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선물

미니멀리즘

by Rainsonata

2022년 10월 26일 수요일


며칠 전은 나의 생일이었다. 가을에 생일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고마운 하루이기도 했다. 미니멀리즘을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물건 정리에 들어갔을 때, 버릴 물건을 쓰레기 수거일에 맞춰 즉시 처리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아직 쓸만한 물건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만약 이처럼 물건을 정리/분류/처리하는 과정이 쉽다면 어느 누구도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고비가 있고 도전의 순간이 찾아온다. 비움의 연습을 하면서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과제는 수 십 년 동안 모아둔 선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였다. 그래서 일부러 못 본 척하고 정리를 미루어 두었다. 다른 짐들은 새 주인을 만나 떠나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졌지만, 선물 꾸러미와 책 꾸러미는 마지막까지 내 곁에 남아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정말 답이 없었던 나는 책까지 사서 읽었다. 그 결과 선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마음은 마음, 물건은 물건, 그 마음을 감사히 받은 것으로 당신은 성의를 다했다"라는 글을 읽으며 용기도 얻었다. 나의 사고와 판단이 균형을 되찾자, 결심은 한결 쉬워졌고, 선물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어떤 물건이든 받는 것보다 버리는 것/떠나보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다. 내가 선물 정리를 깔끔하게 끝낸 후, 주위 사람들에게 비움을 실천하고 있다고 알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선물이라는 특성상 이 부분은 나 혼자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어서, 앞으로 마음의 선물은 고맙게 받겠지만, 물건으로 주는 선물은 사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두는 편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은 시작이 반이기도 하지만, 꾸준한 노력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완주가 어렵다. 그러므로 물건을 다시 늘리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 물건이나 함부로 받지 않고, 얻지 않도록 평소에도 늘 마음을 챙겨야 한다. 간소한 삶을 시작하고 오늘날까지 요요현상 없이 미니멀 라이프를 유지하게 된 데는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의 공로가 크다. 스톰과 내가 지향하는 삶의 양식을 존중하고, 새로운 도전을 지지하는 이들의 존재가 비움을 연습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올해 생일에는 친구가 여행 중에 찍은 사진과 글을 선물로 주었다. 호숫가에서 가을 휴가를 보내면서 내가 생각났던 순간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풍경을 사진으로 남긴 후, 그 밑에 그녀의 사색이 담긴 글을 적어 보내왔다. 이런 애정 가득한 선물을 친구로부터 받을 수 있다니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소중한 인연들로 말미암아 나의 삶은 충분히 풍요롭고 원만하다.

keyword
이전 25화디지털 청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