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구원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니요!
저는 대학원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 1년간 백수로 지냈습니다. 구인 플랫폼을 활용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급해지는 마음에 지인, 혹은 지인의 지인까지 만나며 모든 인맥을 총 동원해 입사지원을 이어갔어요. 어디에서든 일하고 싶었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해지고 있었거든요. 언제까지 부모님 댁에서 신세 지는 기분으로 살 순 없었어요.
지원할 수 있는 곳은 다 지원하며 간절하게 합격 소식을 기다렸지만 어느 곳에서도 최종 합격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의 애매한 회사 경력(6년)과 다소 늦은 대학원 유학(한국 나이 33세 졸업),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미혼인 상태를 대부분의 민간 회사에서 불편해했던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회사에서 선호하는 경력자는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3~4년 정도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거나,
10년 이상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어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사람 - 단, 결혼해서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기 때문에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의 무리수를 회사가 떠안지 않아도 되는 사람,
다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지인의 지인의 소개로 "서울연구원"에서 주택정책을 연구하는 박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며 지내다 같이 연구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지원을 하긴 했지만 가장 일해보고 싶은 곳은 "연구원"이었거든요. 저의 전공이나 당시 관심사와 정확하게 일치했고, 공공산하연구원은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했던 시절이에요.
서울연구원은 서초구에 위치하고 있지만 나름 숲세권이라 지하철이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도 15분 이상은 걸어야 도착할 수 있었어요. 당시 제가 살던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하면 2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취직하기도 했고, 진심으로 일해보고 싶었던 곳이라 출퇴근길 역시 기쁜 마음이었지요. 당시에는 한국의 주택정책에 무지했기에 출퇴근 버스 안에서 도움이 될만한 책을 읽으며 독서를 할 수 있어 유용한 시간이기도 했어요.
저는 서울연구원에서 주택정책과 관련된 다양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주택정책'을 포함한 부동산정책은 대부분 국가 주도 하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서울시와 같은 지자체는 주로 '실행'을 담당하는 기관이었어요. 서울연구원은 서울시의 정책을 연구하는 서울시 산하 연구원이었고요. 그래서 저는 주로 서울시민이 누리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주거복지정책'과 관련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서울시는 정부 입장에서 보면 지자체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서울은 우리나라의 수도이고, 인구 20%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슈퍼 도시라서 나름 서울시 고유의 주거복지 프로그램도 가지고 있었어요. 제 입장에서는 다양한 데이터와 정보를 가지고 정부의 정책과 서울시의 고유 프로그램을 연구할 수 있는 최적의 직장이었지요.
2년 넘게 한국의 주택정책을 공부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주거약자를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공공주택은 왜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하는지,
정부와 서울시의 주거비 보조 프로그램은 왜 공존할 수 없는지,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어떤 사람이 어느 정도의 혜택을 받고 주거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지,
저소득층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달체계는 탄탄한 건지,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도 여전히 노숙자가 존재하고 저소득층의 주거위기는 계속해서 사회의 문제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죠.
이후에는 주거실태조사 데이터를 분석하고, 서울시의 주거복지센터 운영 및 평가체계 관련 보고서 작성을 보조하면서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연구를 향해 나아가는 기분도 들었어요. 다양한 주거복지프로그램을 평가해서 더 나은 프로그램으로 개선될 수 있는 일을 돕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고요.
대부분의 공공산하 연구원에서 과제 발의와 책임은 박사 연구원의 몫이고, 석사 연구원은 이를 보조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그래서인지 박사 연구원은 대부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만, 석사 연구원은 100% 계약직으로 고용이 되었어요. 저는 연구원에서 근무하는 처음 3년은 이 체계에 큰 불만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연구를 배우면서 책임은 떠안지 않아도 되는 구조에 만족하기도 했답니다. 당시 다시 미국으로 박사과정을 갈 생각이었기에 큰 불만도 없었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연구원에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느껴졌고, 어느 순간 고용 안정성에 대한 부분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그즈음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의 일환으로 일부 석사 연구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저 역시 운이 좋았는지 정규직 트랙의 석사 연구원이 되면서 고용 불안에서는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었고요. 하지만 석사학위로는 연구 책임이 될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체된 조직의 현실까지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어요. 다시 미국으로 가기 위해 박사과정을 준비하면서 지긋지긋했던 GRE도 다시 보고 학업계획서도 준비했지만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확신도 들었어요. 어느 순간 저는 다시 '가난한 공부쟁이'로 돌아갈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석사 때 돈 걱정으로 힘들었던 시기가 떠올랐거든요. 30대 초반까지는 해볼 만한 일이지만 40대가 되어서도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물론 이건 제 경제상황 등을 고려한 기준이므로 모두가 같은 생각일 수는 없습니다) 차선책으로 한국에서 박사과정에 합격해 수료까지 했지만 내면에서 올라오는 성장에 대한 욕구가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원하는게 무엇인지 명확하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에서 정체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면에서 올라오는 성장 욕구가 자꾸 제게 변화를 시도하라고 부추겼습니다. 한 때는 제게 꿈의 직장이었던 곳이 저의 성장을 가로막는 일터로 변해버린 기분이 들었지요. 연구원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성장한 부분이 있었고, 더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계속해서 사라지지 않은 것이니까요.
그때 문득 젊은 시절, 즐겁게 일했던 컨설팅 회사에서의 업무와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다시 컨설팅 일을 한다면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민간회사로 나가서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