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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Feb 10. 2023

저는 책 친구가 있습니다.

생각이 이어지는 순간.

저는 책 친구가 있습니다.


새로운 한 달. 독서모임을 새로 시작한다. 내가 쓴 글 중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는 글이 바로 독서모임 글이다. 기억에 남는 댓글이 하나 있다.


"내가 요즘 읽는 책을 궁금해하는 이가 있다는 것. 요즘 어떤 책을 읽는지 서로 궁금한 책친구가 있다는 것이 부럽습니다."


맞다. 독서 모임 전에는 책 친구가 없었다. 누구도 내가 읽는 책에 관심이 없고, 책으로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었다. 독서모임이 좋은 이유가 하나 늘었다. 바로 책 친구. 


마음을 먹고 나니 약간 걱정이 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혼자 나대는 것은 아닌지. 우선 마음에 가만히 담아두고 있으리라. 그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믿으며. 조금은 천천히 그 마음을 알아가면 될 테니. 


여느 날과 비슷하게 조금 일찍 커피문고에 갔다. 가방을 내려놓고 읽던 책을 꺼내 마저 읽었다. 현실과 분리된 책 세계에 미리 들어가고자. 책을 펴고 독서 노트를 펼친다. 조용한 커피문고를 비집고 들어오는 종소리.


"딸랑"


친구는 혹시 마음이 통하는 것일까? 한분이 일찍 오셨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동안 별일 없이 지냈다는 답이 돌아온다. 문을 닫고 커튼을 치며 조명을 낮췄다. 세상과 분리된, 책을 위한 공간을 따스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한 달에 새로운 규칙을 세웠다. 매달 첫 주, 각자 책 한 권을 가져온다. 임의로 뽑아 마지막 주에 함께 하나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각자 책을 가져와 읽는 것도 즐겁지만, 한 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무척 흥미 진진 할 테다.


함께 읽을 책 뽑기


규칙을 나누고 각자 가져온 책 이름을 써넣었다. <이방인>, <죽은 자의 집 청소>, <목마른 야채>,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그렇게 뽑힌 책은 <목마른 야채>이다. 같은 책에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기대된다. 다른 생각을 나누는 일이 기대된다. 이달 마지막 주가 궁금해진다.


책을 읽으려 할 때, 베로니카께서 조용히 선물을 꺼내셨다. 가죽으로 만든 책갈피다. 거기다 우리만을 위한 단어가 각인이 되어있다. '미뉴잇' 프랑스 어로 심야 라고 한다. 심야 책방을 의미 있게 만드는 책갈피. 선물을 고르기 위해 시간을 내고, 각인을 시간 낸 모습이 상상되어 고마운 마음이 커진다. 


나에게는 책 친구가 있다.


미뉴잇이 각인된 가죽 책갈피




O 쓰담 => 초록 (커피문고 대표)

   - <목요일에는 코코아를>에 '초록'을 만들어내는 이를 보며 지은 이름. 나만의 색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한 스푼 들어가 있다.

O 셜리 => 로즈

   - 장미라는 싱그러운 이름이라서 정했다.

O 베로니카 => 미뉴잇

   - 심야 책방을 생각하며 정한 이름.

O 어니스트 => 알투

   - <어스>에 나오는 주인공. 모두가 싫어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아 열심히 하는 알투처럼 살고 싶다는 의미에서 정한 이름.


*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는 다시 한번 복잡한 세상과 분리된다.



O 초록

   - 가져온 책: <목요일에 코코아를>

O 로즈

   - 가져온 책: <달과 6펜스>

   - 읽은 책: <거의 모든 거짓말>

O 미뉴잇

   - 가져온 책: <하나님과의 수다>

O 알투

    - 가져온 책: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 읽은 책: <라틴어 수업>



오늘의 질문


매주 질문을 준비한다. 질문은 책에서 나오기도 하고, 사색을 하며 준비하기도 한다. 질문을 하기 전. 미뉴잇이 한마디 하셨다.


"이번에 취직했습니다."


우린 축하했다. "축하할 일이지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준비한 질문은 사라지고, 번뜩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1번) 하고 싶은 일이지만 월급은 150만 원입니다. 다만, 한번 터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일이 있습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요."

(2번) 해야만 하는 일이고 월급은 350만 원입니다. 완만한 성장만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단, 10년 뒤부터, 해고당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실 건가요?"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선택한다. 정답이 있는 일이 아니니, 자유로운 이야기가 오갔다.



O 초록

   - 선택 (1번) 

   - 독립서점을 운영한다는 일 자체가 이미 1번으로 들어선 기분입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우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O 로즈

   - 선택 (2번) 

   - 아직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위험에 몸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혹시나 좋아하는 일을 알게 될 때까지 2번으로 준비하고 싶습니다.

O 미뉴잇

   - 선택 (1번)

   - 취직으로 2번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1번을 동경합니다. 언젠가 1번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O 알투

    - 선택 (1번)

    - 좋아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글쓰기. 마음은 1번이지만, 걸리는 일이 많습니다. 2번을 하며 병행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에게 선택 기회가 있다면 1번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다양하고, 모두들 의미 있는 선택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우린 잠시 복잡한 문제를 뒤로하고 책을 읽으러 갔다.


생각이 이어지는 순간.


가끔 소설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내가 갑작스럽게 변경한 질문은 취직한 미뉴잇이 고민하고 있던 일이라고 한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로즈가 가져온 책 <달과 6펜스> 주제였다.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책 읽기가 끝나고 로즈는 책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달이라는 이상을 좇아 증권거래인이라는 직업을 버리고 미술가가 된 주인공. 그에게 남은 건 화폐에 가장 아래에 있는 6펜스가 손에 남은 현실을 깨닫게 한다.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지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한다. 


오늘 준비한 질문과 책이 이어졌다. 독서모임이 친구를 만들어준 순간으로 기억되겠다. 오래도록. 의도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되었다. 그들이 귀하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 덕분에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참 소중하다.


그들도 나를 친구로 생각할까? 그러길 바란다. 아니, 시간이 지난다면 서로가 반드시 책 친구라고 생각할 테다. 나이도, 이름도, 직업도 모르지만, 오직 책으로 연결된 친구. 오늘의 소설 같은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친구임을 깨닫게 될 일이 앞으로도 계속 벌어지리라. 


생각이 이어지는 순간. 독서모임이 귀해지는 순간. 오래도록 기억할 순간이다.



O 초록

   - "허를 찔렸다. 내가 비상식이라 생각한 것이 다른 각도에서 보면 상식적인 일이기도 한 건가?"

      <목요일에 코코아를>

O 로즈

   - "작가란 글 쓰는 즐거움과 생각의 짐을 벗어버리는 데서 보람을 찾아야 할 뿐, 다른 것은 무관심하여야 하며, 칭찬이나 비난, 성공이나 실패에는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달과 6펜스>

   => 글 쓰는 분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O 미뉴잇

   - "상상"이야말로 우주에서 소원을 비는 유일한 방법이야. 인간들이여, 상상으로 우주를 변화시키시오. 이것을 할 수 있는 건 당신들 뿐이니" <하나님과의 수다>

O 알투

    - "마음의 병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한 줄 요약: 책이 이어준 친구. 책 친구.



P.S.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모임에 있는 분들에게. 그대들은 나에게 귀한 책 친구라고 말이죠. 그리고 많은 분들이 독서모임으로 책 친구를 만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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