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프로성장러 김양

나는 브런치 글의 힘을 믿었다.

아빠에 대해 글을 쓰면서 아빠에 대한 그리움, 추억, 미움, 애정, 기쁨, 사랑, 안타까움, 슬픔까지....

모든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아빠의 죽음을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인생의 한 과정이자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아빠를 추억하며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아질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아빠, 안녕> 글을 마치는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듯 잘 지내다가도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흘리고, 펑펑 울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간다.

그래, 이런 것도 인생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사실 말고는 글을 쓰기 전과 후의 슬픔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이 글을 쓰며 계속해서 아빠를 생각했고, 아빠의 삶과 인생에 대해서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우리의 시간을 추억하면서 말이다. 그 점만 보더라도 내가 남긴 글들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나는 이렇게 아빠의 죽음에 조금씩 이별을 고하고 있다. 아빠에게 이별을 고하는 게 아니라 아빠의 죽음에 안녕을 외치면서 말이다.


아빠를 이해하기 위한 한걸음,

아빠가 보고 싶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치는 발걸음,

아빠를 그리워하면서도 용기 내서 내디뎌보는 씩씩한 발걸음까지,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아빠의 세계관과 가까워지면서 아빠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도 익숙해져 간다.




아빠는 이런 내 감정이나 슬픔을 알고 있었던 걸까?

돌아가신 뒤 내 꿈에 네 번이나 나왔다.


첫 꿈은 아빠가 돌아가신 직후였다. 아빠는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 날 입었던 주황색 겨울 가디건을 입고 있었고, 가만히 앉아 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제 3자 입장에서 아빠와 아이를 바라봤고, 우리는 어떤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아빠의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눈앞이 빠르게 뿌예졌다. 잠에서 깬 뒤에도 너무 슬퍼서 한동안은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먹먹했다.

두 번째 꿈은 더 현실적이었고, 장소는 부모님 댁이었다. 화창한 날씨였고, 나는 꿈속에서도 이게 꿈인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아빠는 살아생전 모습과 동일하게 흰색 속옷 차림새였고, 나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아빠는 내가 너무 오래 잔다고 생각했는지 “왜 이렇게 오래 자?“ 라고 물었고, 나는 아빠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아빠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아빠, 다시 온 거야?”라고 물었더니 아빠는 최근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세 번째 꿈에는 정말 예쁜 분홍색 폴로 티셔츠를 입고, 남색 면바지를 입고 내 꿈에 나왔다. 역시 맑은 날이었고, 장소는 교회였는데 내부 꽃 장식이 예뻤다. 엄마, 언니도 같이 있었는데 두 사람에게는 아빠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아빠는 “다들 잘 지내네“ 하면서 만족하는 모습이었다가 나를 바라보며 배가 고프다고 했다.

마지막이 가장 현실에 가까운 꿈이었다. 아빠는 돌아가시기 직전의 아픈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계셨지만 정신은 온전했다. 나는 문을 살짝 열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차마 아빠 옆으로 다가가진 못하고 문 앞에 서서 나지막이 말했다. “아빠, 사랑해.....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꼭 얘기해 줘” 아빠는 옆으로 누워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문 앞에 앉아 흐느껴 울었다. 내가 아빠를 병에서 구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히지만 아빠도 슬프거나 두려울 때 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기쁘기도 했다.


나는 어떤 꿈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아빠를 많이 생각하는구나, 아빠가 보고 싶구나, 생각하며 아빠를 맘껏 그리워했다. 그리고 꿈에라도 나타나준 아빠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아빠가 그립고, 보고 싶고, 슬플 때마다 생각한다. 아빠는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은 편안한 곳으로 떠나신 거라고 말이다.

누구나 지구에서의 여행을 잘 마치고 아름답게 생을 마감한다고,

지금껏 내 인생에 함께해 준 아빠에게 고마운 마음을 더 많이 가지자고,

인생이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는 거니까 아빠 역시 사는 내내 희로애락을 느끼며 충분히 행복하셨을 거라고,

결국 우리는 모두 죽는 거라고,

그러니 사는 동안 지금, 현재, 소중한 사람들에게 충실하면서, 그저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수밖에 없는 거라고,


아빠한테 좀 더 잘해드릴걸, 하는 후회는 이렇게 지나간다.

그리움과 슬픔도 왔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한다.

마지막까지 남아 나를 괴롭히는 안타까운 마음은 아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드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빠를 믿어요”

“아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요”


살아온 시대가 다르니까 이해할 순 없어도 인정할 수는 있었을 텐데,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아빠한테 더 많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해드릴걸,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여전히 괴롭고 힘들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은 가족을 더 많이 사랑하고, 그 사랑을 표현하면서 사는 일이다.


엄마, 아이, 그리고 남편에게 말이다.


내 삶의 방식을 강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도 괜찮다고,

우리는 모두 입체적인 특징을 갖고 있고, 그게 각자의 장단점이자 고유한 특성이 되는 거라고,

나도 언제나 이상적인 모습으로 살진 못한다고,

그러니 사랑하는 가족끼리 서로의 부족한 모습을 보듬어주고, 더 많이 사랑해 주자고,


이렇게 아빠의 죽음이 내게 남긴 것들을 돌아본다.

아빠를 추억하면서,


여전히 아빠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지만

이 글을 마치면 우리 아빠 잘 떠날 수 있게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감정이 늘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나는 여전히 계속 울기도 하겠지만,

괜찮지 않은 감정도 괜찮다는 걸 안다.


그러니까 아빠, 부디 편안히 떠나요,

이제 진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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