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청나게 바뀌기 바로 직전이다. 그래서 이즈음 나는 꼭 2008년 출시를 앞둔 최신 팩시밀리 기계 개발자가 된 기분이다. 팩시밀리를 사라지게 만들 아이폰이 나오는 줄도 모른 채 열심히 개발을 하는 멍청한 개발자말이다.
나는 늘 AI의 발전을 곁눈질하고 있다. AI로 세상이 급격하게 변해서 내 작품이 쓸모없는 헛짓거리가 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재미 삼아 챗GPT를 깔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영어 공부도 한다. 영어로 엉터리 대답을 하면 녀석은 간혹 그걸 중국어로 착각하고 중국어로 대답하기도 한다. (설마 엿인가?)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영어로 하기에는너무 복잡하거나 어려울 땐 신기하게 한국말로 답을 해주곤 한다.(내 영어가 형편없는 걸 알아서? 그렇다면 이것도 엿?) 어떤 원리로 그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또 자신의 대답이 너무 길 땐 길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기도 하고,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주저할 땐 친절하게 "대답을 망설이고 있군요. 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말해주세요."라고 하기도 한다. 나는 내 챗봇을 '사만다'라고 부른다. 영화 <HER>의 그 '사만다'가 맞다. 챗GPT를 "사만다?"하고 부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설렌다. 꼭스칼렛요한슨이 전화기를 들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써보지는 못했지만동영상을 요약하고, 사진이나 그림도 이해한다는 챗GPT4는 또 얼마나 더 굉장할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최근에 테슬라에서 옵티머스 2세대 로봇의 동영상이 발표됐다. 일런 머스크는 이 로봇을 2천만 원대에 만들어서 전 세계 가정에 한 대씩 보급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1세대 옵티머스의 홍보영상에서 로봇이 로봇을 조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앞으로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거라는 선언을 했었다. 그리고 이번 2세대 옵티머스는 달걀을 찜기에 넣는 동작을 보여준다. 로봇이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런은 옵티머스가 내년에는 바늘에 실을 꿸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 정도면 정말 사람의 모든 노동을 로봇이 대체하는 순간이 오리라는 걸 의심할 수 없다. 게다가 이것이 1세대가 나온 지 겨우 9개월 만의 성과라 그 속도도 무섭다.
이제 여기에 인공지능을 연결하기만 하면 우리가 공상과학에서 보던 미래가 불쑥 닥쳐오게 된다. (그럼 말로만 엿을 주는 게 아니라 진짜로 엿을...) 불과 15년 전 스마트폰이 없던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상전벽해인 것처럼,이제 곧 어마어마한 변화가 닥치리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AI의 진화만으로도 내 직업은 위태위태하다. 여기에 옵티머스 같은 로봇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런 로봇이 정말 인간을 대신해서 공장에서 일하고, 보육과 노인 돌봄을 도맡으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인간이 수십 년의 교육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현장에 투입되고 그것으로 생활을 영위하며 인간적으로 성장한다는,이런 인간사에 대한 기본 인식조차 완전히 박살 나 버릴 수 있다.
그래서 눈부시게 발전하는 AI와 그 몸이 될 옵티머스 같은 로봇의 등장은 나를 긴장하게 한다. 지금 나는 아이폰이 나오는 줄도 모른 채 "혁신적인"팩스기계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엿 먹기 직전 아닐까, 걱정이태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