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breakfast, 로리츠 안데르센 링(Lauritz Andersen Ring, 1854-1933)
아침 출근길 골목에 있는 어느 포스터 가게에 전시되었던 그림이다. 식탁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여자. 나는 우연히 이 그림을 발견하고 나서 지나갈 때마다 한참을 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었다. 하지만 제목은 무엇이고, 누구의 작품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결국 나는 너무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용기를 내서 물어봤고 겨우 작가의 이름과 제목을 알게 됐다. 로리츠 안데르센 링이라는 덴마크 화가의 <아침에>라는 작품이었다.
마치 100년 전에 찍은 스냅사진 같은 이 그림은 신문을 읽는 여성이 있는 아침식탁 장면이다. 화면 중앙에 앉은 이 화사한 원피스의 여성은 언젠가 한 번은 누구나 봤을법한 익숙함과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금방이라도 훌쩍 일어날 듯한 긴장감도 준다. 그녀는 바깥으로 뛰어 나가려는 걸까? 아니면 똑바로 몸을 돌려 신문에 열중하려는 걸까?
여성의 뒤로는 문틀이 화면을 반으로 나누고 있다. 소실점이 있는 왼쪽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화면 너머로 어두운 집안이 이어질 것 같고,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아침 햇살을 받은 마루에서 난간, 마당으로 이어지며 밖을 향한다. 하지만 마당 역시 빡빡한 수풀에 가려져 있다. 그래서 해방감보다는 도리어 미지의 긴장감을 주는 것 같다.
그렇다. 어찌 보면 그저 아침식탁에 앉아 신문을 보는 특별할 거 하나 없는 장면이다. 그런데 비스듬하게 엉덩이를 걸친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그녀는 너무나 신문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안에 있는 그녀는 바깥세상 일이 너무나 궁금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뛰어 들어와 서둘러 신문을 펼쳐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녀는 이 답답한 집을 벗어나고 싶어서, 언제라도 뛰어나갈 속셈으로 무릎을 바깥으로 돌려 앉았는지도 모르겠다. 신문은 아마 건성으로 보는지도 모른다. 몸은 집에 속박되어 있지만 마음은 이미 바깥세상에 가 있는 것이다.
그도 아니면 그녀는 그저 나른한 아침에 만사가 귀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식탁을 치우려고 발은 이미 바깥으로 돌려놨지만, 잠깐 신문을 읽으며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오늘은 그러기 딱 좋은 햇살이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 그림의 이런 분위기가 좋다. 그녀의 옷이나 이 집의 모습은 꼭 신혼부부의 집 같다. 누가 부르면 깜짝 놀란 눈동자로 돌아볼 것만 같은 그녀. 만일 사랑하는 남편이 불렀다면 돌아보는 그녀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그녀의 눈동자에는 그녀가 두고 온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아직은 자신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들을 연상하게 하는 그녀의 뒷모습은 그래서 내 눈을 붙잡는다. 새색시 같은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순간이 지나면 그녀는 이제 무엇을 하게 될까? 그녀의 소박한 꽃무늬 분홍 드레스와 파란색이 칠해진 비싸 보이지 않는 가구들, 집안의 작은 화분과 뜰에 가득한 나뭇가지들, 그리고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마룻바닥도 모두 나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나를 사로잡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