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떠이의 꽃 남편

남편, 니는 대체 어느 별에서 왔노? (일러스트 by 하노이 민언냐)

by 하노이 민언냐

으아앙!!!!!!!”

딸내미 쩡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빠와 통화를 하다가 난데없이 울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갑작스러운 울음소리에 놀라 달려왔다. 아빠가 이번 주에도 집에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울기 시작한 것이다. 쩡이와 통화를 하던 남편도, 부엌에서 놀라 뛰어온 나도 쩡이의 울음이 쉽게 잦아들지 않아, 어쩔 줄 몰라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평온한 인물은 오래비 쭌뿐이었다. ‘왜 오바야?’ 하는 표정으로 빼빼로를 오드득 오드득 먹고 있었다. ( 너는 피를 나눈 진정한 친오래비가 맞구나! )

8월 8일. 쩡이와 쭌이의 아빠이자 나의 남편의 42번째 생일이다.

거의 일주일 전인 8월 1일부터 쩡이는 아주 열심히 생일 선물을 준비했다. 아빠와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쩡이는 “8월 8일이 무슨 날이야?”하며 모른 척을 해왔다. 그리고 영상통화를 할 때도 카메라 앵글에 선물이 잡히지 않도록 신경을 쓰곤 했다.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선물을 후다닥 커튼 뒤에 숨기던 쩡이! 쩡이는 그렇게 서프라이즈를 위해 필사적으로 아빠의 생일 선물을 숨겨왔다.

하지만 하노이의 철저한 격리 속에 아빠의 귀가는 다시 불투명해졌다. 그리고 쩡이는 크게 실망한 나머지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나는 그런 쩡이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안해졌다. 뭐 그리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우리가 이렇게 생이별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가. 딸내미의 눈물을 보니 서글픈 생각과 함께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생일로부터 3주의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남편은 귀가를 할 수 있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거의 한 달 만에 귀가였다. 그동안 우리의 삶에도 변화가 있었다. 원래 살고 있는 레지던스의 6층 쓰리 베드룸에서 9층 포 베드룸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따라서 남편은 새로 이사한 집이 몇 호인 지도 몰랐고, 새 집의 열쇠도 없었다. 그야말로 요즘 트렌드인 랜선 집들이를 통해 집을 간접 경험해 온 것이다. 9층의 새로운 호실로 방을 옮기고 아이들은 드디어 각자의 취향에 맞춰 꾸민 각자의 방을 아빠에게 보여줄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남편은 자신의 공장이 있는 지역은 아직 록다운 제외 구역이라고 했다. 코로나가 발견되지 않은 지역은 하노이와 달리 가게, 식당들이 정상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은 솔#까지 한껏 올라간 목소리로 계속해서 사갈 것이 없는지 물었다. 마치 하늘의 별도 달도 다 따줄 수 있다는 듯이 들뜨고 격양된 어조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한결같은 질문에 내가 날리는 한결같은 대답은 늘 “엄따꼬, 그.냥.빨.리.온.나.” 였다.

까똑’’까똑’

전화를 끊은 지 정확히 3분 뒤에 남편으로부터 톡이 왔다.


“진짜 뭐 없나?” “여기 식당이랑 가게가 다 열려 있는데?” “지금 빨리 말해봐라!” “빨리빨리!”


이번에는 톡과 전화를 번갈아 하기 시작했다. ‘정말 너란 남자는 포기를 모르는구나. 그래, 너도 뭔가를 선사하고 싶은 게로구나. 오랜만에 선물 주는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거지.’ 하는 생각에 꽃을 사 와 달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하노이는 몇 걸음만 나가면 여기저기 꽃을 파는 상인들이 가득했다. 이제는 록다운으로, 꽃들도 상인들과 함께 모두 사라져 버렸다. 꽃을 좋아하는 꽃순이에게는 제법 가혹한 현실이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에도 어떻게 해서든 꽃을 받아내고야 마는 나였는데……아니, 다른 선물도 함께 받아 온 나였다.

그는 나의 꽃을 사달라는 대답을 듣고, 당연히 사다 주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봐라, 내 말 맞제? 생각하면 뭐든 있다니깐! 남편이 니를 잘 안다니깐!” 하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워, 자신의 말이 늘 100프로 맞다며 호탕하게 웃으며 즐거워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래, 뭐 너만 행복하다면야 아무렴 어때.


나 또한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하기 위해 손이 분주해졌다. 우리 남편이 뭘 좋아했더라. 불고기보다 소고기, 달짝한 간장 맛이 나는 잡채, 게 맛살과 햄을 꽂은 삼색 꼬치전, 부침개, 김치찌개 등등 잔칫상을 준비하듯이 있는 재료, 없는 재료 모두 꺼내어 요리를 해보았다. 이제 남편의 공장에서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30분! 거기에 맞춰 요리를 해내기 위해 손목이 욱신대는 것도 모르고 했다. 그만큼 우리 가족 모두가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다른 이에게는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온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특별한 사건으로 다가왔다. 서로를 보지 못한 만큼 애틋한 정이 켜켜이 쌓이고 보고 싶은 맘이 더욱더 커졌다.

아이들은 남편에게 로비에 도착하면 올라오지 말고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일분 단위로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아빠가 로비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선물과 풍선을 재정비했다. 눈 가리게도 잊지 않고 들고 로비로 아빠를 마중 나갔다. 눈 가리게까지 한 우리의 아빠 그리고 나의 남편이 드디어 우리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주책맞게…… 내가 와 이라노.” 하며 눈물을 훔쳤다. 나는 속으로 ‘아, 나의 남편은 상상 속 동물 ‘해치’가 아니었어.’하고 생각했다.

새로이 이사한 우리의 보금자리가 어색했는지 안대를 풀고도 한동안 어리둥절하게 집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도 남편 없이 혼자 ( 물론 레지던스의 스탭과 친구들의 도움을 좀 받았지만……) 뭔가 해낸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 다 한 숙제를 들고 선생님 앞에서 검사받기 위해 줄을 선 기분이 이런 걸까. 우리의 187 센티 장신의 남편은 긴 팔과 다리를 휘적휘적거리며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집이 예쁘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렇지, 남편은 내게 다년간의 ‘눈치 트레이닝’을 받은 남자였다. 그의 리액션은 올바른 남편 매뉴얼의 제1장 3항에 실릴 만큼 훌륭했다. 남편은 아이들의 서프라이즈 선물도 아주 좋아했다. 아이들이 준비한 깜짝 선물은 아빠를 향한 애정 담뿍 손 편지, 항상 같은 티셔츠( 그는 한 때, ‘반스’에 빠져 깔 별로 티셔츠를 사곤 했다. 그렇게 몇 년을 ‘반스’ 티셔츠만 교복처럼 입고 다녔다. 그가 없는 틈을 타, 이사를 핑계로 나는 그 티셔츠들을 가장 우선순위로 정리했다. )를 입고 한 손에는 사이공 비어를 든 아빠를 그린 그림, 알록달록한 색종이로 접은 꽃 등으로 꽉 채운 대형 액자였다. 크기가 꾀나 커서 시간도 아주 많이 걸렸지만 아이들은 정말 어느 것 하나 대충 만든 것이 없었다.

“ 아흐, 자기흐가, 오흐니흐 너흐므흐 조흐……”



나는 남편이 안아주자 뭉클한 마음이 들어 그만 울어버렸다. 눈물과 웃음이 뒤섞여 어버버 거리며 말이다. 그리고 각자의 새 방을 보여주고 싶어 아빠의 손을 잡아당기는 아이들을 위해 남편의 손을 놓아주었다.

부엌으로 돌아왔다. 저녁 상을 차리는 것을 마무리하고, 꽃병을 안고 싱크대 앞에 섰다. 그래, 이게 행복이지. 남편이 나를 위해 꽃을 골랐을 것을 떠오르니 미소가 번졌다. 남편이 세 다발이나 되는 꽃들을 한 아름 품고 와주니, 이 어찌 행복한 삶이 아니라 하겠는가.

꽃가위를 들고 조심조심 단디단디 꽃의 겉 포장지를 뜯는 순간, 나도 모르게 ‘헉!’하는 소리가 입에서 세어 나왔다. 아차 했다.


그렇다. 대학 1학년부터 지금까지 함께 한 우리지만 나는 늘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로부터 뒤통수를 맞아 왔다. 이제 좀 나에게 익숙해진 건가 하면 어김없이 도돌이표처럼 원상태로 돌아가는, 정말이지 관성의 법칙에 너무 충실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걸 나도 깜박한 거지. 생각해보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10년 2월 우리의 첫 결혼기념일이었다. 우리는 결혼 전 이미 10년의 연애 기간을 거쳐 결혼한 커플이다. 그러니까 말이 첫 결혼기념일이지 함께 한 세월은 이미 11년이었다. 주위에서는 ‘고급 명품 가방 샤*을 받는다더라, 고급 호텔에 가서 저녁을 먹고 남편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하더라’ 등등의 숱한 후기를 들은 나는 나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 아직 복땡이(우리 아들 쭌이의 태명이다.)도 태어나기 전이니 뭐 조금 과소비를 해서 선물을 사 와도 구박하지 말고 , 이번만 좋은 듯이 받아줘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남편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코트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거? 액세서리? 너무 고가는 아닐까? 어쩌지? 환불하라고 하면 상처 받으려나?’ 별별 쓸데없는 걱정을 다 했었다. 바로 그때, 그가 내게 펼친 건 작은 스케치북이었다. 그것도 삐뚤 삐뚤 스크랩 해서 내게 펼쳐하는 사랑 고백이라니..... 유행이 지나도 한참을 지난 2003년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키이라 나이틀리가 받은 그 사랑고백을 내 앞에서 재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187 센티 장신의 그가 한 장 한 장 스케치북을 넘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마치 억겁의 시간과도 같았다. 내 심장은 넘어가는 스케치북을 따라 함께 타들어 갔다. 그리고 나는 잠시 뒤를 돌아서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때까지도 그는 나의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을 보고 감동받아 우는 줄 알았더랬지. 그리고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도록 그의 짧은 손가락을 더 짧게 만들어버릴까 하는 생각과 이런 남자에게 내 인생을 걸어도 될까 하는 고민에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나는 스케치북으로 그의 등에 날린 강스매시 때문이었을까. 꽃과 함께 반짝이는 쪼매난 목걸이를 목에 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꽃들은 바로……평생 내가 단 한 번도 산 적이 없는 노랗고 노란 국화가 아니더냐. 그리고 다른 한 다발은 정말 단 한 번도 눈길을 준 적이 없는 들꽃이 아니더냐. 순간 꽃가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하마터면 발등에 냅다 꽂힐 뻔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게 이런 기분일까. 너무 방심을 한 걸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 떨어져 있었던 걸까. 베트남에서는 재단에 향과 함께 놓는 꽃이 바로 노란 국화다. 그리고 그 재단들은 모든 가게, 식당 하물며 이 레지던스 로비에도 있다. 국화는 한국, 일본 등지에서도 제사상에나 재단에 올리는 것이다.

재단 옆에 놓인 노오란 국화꽃이 보이는가.

이건 지능적인 디스인가. 오늘 한번 붙어 보자는 건가. 설마……그런 뜻은 아니었을 거야.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아이들과 그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꽃병에 살포시 넣어 눈에 잘 띄지 않는 피아노의 구석자리에 놓아두었다. 격리로 하우스키퍼들이 오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저 국화를 보면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이 이야기를 일본인 친구 ㅁ에게 했다.

“菊? きく?”

그 다정한 ㅁ도 귀를 의심하며 일본어로 몇 번을 반복해서 되물었더랬지. 그렇다. 너란 남자는 내 인생의 거의 반을 넘는 세월을 함께 하고 있지만, 늘 이렇게 허를 찔렀지.


니는 대체 어느 별에서 왔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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