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한잔.
책 친구들을 술로 표현해 볼까요?
접근하기 유독 어려운 술이 있다. 와인. 이름이 어렵고, 맛 표현도 생경하다. 다가가기 어려운 술이 바로 와인이다. 영어라고 생각하고 한참 읽고 나니, 사실 프랑스어이기도 하고, 프랑스어인 줄 알고 보고 있으니, 뒤편에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고 나를 비웃기도 한다. 레스토랑에 가면 더 주눅이 들게 하는 긴 이름 덕분에 함부로 읽을 수 없어 손으로 "이것 주세요."로 주문을 하기 일쑤다.
이번에 와인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서있다. 길을 찾아줄 책은 <와인 상식사전>이다. 와인이 어려운 술이 아님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와인이 만든 역사, 문화가 만든 길로 나를 안내한다.
와인 한잔.
와인은 유럽 역사 페이지마다 등장한다.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와인, 누군가를 위해 올려진 와인. 저마다 이유가 있다. 책 친구들에게 맞는 와인을 하나하나 꺼내본다. 볼이 큰 와인잔, 입술이 닿는 부분이 우아하게 굽어 있는 와인잔, 플루트처럼 쭉 빠진 와인잔까지. 이야기만큼이나 다른 잔을 그들 앞에 놓았다.
포도밭에는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와이너리는 콘서트장이 된다.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바바 가문은 포도에도 와인에도 오크통에서 음악 DNA를 심는다. 포도를 받아 발효하는 미생물에게도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오케스트라 공연을 준비한다.
진심을 다해 음악을 와인에다가 심었다. 음악을 업으로 삼은 가문이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이탈리아 유명 음악 가문인 스트라다바리 가문이 만든 스트라디바리오 바이올린이 라벨이 담긴다. 음악이 담긴 와인, 와인이 품은 음악. 그윽한 향과 묵직한 맛이 음악처럼 몸에 퍼진다.
동생 DNA에는 음악이 심겨 있다. DNA 음악으로 서점 공간을 가득 채운다. 책에도 커피에도, 쿠키에도 음악을 들려준다. 음악을 담은 서점, 서점이 품은 음악. 책과 음악이 섞여 독특한 향을 만들고, 묵직한 커피맛이 몸에 퍼진다. 어려운 일,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동생이 잊지 않으면 한다.
"너에게는 음악 DNA가 있단다. 힘들 때, 음악에 가끔 의지해보렴. 힘이 나고, 방향을 알려 줄 거야."
동생에게 음악이 담긴 와인을 한잔 따른다.
와인에는 즐거운 이야기만 품고 있지 않다. 삶처럼 슬픔 이야기도 담고 있다. 복잡한 정치 이야기 끝에는 죽음, 유배, 도망으로 종결짓는다. 이번 주인공은 합스부르크 유일한 여성 지도자 마리아 테레지아 딸이다.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이 유럽을 휩쓴다. 기존 권력가는 도망가야 한다. 도착한 곳이 시칠리아. 돈나푸가타 와이너리에 자리를 잡게 된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유럽을 정리한 나폴레옹에 대한 힘을 두려운 탓일까? 그녀는 추방된다. 두려움에 떨며 오스트리아 갔다. 온갖 충격 때문일까? 뇌졸중이 그녀를 죽음으로 밀었다.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 사이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슬픔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시로, 소설로 세공된다. 이야기는 죽지 않고,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녀는 언제 행복했을까? 아마 도망치는 그녀를 품어준 돈나푸가타 와이너리에서 그녀는 잠시 행복하지 않았을까? 살 수 있다는 희망이 그녀를 버티게 해주지 않았을까?
마리 님은 거친 삶을 살아간다. 마음이 쫓기는 하루를 견디며 다음날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쫓기기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주저앉게 된다. 우리에게는 피난처가 필요하다. 돈나푸가타 와이너리처럼. 마리 님에게 커피문고가 마음을 잠시 편안하게 쉬어 갈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
마리 님 앞에 놓인 잔에도 또르륵 소리를 내며 잔을 채워둔다. 마음을 조금이라도 쉬어가라는 마음을 담는다.
와인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것은 와이너리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건 모든 사람이다. 멋진 와인에 화려함을 더하니, 유독 눈이 가는 와인이 있다. 눈부신 옷은 패션 디자이너가 입히고, 찬란한 목걸이를 주얼리 디자이너가 걸어주니, 와인이 번쩍인다.
찬란한 파이퍼 하이직을 더 화려하게 만드는 사람은 마릴린 멀로. 샤넬 넘버 5를 입고 잠들고, 파이퍼 하이직으로 아침을 연다고 한다. 또, 욕조에 샴페인을 부어 사치스러운 목욕으로 와인을 더 호사스럽게 만들었다. 화려한 와인을 보니, 떠오른 책 친구가 있다. 샤샤.
샤샤님에게 눈이 부신 자신감이라는 옷을 입고, 찬란한 자존감을 목을 걸어드리고 싶다. 빛나는 샤샤님이 되길 바라며. 당당한 걸음으로 세상을 걸어가길 기원하는 마음과 와인을 잔에 가득 채웠다.
향과 맛을 만들어 내는 일. 와인에 이야기를 붙여내는 사람들. 이야기는 모여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리라. 우리 앞에 놓인 와인 한잔에 각자 이야기를 붙여 본다. 내 앞에 커다란 벽은 넘어졌다. 이제는 커다란 다리가 되었다. 와인으로 향해가는 다리.
오늘도 힘든 하루를 뒤로하고, 조심스럽게 잔을 부딪쳐본다.
"짠"
한 줄 요약: 와인이 어렵긴 합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는 이야기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