)
10. 감사 (지금 이 순간이 축복이며 이미 충분히 편안한 삶을 살고 있음에 감사하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