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2021년 9월 2일
작년에 이주를 준비하면서 서가의 책을 정리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거품이라는 ‘허세’가 책을 통해서도 표출된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아주 많은 거품을 제거할 수 있었다. 분명 하루아침에 결정한 것이라면 떠나보내기 어려웠을 테지만, 이미 간소한 삶을 실천해보려고 노력한 시간이 제법 쌓였던 터라, 깊은 집착의 대상인 책까지도 원칙에 따라 폐기/나눔/보관으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었다. 그 후 남겨진 책을 독서 치료, 심리학, 철학, 문학, 수행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분류한 뒤, 도서목록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책의 크기와 내용을 살피면서 이삿짐 상자에 넣는 작업을 2020년 1월에 마쳤다.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그리웠던 책들과 새집에서 다시 만났다. 아무리 짐이 적어졌다고 해도 역시 새집에서 이삿짐을 풀고 정리하는 일은 인내와 창의성이 필요했다. 우리 집은 이번 이사를 계기로 최소한의 가구만으로 생활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그래서 새 책장을 사는 대신 부엌에 있는 식료품 저장고 선반을 책장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덕분에 책들은 하얀색 문까지 달린 아주 작고 귀여운 방을 갖게 되었다. 햇살 좋은 날, 책장 문을 활짝 열고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는 기쁨은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포근하다.
오랜만에 마주한 책을 찬찬히 바라보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떠올랐다. 그리고 때로는 ‘너’가 ‘책’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책)도 그렇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서도 ‘사람’이 ‘책’이 될 수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방문객>
사람(책)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