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len rabbit Dec 24. 2023

선한 자들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맞이를 더러운 얘기로 시작해 보자. 

나는 엄청 화장실이 급했다. 나는 거의 뛰듯이 걷고 있었는앞에 웬 인간이 어슬렁대며 길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얼마나 급한데! 칼치기를 하자니 잘못해서 부딪히기라도 하면 괄약근이 개방될 것 같고... 정말 왜 이렇게 얼쩡대?! 느릿느릿 한갓진 음이 개 열받는다. 게다가 저 거지 같은 패션 꼬락서니는 또 뭔가. 이 패션테러리스트야 니 바지에 뭐 묻히고 싶지 않으면  얼릉 비! 틀림없이 못생기고 한심하고 멍청한 인간일 거야!

내가 온갖 원망과 저주를 쏟아부으며 간신히 그를 앞질렀을 때였다. 갑자기 들고 있던 비닐봉지가 찢어지면서 오렌지가 쏟아다! 8개 살 걸 괜히 12개 샀어. 후회도 잠시, 오렌지 인도뿐만 아니라 도로까지 굴러갔다. 큰일이다. 나는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었고, 허리를 굽히기에는 괄약근맙소사였다! 오 하느님!

그때 내 앞을 가로막았던 그 느려터진 인간이 오렌지를 주어 주었다. 뒤통수를 볼 때는 최악의 인간처럼 보였는데, 오렌지를 줍는 그의 웃는 얼굴은 천사처럼 보였다.  괄약근의 수호천사.

이랬다 저랬다. 사람의 눈이란 얼마나 간사한 것인가.

...


이 추운 날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오체투지를 하고 계신다는 포스팅을 봤다.

항상 나의 고통은 세상 무엇보다 크고 무거우며, 가장 급하고 위태로운 것이다. 언제나 그렇다. 

오늘 내가 크리스마스에 그저 조용히 지내고 싶은 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 뒤에 있는 힘들고 급한 누군가의 사정도 알 도리가 없다. 그러니 내가 그분들의 고통과 아픔을 다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악마도 천사도 아니다. 그저 상대적인 기준에서 때로는 악마로 때로는 천사로 보일 뿐이다. 오늘이라고 딱히 모두의 마음에 축복이 내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쯤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천사로 보 그런  하루가 되기를 빌어본다.

....

크리스마스니까.

 

이전 13화 옵티머스 시대에 혁신적인 팩시밀리 개발자로 산다는 것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