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패션은 레드 하이힐

빙구들의 국제학교 적응기 (일러스트 by 민언냐)

by 하노이 민언냐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이 소리는 하노이 민언냐가 레드 하이힐을 신고 학교 복도를 걷는 소리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2010년 1월의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날은 하노이의 미세먼지가 평소보다 한 층 더 심한 날이었다. 나의 레드 하이힐이 뿌연 미세 먼지를 뚫고 학교를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하노이의 겨울은 미세먼지가 살인적이다. 심한 날은 정말 모든 게 뿌옇게 보인다. ) 그때까지도 하노이 생활의 초반이라, 나는 부산에서의 마녀 민 티쳐의 패션 코드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학교에서의 첫 상담이 컴플레인일 경우에는 힐의 높이만큼 파워업이 되는 나이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마스카라까지, 곱디곱게 풀 메이크업을 했다. 레드 스커트에 화이트 쟈켓 그리고 20 데니아로 살짝 비치는 땡땡이 스타킹, 레드 하이힐을 신고 나왔다. 내가 하노이에 가져온 가방 중 가장 비싼 걸 골라 맸다. 누가 봐도 싸움닭의 포스였다.


사실 부산에서 나는 담임 선생님과의 정기 상담 조차 잘 가지 않았다. 거의 전화로 대체하는 일이 많았다.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나의 귀차니즘이 더 큰 이유였다. 그런 내가 국제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쩡이와 쭌이의 상담을 직접 가다니. 그것도 상담 기간이 아니라 내가 직접 상담을 신청해서 간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왜 상담을 신청했을까?

메인 목표는 쩡이의 담임 선생님과 보조 선생님이었다. 쭌이는 그야말로 깍두기였다. 쩡이는 국제학교에서 첫 담임선생님과 보조 선생님의 복이 지지리도 없었다.

누가 봐도 수줍음이 많은 만 7세의 영어 왕초보 쩡이는 더 손이 많이 가는 학생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선생님들로부터 가이드를 잘 받고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쩡이의 담임 선생님은 특히 자신이 쩡이를 가이드하는 대신, 쩡이의 옆자리에 개인 통역사 한 명을 따로 앉혀 두었다.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 친구를 쩡이의 짝으로 앉혀 대리 가이드를 시키고 있었다. 특히 학기가 이미 시작하고 한 텀의 반이 지난 상태에서 전학을 온 쩡이와 쭌이는 많이 헤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흔한 신입생 오티나 설명회도 없이 하노이에 뚝 떨어졌으니 , 나도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엄마도 이렇게 헤매는데, 아이들은 오죽했겠나. 그래서 직접 담임 선생님께 학교에 대한 커리큘럼이나 과제를 묻는 메신저와 이메일을 계속 보내기 시작했다.

쭌이의 담임선생님은 새로 부임하셔서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이었다. 메일을 보내면 답이 하루를 넘기지 않고 착착 왔다. 그리고 쭌이도 담임 선생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잘 따랐다. 자신이 모를 법한 부분은 선생님께서 따로 불러서 하나하나 친절히 알려주신다고 했다. 또한 쭌이는 금요일마다 한 주의 우수한 학생을 뽑아서 주는 Star Of The Week의 상장도 한 달만에 받아 왔다. 하지만 쩡이의 담임 선생님은 나의 이메일이나 메신저에 단 한 번도 답을 하지 않았다. 또한 쩡이는 매일매일 셔틀을 타고 집에 오면 눈물 섞인 표정으로 짜증을 부렸다. 처음에는 학교와 집이 거리가 꽤 멀어서 피곤해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성질을 부렸다. 아침이 되면 가기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밝은 얼굴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아니 처음부터 이미 쩡이의 학교 생활에 뭔가 있다고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나는 그걸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애써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척하고 있었는지도……

입학을 했을 당시 나는 거의 매일, 이메일을 보냈다. MR.K와 주고 받은 이메일만 있고 MR.B의 메일은 단 한 통도 없다.

하루는 쩡이가 저녁을 먹고 나와 1학년 2학기 국어 문제집을 풀고 있을 때였다. 쩡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얼굴로 국어 공부를 하다가 계속 연필을 툭툭 던지는 게 아닌가. 나는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쩡이, 먼데? 와그라노? 국어가 어려워? 아님 연필이 잘 안 써지나?”

“아니……그냥, 보조 선생님이 맨날 이렇게 던진다. 오늘도 수학 시간에 문제 푸는 거 알려주고 ‘휴~’하면서 던지고 가드라.” 나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걸 느꼈다.

“쩡아, 맨날 그라드나?”

“엄마, 맨날 한숨 쉬고 연필 탁탁 던진다. 맨날…….”하는 게 아닌가. 그 뒤로도 며칠 동안 계속해서 보조 선생님의 얘기가 나왔고 쩡이는 이제 보조 선생님이 자신의 자리 근처로 오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보조 선생님과 눈만 마주쳐도 쩡이는 자기가 푼 문제의 답이 또 틀렸다는 생각에 겁부터 먹었다.


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초반부터 내가 학교에 찾아가서 혹시나 더 찍히면 어떻게 하나, 나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아닐까, 그냥 조용히 지나가야 하나, 국제학교의 분위기는 어떻지? 등의 여러 생각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영혼의 단짝이자 늘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을 잘 캐치하는 친언니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머꼬,니? 니 새끼 니가 챙기는 거지! 뭐가 무서운데? ”

“ 게도, 내가 괜히 별나게 해서, 애들이 더 찍히고 샘들 눈 밖에 나는 거 아이가? ”

“ 야, 민아! 니 이번에 걍 넘기면, 쩡이가 또 힘들 때 니한테 절대 S.O.S 안 날린다. ”


그렇다. 내가 내 새끼 안 챙기고 누가 챙긴단 말인가. 언제부터 내가 그렇게 고상했다고 말이다. 국제학교 보내면서 고상한 척하는 내가 됐을까.


나는 바로 컴퓨터를 켰다. 이번에는 대답 없는 너, 담임 선생님이 아닌 학교 대표 이메일로 직접 상담 요청을 했다. 그리고 대망의 상담하는 날이 밝았다!


BIS는 여전히 너무 컸다. 로비에 도착하자 영어가 유창한 리셉션의 여직원이 메모지에 교실의 층수와 교실 호수를 적어가며 열심히 알려 주었다.

구두를 또각거리며 학교 3층까지 계단을 올랐다. 하노이에서 오랜만에 신은 힐이라 지칠 법도 한데, 피곤함을 느낄 수 없었다. 여전히 심장은 쿵쾅거리고, 아드레날린이 솟는 것을 느꼈다. C281이라고 적혀있는 교실을 찾아 긴 복도를 계속 걸었다. 지나가는 학생들의 시선이 나의 ‘또각’ 거리는 힐에 꽂히는 걸 느꼈다. 복도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자, 눈앞에 쩡이의 교실이 있었다.

쩡이의 담임 선생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떨구며, 교실 문을 열며 나를 맞이했다. MR.B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고 “내가 너 바쁜데 메일을 많이 보내버렸지 귀찮게 해서 미안~.”이라고 말을 했다. 분명히 MR.B는 나의 말에 몹시 동요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직설적이었나. 하지만 나는 싸우자고 온 게 아니었다. 쩡이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쩡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길 원했을 뿐... MR.B는 상당한 브리티쉬 악센트의 소유자였다. 당연히 영국 국제학교에 영국인 선생님인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악센트가 꽤나 센 편!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온 지 15년이 지난 내가 여전히 알아듣는 게 신기했다. MR.B는 상담을 자발적으로 요청해온 한국의 학부모 특히 신입생의 학부모와의 상담이 내가 처음인 듯했다. 상당히 긴장했고 마치 자신의 팀원을 세우듯이 EAL 선생님, 보조 선생님 자신이 부를 수 있는 선생님들은 모두 불러 줄을 세워둔 느낌이었다. 쪽수에 밀려 달달 떨 내가 아니었다. 나는 미소를 띠고 꾀 진지하게 모든 수업 내용과 커리큘럼 그리고 과제 관련된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 온 진짜 목적은 빠져있었다. 나는 MR.B의 눈을 보며 아주 클리어하게 이 상담을 요청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말했다. 쩡이가 학교에 더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MR.B가 서포트를 해주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MR.B는 다소 놀란 눈치였다. 대충 ‘홍 홍 홍’ 웃고 ‘눼 눼 눼.’ 하면서 고개 끄덕이다 가려고 내가 이 레드 힐에 아끼고 아끼던 20 데니아 땡땡이 스타킹을 뜯어 신고 온 게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늘 가장 마지막에 생기는 법이다. 나중에 합류한 보조 선생님 MS.T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자리에 앉자마자 쩡이의 단점만 논스톱으로 토해내는 게 아닌가. 쩡이가 동기부여가 안되고 (쩡이는 영어수업을 못 알아듣고 있습니다만…) 스스로의 의지가 부족하며(쩡이는 영어수업을 전혀 못 따라가고 있습니다만...) 혼자서 수학을 풀 수 있는데도 보조 선생님인 자기가 와서 문제를 풀어주기를 기다린다(쩡이는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 계산이 느린 편입니다만…)와 같은 부정적인 평가만 줄줄이 내놓았다. 그리고 쩡이에게 아는지 모르는지도 물어봐도, 예스인지 노인 지도 대답을 하지 않노라고(쩡이는 긴장을 잘하고 부끄러움이 많습니다만)……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당신이 쩡이한테 섭게 하나 보지.” (실제로 쩡이는 무서워했다지.)하고 받아쳐버렸다. 인간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면 MS.T의 눈에 나는 무참히 쓰러졌을 거다. 그녀는 나의 말에 "What?!"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노려 봤다. 그리고 기가 막히다는 표정의 그녀. 그렇다. 그녀와의 대화야 말로 쩡이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직감했다. 나는 이런 기싸움에 낭비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녀로부터 등을 돌린 채, MR.B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자 그녀는 어떻게든 다시 대화에 끼려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끝까지 돌아보지 않았다. MR.B로부터 쩡이를 더 잘 서포트를 받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도 쩡이가 자신이 아는지 모르는지 정도는 확실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MR.B에게 쩡이의 태도를 개선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할 것이며, 쩡이를 위해 뭐든 할 테니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는 말을 남긴 채, 악수를 하고 나왔다. ‘또각 또각’ 나의 힐의 소리가 이번에는 더 경쾌하게 들렸다. 지금 돌이켜 보니, MR.B는 강한 컴플레인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결국 나와의 대화가 잘 풀리자 다소 긴장이 풀렸는지 농담도 하고 서로 웃으며 화기애애하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말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대부분의 한국 학모들은 상담 요청을 잘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상담 주간에도 학교에는 오지 않고 대신 상담 내용을 선생님께 이메일로 요청하거나 갑자기 최소를 하기도 한다. 나도 상담 내용이 매번 아이들에 대한 좋은 말 일색이고 붙복의 수준인 걸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첫 반강제 상담을 기점으로 하노이에서는 늘 거르지 않고 꼭 참석하는 걸로 정했다. 나는 상담을 내게 주어진 일종의 의무이자 권리 중 하나로 보기로 했다. (사실 상담하러 가면 하루 다 날리는 샘이다. 거리도 멀고 귀찮은 건 정말 1000% 이해하는 바이다.)

그 뒤로 쩡이는 보조 선생님인 MS.T가 자신에게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덕에 쩡이는 수업시간에 오히려 더 편해졌고, 수학 시간에는 몰라서 틀리기는 해도 스스로 문제 푸는 게 훨씬 좋다고 했다. 또한 쩡이가 틀린 문제는 MR.B가 따로 불러서 설명해주신다고 했다. 나는 애써 무덤덤하게 "맞나?"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BIS를 향해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심드렁해하는 오래비 쭌이를 뒤로 하고, 쩡이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수학을 잘 풀었다니, 온 마음을 다 해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상담을 갔다 온 그 주의 금요일! 유정이는 여태껏 보지 못한 함박웃음을 지으며 셔틀버스에서 내렸다. Star Of The Week의 상장을 양손에 꼭 쥔 채로!

쩡이가 속으로 엄청 기뻐하는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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