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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Aug 26. 2023

한 명의 어른을 키우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이만 마을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한 어른을 키우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난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큰 도시에서 사신 분들은 코웃음을 치시겠지만, 완전 깡촌은 아니라고 하고 싶다. 읍내에 가면 위풍당당한 15층 아파트가 있고(물론 한동이 전부다), 커다란 할인 마트도 있다. 20분 정도 걷다 보면 읍내는 끝난다. 


  삼보일배를 알까?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것을 이른다. 아버지의 친구, 친구의 아버지, 어머니 친구, 친구의 어머니, 동네 어르신, 이웃집 친구.... 온갖 관계가 있으니, 인사를 몇 걸음 가다가 한 번씩 하게 된다. '삼보일인사' 힘들었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감시당하는 기분이고, 부모님에게 보고가 들어가니 판옵티콘에서 감시받는 죄수였다. 


  대학을 갔다. 수도권으로.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두려움보다는 옥죄고 있는 곳에서 탈출하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많은 만큼 익명은 확보되고,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삼보일인사는커녕 한참을 걸어 다녀도 아는 사람 없는 곳이 내 삶의 터전이 되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고향에 있던 일을 까맣게 잊게 되었다.


출처: 어쩌다 사장 2 영상


  <어쩌다 사장> 시즌 1과 시즌 2를 모두 보았다. 시골 슈퍼에 차태현과 조인성이 일주일 동안 슈퍼를 운영하는 예능이다. 참 많은 사람이 오간다.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이다. 출근 전에 빵을 사기도 하고, 오늘 생일인 남편을 위해 고기를 사기도 한다. 점심시간에는 간단한 요기를 하러 오는 분도, 저녁 시간에는 술 한잔을 하며 힘들었던 오늘을 정리하곤 한다. 


  영상을 보니 떠오른 생각이 한 있는데, 잊고 있던 고향의 '삼보일인사'다. 작은 동네라 그런 것일까?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차태현과 조인성은 온 마을 사람을 알게 된다.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학생, 조금 뒤 거의 아버지가 와서 식사를 하시며 아들이 왔냐고 묻는다. 


  재잘거리며 아이들이 왔고 점심을 신나게 먹고 있으니, 옆에 반갑게 인사하는 어른이 있다. 자리에 없는 친구 어머니. 밥값을 계산해 주신다. 감사 인사를 깊게 하고 웃으며 나가니, 아이들 중 한 명의 아버지가 들어왔고, 공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나간다. 


  떠오른 고향은 전과 달라졌다. 난 펜옵티콘 같은 감옥에 있던 것이 아니라, 너른 울타리에서 나를 보호해 주던 많은 어른들에 둘러 쌓여 있었다. 인사를 할 때마다 반갑게 맞이하고, 언제든 밥 먹고 가라는 따스한 말이 희미한 기억 구름을 뚫고 나왔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문장이 떠오른다. 이제는 나이가 조금 먹어 보니, 아이에게만 필요한 일은 아닌 듯하다.


  요즘은 관계가 참 파편화 되어있다. 나라는 한 조각이 동동 떠있고, 가족이 가느다란 줄로 연결되어 있다. 친구라는 약하디 약한 줄이 느슨한 조각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극단적으로 볼까? 어르신들이 혼자 계시다 죽음을 맞이하고, 청년이 찾는 이 없이 방에서 죽고 만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출처: 스트레이트.


  모두에게 사연이 있다. 취업이 안되고, 가족 간의 문제가 있으니 혼자 있게 된다. 거대한 사회문제에 대해 내가 답을 내어줄 재간이 없다. 쉽고 간결한 해결 방법이 있다면, 이미 해결되어 문제가 되지 않았으리라. 사회적 고립은 개인의 이유와 사회의 이유가 곤죽처럼 섞여 무엇이 우선인지, 무엇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최근에 무서운 뉴스가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냈다. 어린아이들이 세상과 처음 마주하는 학교다. 자신이 낳은 고귀한 혈통을 운운하고, 중앙 정부 높은 직급을 슬쩍 보여주며 알아서 기라고 한다. 선생님을 몰아붙이고, 아이를 가르치는 분필을 빼앗아버린다. 다음에 오는 선생님에도 같은 방법으로 으르렁 거린다. 모두 얼굴을 아는 마을이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깝깝한 뉴스를 보게 되면 이제는 '삼보일인사'를 하던 내 고향이 떠오른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따스하게 말을 건네는 고향.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생각한 그곳은 아직 있었다. 아이에게도 필요한 마을은 사실 우리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건 아닐까? 혼자 있으며 모든 것을 포기하며 생을 마감했던 이들도, 처음 마주한 사회라는 학교에서 누군가에게 밀려 밀려 나간 이들도. 감시가 아니라 관찰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한 명의 어른을 키우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오늘 집을 나서다 1층에 어르신을 마주쳤다. 그냥 인사를 해본다. 별일 없으시냐는 말도 하나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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