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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Oct 21. 2023

누가 유유상종 아니랄까봐


  어느 날 꽃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한 달에 한 번 나에게 꽃을 선물해줄래요?"


 꽃이 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꽃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하늘에서 달을 따다 달랜대도 해줄 각오가 이미 서 있었으므로 한 달에 한 번 꽃을 선물하는건 쉬운 일이었다. 오히려 좋아하는 꽃을 선물할 수 있다는게 나에게 더 큰 선물이었다. 사랑스런 그녀가 꽃을 품에 안은 채 짓는 환한 미소는 마치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과 다름 없어서 그걸 내내 보고 있노라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꽃에게 꽃을 더하는 선물같은 시간이 시작되었다. 


  한 달에 한 번이 되는 날을 따로 정해두지 않아서 꽃을 선물하는 날은 나만 알 수 있었다. 이 점이 참 좋았다. 그녀는 새로운 달이 찾아올때면 언젠가 새로운 꽃이 찾아올 것을 기대한다. 그 '언젠가'는 나의 영역이기 때문에 늘 그녀 몰래 꽃을 준비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꽃을 건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매 번 깜짝 놀라 눈이 똥그랗게 커졌다가 이내 기뻐하며 해사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감상하는게 얼마나 큰 특권이며 어찌나 행복한 순간인지.. 당신은 어차피 말해줘도 모를 것이다. 그래서 안 말해 줄거니까 나중에 당신의 연인에게 몰래 꽃을 선물해보기 바란다.    


  우리가 우리라는 이름이 된 계절은 11월 말의 늦가을이어서 금새 겨울을 맞이했다. 마침 겨울은 그녀가 좋아하는 라넌큘러스가 나오는 계절이라 좋았다. 라넌큘러스는 겹겹이 쌓인 꽃입이 둥근 형태로 말아져 있어서 둥글둥글 귀여우면서도 아름다운 꽃이었다. 12월의 어느 틈엔가 그 꽃을 사다가 그녀에게 선물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등 뒤에 꽃을 꽁꽁 숨겼다가 그녀에게 전달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놀랐고 이내 기뻐했을 것이었다. 



  3월이면 싱그러운 봄을 알리려는 듯 병아리처럼 노오란 프리지아 꽃이 나왔다. 작고 귀여운 꽃봉오리들이 한데 모여 있는 모습이 병아리떼 같아서 사랑스러운 꽃이다. 그 프리지아 한 단을 사다가 그녀에게 선물하는게 우리가 봄을 맞이 하는 방식이었다. 



  여름은 일편단심 그녀만 바라보는 내 마음을 표현하기 좋은 계절이었으므로 해바라기 꽃으로 내 마음을 담아 함께 건네곤 했다.

 


  다시 가을은 역시나 리시안셔스였다. 서양 도라지꽃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도라지꽃이 단아한 모습의 동양화 같다면 리시안셔스는 화려한 모습의 서양화를 보는 듯했다. 그녀에게 고백하며 건넸던 꽃이 리시안셔스였는데 그녀가 좋아하는 핑크와 보라를 섞은 꽃다발로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고백하곤 했다. 리시안셔스의 꽃말은 '변치않는 사랑'이어서 그 꽃을 선물한다는 데에는 그런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그렇게 9번의 가을을 함께 보내는 동안 그녀와 약속한대로 한 달에 한 번 꽃을 선물했다. 앞으로도 내내 계속될 예정이다. 아직 선물해보지 못한 꽃이 너무 많은 까닭이기도 하고 그 꽃을 보며 감응하는 그녀의 미소가 내내 궁금하기도 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한 달에 한 번 꽃에게 꽃을 더하는 선물같은 시간을 포기할 순 없으니 말이다. 



  꽃에게 꽃을 주었더니 꽃밭이 되었다. 


  누가 유유상종 아니랄까봐.




https://instagram.com/monthly9f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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