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윌슨이 꾼 꿈에서 존 왓슨이 깨어나다
"...그래서, 윌슨이 바라던 사람은 대체 누구였는가?"
포어맨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이내 하우스를 바라보며 대답하였다.
"...박사님이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윌슨은 어느 날부터인가 꿈 속에 자신을 연인처럼 대해주는 누군가를 느끼고 점점 그에게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급기야는 평소 그가 호감을 지니고 있었던 하우스의 모습을 꿈 속 남자에게 덧입히기 시작하죠. 그러나 꿈의 일은 오직 자신의 이야기일 뿐, 평소의 하우스는 너무나 차갑기만 합니다. 그런 윌슨이 찾아간 '믿을만한 사람'은 포어맨이었습니다. 포어맨은 평소 막역한 사이였던 심리 상담가를 대동해 그의 꿈 속 남자의 정체를 밝혀내지만 이내 충격적인 사실이 윌슨을 덮쳐옵니다. 그의 꿈 속에 나와 늘 그를 안아주던 남자는 바로 제임스 윌슨, 그 자신이었던 거죠.
이 이야기는 맨 처음, [EROS] 에로스 라는 이름의 하우스/윌슨 단편으로 올려둔 글이 시초였습니다. 하윌로 뭔가 슬픈 글을 쓰고 싶은데...방법이 없을까? 몽환적이고 슬프고 애틋한 느낌에 반전도 조금 섞여 있는 그런 글을 쓰고싶다. 처음에 그런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해피엔딩은 없는 이야기였던 겁니다.
이 단편의 반응은 그 당시로서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주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극은 끝이 분명하거든요. 프시케를 읽고 온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이 비극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는 뻔할 겁니다. 윌슨은 이내 자신의 꿈 속 사내의 정체를 안 것을 감당하지 못했고 스스로 목숨을 져버리고 맙니다. 뒤늦게 하우스는 윌슨의 비고에 놀라고 당황해서 다짜고짜 포어맨의 멱살을 붙잡고 따져대지만 그 끝은 허무한 연심의 말로였습니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하우스는 윌슨이 관찰하고 사랑하는 대상일 뿐, 그의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 끝이 씁쓸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헌데 문제는 이렇습니다. 이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어 글창고를 뒤져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거든요. 제가 쓴 글들 중 그나마 괜찮은 글 같았는데...무척이나 아쉬웠습니다. 그렇다고 그 글을 다시 쓰자니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하우스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병원을 나와 윌슨과 함께 바이크 여행까지 떠난 시점.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보고 즐기고 있는 드라마는 따로 있더군요. 그게 바로 [셜록]이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네요.
에로스와 프시케
프시케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나 오히려 그 아름다움이 아프로디테의 미움을 사게 됩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아프로디테의 미움이 에로스로 하여금 프시케를 사랑하게 만듭니다.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버린 그가 프시케를 사랑하는 방법은 독특했지요.
밤에만 찾아드는 얼굴 없는 연인으로서, 무려 사랑의 신으로서 그녀를 찾아갑니다.
무척이나 매력적인 설정입니다. 프시케는 그 연인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불안해지죠.
주변에서 질투에 눈이 먼 언니들의 말에 떨며 그녀는 결국 불을 켜 연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어둠을 밝히는 빛은 곧 파멸의 시작이 됩니다.
하윌 단편으로 쓰면서도 제목을 에로스라고 지었던 건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위 글에 에로스라는 존재는 없거든요. 밤에만 찾아드는 그의 연인은 오히려 그 자신이었습니다. 늘 긍정적인 요소로 비춰지는 '빛'이 이 글에서만큼은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어둠으로 가려져 알 수 없는 의문 속에 오직 감촉만으로 상대를 오롯이 믿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시험을 받는 것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이 이야기의 맥락을 그대로 가져올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중간에 조금씩 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미 설화 그대로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대신에 이번에는 제목을 다르게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프시케, 존 왓슨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느낌으로 제목을 프시케로 바꾸었거든요.
”뜻하지 않은 사랑을 하게 되는 게 병이라면…“
마이크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존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며 재차 물었지만, 그는 별말 아니라며 얼버무렸다.
여기서 조금 더 붙이고 싶었던 것은 윌슨이 이 꿈의 대상을 적극적으로 찾는 것에 반해 존 왓슨은 이 꿈을 적극적으로 없애려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극의 시작에서부터 존은 무척이나 부정적인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이루어질 수 있는 기대도, 이 꿈을 향한 희망도 모두 져버린 채 마이크를 찾아온 시점에서부터 그는 이 꿈의 달콤함에 오히려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실 [Eros]에서 윌슨이 자신의 꿈 속 남자의 정체를 알고 난 뒤 바로 목숨을 져버리는 것은 꽤 극단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할 정도로 치닫기 위해 조금 더 부정적인 캐릭터로 설정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만 이 다음부터 생각지 못하게 이야기가 늘어났습니다.
단편으로 적어보고자 시작했는데 어째 단편으로 마무리가 되지 않더군요. 다만 흐름은 그대로라 다행이었습니다. 언젠가 존은 자신의 꿈에 나오는 남자가 누군지 알아보게 될 것이고, 그 다음 극단적인 선택을 이행해야 했으니까요. 그 와중에 들어가는 것들은 실상 존이 얼마나 더 절망적인 상태에서 선택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그런 장치에 대한 반응들이 더 좋았군요(...)
“마이크, 마이크…” 셜록이 고개를 뒤로 빼며 말했다. “재미 없다니까. 병원 출근 기록도 없고, 스코틀랜드 야드의 방문기록에도 없고, 심지어 디오게네스 클럽에도 없어. 다음은 아프간에라도 가봤어야 하나? 밀린 대금인지, 해리엇의 전화 때문인지, 오, 그래…그것도 있군, 군인연금 문제로 얼마 전에 상담원과 치고받고 싸운 거. 그거 때문인가?” 언제나 하던 빠른 투의 말을 쏟아내며 셜록이 마이크를 노려보았다.
사실 비아냥대거나 빠르게 말하는거라면 하우스의 말투를 흉내내는 게 훨씬 쉽습니다. 셜록의 말투를 흉내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하우스는 은근슬쩍 추리를 하고 말지만 셜록은 그렇지 않거든요. 거의 숨을 쉬면서 추리를 해대는 데다 화가 나면 그게 더 빨라지니 이런 부분은 무척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부분을 보면서 오히려 '셜록이 존에게 정말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라고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긴 하지요. 다만 본인이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거죠...왜냐하면 저 위의 문장은 단지 짐작을 하고 있을 뿐, 정답을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존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었다면 홀연히 사라지는 게 가능했겠지만, 셜록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마이크 또한 셜록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되면서 이 점을 깨닫게 됩니다.
“자네가 이 문제를 가지고 ‘질병’이라고 했던 이유 말이야.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어.” 마이크는 존을 바라보았다. “상대가 ‘셜록’이라서 자네는 걱정하고 망설였던 거야.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알 수 없고 그 관계를 잃어버리거나 엇나가게 만들어버리면 어떻게 될지 알 수조차 없었을테니까.”
그럼에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 날 밤 이후로 미묘하게 자신에게 신경을 쓰는 셜록에게 여전히 마음이 가는 것을 어쩔 수 없던 존은 결국 셜록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해볼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이미 오래 전 존이 예상했던대로 셜록은 자신과 함께 추리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뿐, 존에게 마음이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나온 답변은 예상 외의 것이었다. 이번에는 존의 두눈이 커졌다. 셜록은 마시던 찻잔을 바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으레 하던대로 자신의 두 손을 겹친 채 자신의 코 앞으로 갖다댔다. "역시,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군. 오, 이건 설마 설마 했거든. 몰리? 그녀는 눈에 다 나타나고 하나부터 열까지 티가 나지만. 오...아냐, 자네는 달라. 자네는 특별하지." 셜록이 한 손으로 잠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연애에 대해 모른다며 비아냥대던 자네가 한 방 맞을 때가 온 것 같은데, 존. 안 그런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셜록을 보며 존은 한 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존이 던진 돌은 끝없이 침전하며 붉은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그 모든 최악의 시나리오 속에서도 들어있지 않았던 최악의 시나리오.
아마 이 부분 작성하면서 가장 기분이 이상했던 것 같습니다. 늘 거절당하는 시점은 슬퍼지게 마련이죠. 다만 그 슬픔이라는 것이 깊어지고 짙어지면 절망과 고통까지 불러 일으켜서 문제가 되는 거죠. 존이 자신의 꿈 속 사람을 찾아보기 이전에 이미 이 시점에서 한 번 절망을 맛보게 하는 것이 마지막 선택을 납득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반응을 보인다면 자신의 마음을 꺼낸 사람은 무척이나 마음에 상처가 되겠지요.
하지만 정작 문제는 셜록 자신에게도 있습니다. 사실 이 시점에 이미 셜록도 존에 대한 호감이 있었지만 정작 문제는 자신이 이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죠. 존에게 있는대로 호감을 탈탈 털어버리고는 나중에 해대는 말이 가관이지요(라고 느낌이 나게 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이 아픈데." 셜록은 옆으로 비켜서며 비아냥댔다. "걱정마, 존. 우리는 '친구'잖아. 자네 마음을 알았다고 해서 자네를 내치지는 않을거야. 자네가 떠나가면 내가 알아서 찾아낼테니 걱정말고. 이번 일로 자네가 잘 이해했으면 좋겠군. 다시는 우리 사이에 비밀 같은 건 만들지 마. 생각보다 재미 없거든."
사실 이 시점의 셜록은 존이 자신을 속이고 마이크를 만나고 있었다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은 것에 대해 심통이 난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느낌이지만, 그런 것들로 심통을 부리기에는 존의 상태가 무척 좋지 않았습니다. 존은 이미 터지기 직전이었고, 자신의 마음을 꺼내서 셜록에게 보여준 것이 모두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였으니까요.이 다음부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치고받고 빠지고 아래로 내려갈 일만 남았던 거죠.
그래서 존은 마음먹습니다. 꿈 속의 남자를 알아보기로 말이죠. 꿈 속의 남자만큼은 자신이 바라던 상대가 맞노라고 믿고 싶어진 거죠. '치료'로 시작했던 일들이 이제는 자신이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러나 꿈의 세계도 녹록치 않았습니다. 어둠 속의 연인은 늘 그에게 친절했지만 빛을 만들어 알아버린 진상은 무척이나 참담했습니다. 마치 촛불을 벗삼아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려 한 프시케에게 화를 내는 에로스처럼, 존이 마주친 현실은 그를 끝없는 절망으로 끌고 갑니다.
어리석은 내 연인이여, 순수한 사랑은 의혹에 깃들 수 없거늘. 어찌 이토록 나를 믿지 못하는가? 우리의 사랑은 한낱 촛불에 사그러져 없어졌고, 그대가 든 날카로운 칼날에 베여 찢겨졌도다. 제피로스의 숨결로 그대를 데려오고 꽃으로 만든 시종으로 그대를 섬겼음에도……어찌하여 나의 사랑을 믿지 않았는가?
아마 존이 꿈 속의 상대가 누군지 그 정체를 찾지 않았다면 그 꿈은 계속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존은 그걸 바라지 않았죠. 그는 '온전해지는 것'보다는 '분명한 것'을 원했습니다. 현실에서 이미 망가져버린 자신의 마음은 돌볼 수 있을 가루조차 남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는 꿈 속에 들어가 진실을 마주하지만 그마저도 그에게는 녹록치 않았죠. 차가운 진실이 그를 결국 끝으로 몰고갑니다. 사실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가 있었는데요, 다름이 아니라 이런 문구였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오직 나 자신 뿐
제임스 윌슨이 꿈 속에서 자기 자신을 목격했을 때에 느끼는 충격, 그리고 존 왓슨이 자신의 꿈 속에서 마주한 자신의 얼굴. 이 모든 것은 사실 위의 주제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대상 자체를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것 처럼...사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만들어진 많은 존재들을 사랑하고 또 져버리곤 하죠. 이것을 좀 더 표면적으로 거칠게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이것이었습니다. 그토록 외로웠던 제임스 윌슨도, 존 왓슨도 결국 그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사랑해줄 수 있는 상대는 자기 자신 뿐이었습니다. 마음에서 갈 곳을 잃은 외사랑은 결국 스스로의 안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지요.
존이 가장 바라마지 않던 사람이 없는 차가운 한복판에서, 마이크는 존을 부둥켜 잡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영원한 잠에 빠지다니, 그만큼 잔인한 말은 세상에 없을거라는 생각을 되뇌이면서.
마이크는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서술하는 관찰자 입장에 있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보통 마이크의 생각을 통해서 전달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뒤늦게 연속되는 꿈에 고통스러워하는 셜록이 찾게 되는 것도 마이크 스템포드였죠. 에필로그는 아무래도 필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존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존의 이야기로 마무리짓는 마당에 셜록의 마음을 모두 표현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거든요. 아무래도 제 필력의 한계가 여기서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게 존이 자신의 목숨을 끊어냄으로써 이야기는 일단락 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사실상 에필로그에 가깝습니다. 자신만이 사랑해준 자신을 견디지 못해 떠나간 존의 곁에, 그의 주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듭니다. 그러나 셜록은 어디에도 그 자리에 없습니다. 마이크는 내심 친구의 죽음에 이토록 대답이 없는 그를 이해하면서도 서운함을 느끼지요. 그러나 셜록이 거의 폐인이 되어 그 날 저녁 마이크를 찾아왔을 적에, 마이크는 그에게 따로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그 몰골이 그의 고통을 증명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결국 존의 꿈에 있던 남자는 누구였지?"
"그건..." 답은 단순한데 왠지 모르게 마이크 자신도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존 자신이었어. 결국 꿈 안에서도, 밖에서도 존은 자기 자신에게서만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거지.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그가 꾸게 된 꿈 때문에 그가 자네를 향한 감정을 지니게 된 게 아닐까 하고. 그런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건 반대였던 거야. 자네에 대한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꿈을 꾸게 된 건 아닐까."
사실 여기는 온전히 제가 생각한 걸 그대로 읊는 정도의 서술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 것은 자기 자신 뿐'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거든요. 거의 위에 적어둔 에로스의 마지막 장면과 동일합니다. 다만 하우스는 전혀 모르던 윌슨의 죽음에 대해 진실을 알게 되는 장면일 뿐이고, 셜록의 경우에는 이미 마이크를 찾아오는 시점에 뭔가 겪은 상태였죠. 다른 어느것보다도 대답 없는 그 남자의 부재에 고통스러워하며, 셜록은 스스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드문드문 말하기 시작하며 [프시케]는 마무리됩니다.
밤이 되면, 나는 도망치듯 달려가던 그를 따라 달려가
뒤돌아 있는 그의 어깨를 힘껏 움켜쥐고는 그를 멈춰서.
아무리 흔들어도 돌아보지 않는 그의 귓가에 대고
흐느끼기만 하는 그 등을 붙잡고 내 사랑에 대해 말하지.
되돌릴 수 있을까,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그가 고개를 돌릴 때가 되면 다시 아침이야.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장면은 야분(2000)의 마지막 장면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작성한 겁니다. 임충야분이라는 경극을 주제로 한 퀴어 영화인데요, 여기서 임충 역을 맡은 경극 배우가 유학생 출신의 남성을 사랑하지만 이 남성은 배우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먼 훗날에야 자신의 사랑을 깨달은 남성은 그 배우를 그리워하며 늘상 위와 같은 대사를 합니다. 뒤늦게 알아봐야 나아질 것도 없고 괜찮아질 수도 없지만 그 자체로 그리워하는 기분에 젖어드는거죠. 사실 존을 떠나보낸 후 꿈에 시달리는 셜록도 다를 게 없는 입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셜록이 할법한 말은 아니지만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상 마지막 편에서 셜록은 거의 셜록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이 없고 피폐한데요, 결국 그는 매일 밤 꾸는 존의 꿈에 못이겨 마이크를 찾아옵니다. 떠나간 일은 되돌릴수도, 떠나간 사람은 다시 불러올 수도 없는 일인데도 그것을 빤히 잘 아는데도 그는 굳이 마이크에게 물어봅니다. 이 다음이 없다면 그 자신에게도 그 다음은 없을 것 처럼요. 하지만 늘 그렇듯이 남겨진 사람에게는 남겨진 사람의 몫이 있는 거겠지요.
"그래." 셜록은 힘없이 입술 한 켠을 들썩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도 답답한 기분이 드는 거지?"
"알고 난 뒤에 해야 할 게 남아서 그래." 마이크가 대답했다. 셜록이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왜 눈물이 흘러넘치는지도 알 수 없어졌다.
알고 난 뒤에는, 온전히 느끼는 것 뿐이니까.
- [PSYCHE]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