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안 보는 어느 후배가 있었다. 녀석은 나에게 독서를 안 한다고 괴롭힘을 당하다가 큰 맘먹고 책을 한 권 샀다.그런데 책을 너무 안 읽어서 그런지 소설인데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책을 보시고는 니가 웬일로 책을 다 샀냐고 신기해하며 이렇게 물으셨다고 한다.
"나도 읽어보자.이거 상(上)권은 어딨니?"
그러니까 후배는 하권만 산거였다. 책을 좀 보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글자지만, 그에게는 이 간단한 한문 상하上下도 걸림돌이 되었다.소설을 하권부터봐서는 내용이이해될 리 없다.만일이 후배가 박상륭의 소설을읽는다면 어떨까? 분명 한글을 읽는데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할 게 틀림없다. 아아-파안대소가 절로 난다!
"속절없다는 글의 뜻을 아십니까?"
신지훈의 <시가 될 이야기> 노래의 첫 소절이다.
나는 어릴 때 속절없다는 말을 썼고, 쓰는 걸 들었다. 하지만 이제 젊은 친구들에게 이 단어는문자로만 볼 수 있는 그야말로 "글"이 되었다.
라디오가 책을 죽이고, 티브이가 라디오 스타를 죽이고, 넷플릭스가 TV를 죽이고. 또 그 넷플릭스는 이제 숏츠나 릴스, 틱톡 같은 짧은 동영상에게 사람들을 뺏기고 있다.
이런 세월 속에이제는 안 쓰는 단어들이 아주 많아졌다.가뭇하다, 아스라이, 터울, 사무치다, 고름, 희나리, 살포시, 화면조정시간, 브라운관 티브이, 사잇길.... 그저 잠깐 떠올린 이 단어말들 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단어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이자리를 신조어들이 차지하고 있다. 복붙, 급식충, 라떼충, 잼민이, 얼죽아, 갑분싸, 내돈내산, 존잘남... 내가 어린 시절에는 한자에서 유래된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쓰였다. 지금은 또 그 자리를 영어에서 유래된 단어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