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떠나고 싶었을까?
대학교를 졸업 한 이후, 열심히 돈만 벌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한 시기였지요. 5년 동안 열심히 일만 했어요. 그 보상으로 일하는 시간 외에는 놀고, 먹으며 신나게 살 수 있는 월급이 입금되었고요. 어느새 버는 족족 시원하게 다 써버리는 삶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나이는 20대 후반,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에 늦은 나이라고 모두가 뜯어말리던 시기였지요. 미국 대학원 준비를 한다고 하니 부모님은 귓등으로도 안 들으셨어요.
“그래, 어디 맘대로 한 번 해봐“
푸흡. 대충 이런 느낌의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제가 원래 뭐든 한다고 하고 쉽게 포기도 잘하는 성격이거든요. 부모님은 제가 진짜 유학을 떠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 저 자신부터도 정말 떠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직장생활에서 더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제 업무의 한계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죠. 더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가 잦아들지 않으니 뭐든 해보고 싶었습니다. 부러지는 영어로 구글링을 시작했어요. 제 관심사와 유사한 전공이 꽤 많이 찾아지더군요. 당시 저는 주택분양 마케팅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해 부동산 개발사업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주택” 분야를 깊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었고요. 국가에서 주관하는 “주택정책” 공부에 비중을 둘지, 투자 관점으로의 “부동산” 접근법을 더 배울지 고민이 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토플과 GRE 점수였고, 더 장애물처럼 느껴진 건 “학비와 생활비”였어요.
그때부터 저축을 시작했습니다. 업무 시간 외에는 토플과 GRE 시험 준비에 온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었고요. 영어를 잘하지도 못했는데 시험 영어에는 더 취약했거든요. 대학원 지원이 가능한 영어 점수를 따는 것만도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지요. 그럭저럭 지원이 가능한 최소 요건을 갖추는 데에만 1년이 걸렸어요.
추천서 요청, 학업 계획서까지 고통스럽고 지난한 지원 과정을 1년 반 가량 준비했습니다. 당시엔 지원 과정만 힘들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미국에 가보니 더 혹독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다행인 건 준비기간 동안 배우고자 하는 분야가 명확해졌다는 것이었어요. 미국 대학원에 진학해 선진국의 주택정책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거든요.
지원할 학교를 선택하기 위해 Planetizen에서 소개하는 “도시계획 전공“의 상위권 대학 20개를 추렸습니다. 모아놓은 돈이 부족한 제게는 “학비”가 가장 큰 허들이었어요. 그래서 20개 학교의 학비를 조사하고, 학교가 위치한 지역의 생활비 수준도 알아봤습니다. 그렇게 사립학교와 집 렌트비가 비싼 지역을 전부 제외하니 3개의 학교만 남더군요.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UNC)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Universtiy of Florida
8-10월 사이 대학원 지원을 모두 마쳤습니다.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에너지와 열정을 쏟았던 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내심 기대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었고요. 만약 불합격 소식이 들리면 크나 큰 좌절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 같았답니다.
다행스럽게도 다음 해 2월 말, UNC에서 처음으로 합격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그때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메일로 합격 사실을 알았거든요. 너무 기쁜 나머지 괴성에 가까운 함성을 질렀어요. 그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오신 부모님께 이 기쁜 소식을 전했지요.
“합격한 건 너무 축하하지만, 꼭 가야겠니?”
엄마의 첫 반응이었습니다.
“나이도 있고, 결혼도 해야 하고.....”
섭섭하고 슬픈 마음이 앞섰습니다. 지나고 나니 부모님이 걱정하셨던 부분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요.
대학원 합격 소식과 함께 이직하고 싶었던 회사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합격했는데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