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휴대전화를 쓴다. 디지털 웰빙이 있다. 어떤 애플리케이션은 얼마나 썼는지 적나라하게 나온다. 가끔 보고 있으면, 내가 휴대폰인지 휴대폰이 나인지 모를 물아일체의 경지에 있다. 운전을 할 때 내비게이션을 쓴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가장 위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녀석이 유튜브인 것을 보면 민망하다.
나에게는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했다. 지금 디지털 독을 빼지 않으면, 스몸비족 (smombie: smartphoe + zombi)가 될 일이다. 독서모임은 독을 빼는 시간이 되었다.
활발한 인간관계를 하지 않는다. 밤 8시에 시작해 2시간 동안 나는 휴대폰에 방해 금지 모드를 켰다고 해서 급히 나를 찾을 사람은 없다. 나를 찾는 이들인 여자친구도 부모님도 모두 내가 모임에 간 사실을 아니 말이다.
방해 금지모드를 켰더니, 삶의 진행 모드가 켜진다. 휴대폰이 빼앗아간 주의가 책과 내 마음으로 온전히 몰아간다. 바로 디지털 디톡스를 하는 순간이다.
휴대폰 방해 금지모드를 켭니다. 삶 진행 모드를 켭니다.
같은 시간 우리는 모였다. 간단히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처음 봤지만,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한 사람이 있다. 독서모임에 오신 분들이 딱 그랬다(혹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두렵기는 하다). 여지없이 우리는 기갈난 책이야기를 했다. 한 주 동안 어떤 책과 함께 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쓰담 (커피문고 대표)
- 가져온 책: <더 셜리 클럽>
베로니카
- 가져온 책: <베로니카는 죽기로 했다>
- 읽은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살고 싶다는 농담>
셜리
- 가져온 책: <인생의 역사>
어니스트 (starry garden)
- 가져온 책: <수상한 초콜릿 가게>
- 읽은 책: <인듀어런스 호>,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더 셜리 클럽>
셜리 님이 가셔 오신 <더 셜리 클럽>은 나를 거쳐 쓰담에게 닿았다.
셜리는 셜리를 돌보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아무런 조건 없이 말이다. 마치 우리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나도 나를 돌보는 일에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장이 남는다.
베로니카는 허지웅 산문집을 읽으셨고, <물고기는 없다>를 소개했다. 표지가 이쁜 <물고기는 없다>와 문장이 빼어난 허지웅 산문집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베로니카 설명에 집에 있는 허지웅 씨의 책이 떠오른다. 재미있는 시선, 재미있는 문장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셜리 님은 <인생의 역사>을 소개한다. 산문과 시가 혼합된 책. 셜리 님이 들려주시는 문장 하나가 마음을 쿡쿡 찌른다.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들이 떠오른다. 독서는 나누는 것으로 풍부해지고, 잊히는 일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야기를 멈추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휴대폰 방해 금지 모드를 켰다. 책을 펼치고 한참을 봤다. 몸에서 디지털 독이 슬슬 빠져나간다. 집중력은 높아진다. 소설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고, 초콜릿 냄새는 코로 들어왔다. 등장인물들이 재잘거리는 말소리가 귀에 들린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띠링띠링' 소리가 난다. 현실로 돌아오라는 알람이다. 책을 덮었다. 함께 책을 읽는 분들을 돌아본다. 느낌을 전달하고 감동을 교환했다. 책이 따뜻하게 한 온도를 나누고 나니, 커피문고 공간은 한층 따스해진다.
이야기는 길어졌다. 10시가 훌쩍 넘어야 끝났다. 한 주간 독서모임을 기대한 만큼 즐거운 독서모임이 끝났다. 아쉬웠다. 인사하며 다음 주를 다시 기다린다. 한 주간 디지털 디톡스를 끝냈다. 다음에는 어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지 기대된다. 그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신지도 궁금해진다.
휴대폰 방해 금지 모드를 해제했다. 다음 주를 기다리며.
한 줄 요약: 디지털 디톡스에는 독서모임이 최고
독서모임에 참석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습니다. 나누고 싶은 문장일 수도 있고, 자신의 느낌을 전달할 수 도 있습니다.
셜리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은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테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인생의 역사>
베로니카
"난 내가 혐오하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수면제를 먹었죠. 하지만, 내 안에 내가 사랑할 수도 있는 베로니카가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있었어요."
<베로니카 죽기로 했다>
쓰담
"가끔 생각나요. 나에게 차가운 얼굴을 보여준 사람들. 그렇지만 사실은,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람들이 냉담한 표정을 지었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그렇게 아닐까"
<더 셜리 클럽>
어니스트
"살면서 부딪히는 많은 갈등들이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라 부대낌의 문제인 것들을 그분은 알고 있었다."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 어니스트 생각: 할머니 이야기는 과거의 나를 양육하는 이야기이고, 현재의 나를 돌보는 이야기 었으며, 미래의 아이들을 기르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