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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Feb 25. 2024

엉망진창 요절복통 우당탕 이사하기

간장과 심장을 졸이는 대 모험

<시작>

이사 갈 집을 알아봐야 했다. 우리가 살던 603동은 집주인 다른 곳에서 전세를 살고 있었는데 이번에 돌아온다는 것이었. 마침 602동 주인이 분양받은 새집으로 이사간다고 집을 전세로 내놓다. 그렇게 우리는 603동에서 602동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602동 주인은 분양받은 아파트 입주가 이미 시작됐다며 이사 날짜를 좀 당길 수 느냐고 물었다. 우리도 마침 개학이 코앞이라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603동 집주인에게 날짜를 좀 당길 수 없냐고 물었다. 마침 603동 집주인도 가능하면 일찍 이사를 오고 싶다고 했던 참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 안된다였다. 602동, 우리, 603동 주인의 뜻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603동 주인이 살던 집에 이사를 오는 사람의 일정도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채인 리액션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때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이때부터 이번 이사는 망조 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포장이사 10회 차의 위엄
이사도 가기 전에 포장을 끝낸다!

<이삿날 오전>

때마침 이삿날 아내는 연수가 있었고, 딸도 학교에 가야 했다. 나 혼자 이사를 해야 했지만, 그래도 똑같은 구조의 집으로 이사를 가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집에 있는 가구모두 번호를 붙여뒀다. 그리고 이사 간 집에서 이 가구들 어떻게 배치지 도면 그렸다. 이 도면을 이사 갈 602동 방마다 붙여놓을 계획이었다. 그래서 이삿짐 직원들이 내게 가구를 어디에 놓을지 일일이 묻지 않아도 되도록  생각이었다.

불길하게도 전날부터 내리던 비는 이사 당이 되어서도 그치지 않았다. 아침 7시 반부터 이삿짐을 빼기 시작했다. 이번이 결혼하고 열 번째 이사였다. 첫 이삿짐은 1.5톤 용달 한 대 분량이었는데, 20년 차가 된 지금은 5톤짜리와 1.5톤짜리 두 대가 이삿짐을 가득 싣고도 넘쳤다. 그리고 이번 이사에서 신혼 때 샀던 살림 중 유일하게 남았던 화장대마침내 버려졌다. 테세우스의 배처럼 그렇다면 이것은 결혼한 사람의 이삿짐인가 아니면 새로운 집안의 이삿짐인가? 아무튼 이사가 반복될수록 가구며 전자제품이든 버티질 못한다.  


11시 반쯤 이삿짐을 무사히 모두 내렸다. 아직 짐을 다 못 내린 602동 앞에 부려진 우리 짐은 비를 맞고 있어야 했다. 그 사이 이삿짐 직원들은 점심을 먹으러 갔고, 나는 부동산으로 향했다. 12시쯤 603동 주인에게 전세금을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는 몰랐지만 그러나 부동산에는 폭탄이 하나 대기 중이었다.

 

<사건의 시작>

부동산 사장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다. 603동 주인이 전세금을 오후 2시 반에 보낸다고 했다는 거다. 나는 황당했다.

"사장님 돈을 받아야 저도 전세금을 내고 짐을 넣잖아요."

부동산 사장님은 전세금을 보내긴  테니까 먼저 짐을 넣을 수는 없겠냐고 물었다. 603동 집주인의 짐은 이미 집 앞에 와 있었다. 603동 집주인의 짐이 들어갔는데 만에 하나 전세금을 못 받게 되면 나는 602동에 들어가지 못한 채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일이 꼬이고 있었다.

"602동 집주인이 저희 들어가게 해 주면 저희도 603동 집주인이 들어갈 수 있게  드릴게요."

하지만 당연히 602동은 전세금도 안 받고 짐부터 들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603동 집주인과 우리, 그리고 602동 집주인의 이삿짐이 모두 밖에서 비를 맞고 있었다. 602동 집주인은 부동산 사장에게 전화를 해서 노발대발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연되면 이사 추가비용이 발생하는데 그건 세입자인 내가 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도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나는 부동산 사장님에게 말했다.

"사장님, 건 603동 집주인 탓이니까 우리 추가 비용까지 그쪽에서 내야 해요." 

그런데 추가비용은 603동 집주인도 마찬가지로 발생할 것이다. 그럼 603동 주인은 세 집 분의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그런데도 전세금을 안 준다고? 왜? 이렇게 늦어지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부동산 사장님은 어떻게든 빨리 해결해 보겠다며 자기가 603동 집주인한테 가보겠다며 나갔다. 곧바로 이삿짐 직원에게 전화가 와서 식사를 마쳤으니 602동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차마 2시 반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수가 없었다.

"지금 전세금 받는 게 문제가 조금 생겨서 그런데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하지만 조금 기다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방법이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시계를 봤다. 12시 반이 좀 넘었다. 난 40분쯤 뒤에 이삿짐 직원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아, 어떡하죠? 이게 좀 일이 꼬였는데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거 같은데요. 어쩌죠?"

전세금을 받기까지 아직 한 시간도 넘게 남았다. 내가 돈을 받고, 그 돈을 다시 602동 집주인에게 치르는 데는 또 시간이 필요했다. 이삿짐 직원은 추가비용 이야기를 꺼내며 한정 없이 기다리고 있을 순 없다고 했다. 나는 그저 죄송하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부동산 사장님에게는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해결의 실마리>

602동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집 비밀번호를 알려줄 테니 짐을 넣으라는 것이다. 집주인이 말했다. 

"짐이 비 맞는 걸 보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일단 짐을 넣으세요."

나는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이삿짐 직원들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602동으로 올라갔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하고 웃겼다. 일단 짐을 넣으면 전세금을 혹시라도 받지 못한데도 문제가 을 것 같기분에 이상했고, 이 상황에서도 내가 너무 침착해서 웃겼다. 602동 집주인이 현관문 비번을 가르쳐줬다. 12345였다. 나는 비밀번호를 듣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나는 우리 집의 비밀 번호부동산 사장에게 려줬다. 우리 집 비번은 0000이었다.


도면까지 그렸지만 이삿짐은 계획대로 들어가지지 않았다. 집 구조는 똑같은데 겨우 손톱 만한 차이로 계획대로 가구를 넣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3시가 지나도 부동산 사장님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세운다. 나한테 처맞기 전까지는."

이라고 말했던 타이슨의 말 그대로였다.


<엉망진창>

4시가 다 되어가자 나는 부동산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다. 부동산 사장님은 살다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내게 말했다. 602동 집주인이 전세금을 받아서 빨리 은행 일을 봐야 하니까. 돈을 보내면 재빨리 602동 집주인에게 전달해 달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602동은 새 집에 들어가는데 만약 돈을 은행에 다 지불하지 않으면 분양 사무소에서 절대 집 열쇠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그러니까 602동 집주인의 짐은 여전히 비를 맞고 있는 이었다. 나도 이런 경우는 이사 열 번 만에 처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사 나가고 들어오는 이 거대한 연쇄가, 게다가 몇 억씩이나 되는 이 큰돈이 그동안 아무 문제 없이 해결됐다는 게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걸 무려 열 번씩이나 했다니...  정말 간도 크다.... 후덜덜하고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4시가 지나서 부동산 사장님의 호출을 받고 부동산으로 향했다. 부동산에서는 602동 집주인이 사색이 된 얼굴로 앉아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은행의 업무가 끝났기 때문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봐달라고 간청을 하는 중이었다. 부동산 사모님은 내가 오기 전에 602동 집주인한바탕 난리를 쳤다고 전했다. 부동산 사장님은 603동 집주인이 전세비 중 일부를 먼저 보낸다고 전화를 했다. 왜 전액을 보내지 않고 일부를 보내는지 도대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603동과 602동은 전세비가 차이가 있었다. 부동산 사장님은 받은 전세비 일부에서 차액을 얹어서 602동 집주인에게 먼저 보내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참 뒤에 부동산 사장님은 602동 집주인 사정이 있으니 603동 집주인이 전세금을 바로 602동 집주인에게 보내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펄쩍 뛰었다.

"아니, 그러는 법이 어딨 나요.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내가 돈을 받아야 전세금 반환이 되는 거고, 내가 전세금을 줘야. 전세금을 치르는 거죠!"

나는 화를 냈지만 603동 집주인은 602동 주인에게 전세금을 바로 부쳐버렸다. 이러는 게 어딨 느냐고 내가 화를 내는 사이 602동 주인 내게 다급하게 물었다.

"차 있으세요? 제가 빨리 은행 가야 하는데!"

하지만 나는 차가 없었다. 602동 주인은 내 대답을 다 듣지도 않은 채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러자 이번엔 부동산 사장이 내게 물었다. 602동과 603동의 전세금 차액이 있으니, 602동 주인에게 돈을 얼마를 보내야 맞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코미디인가. 미리 치렀던 계약금도 602동과 603동이 달랐고, 조금 전에 전세금 일부를 받았을 때 거기에 내가 전세비 차액을 더해서 602동 집주인에게 전했기 때문에 계산이 복잡해졌다. 부동산 사장님과 사모님 그리고 나는 갑자기 돈 계산이 바빠졌다.    


<사건의 결말>

집에 돌아가니 이삿짐 직원들은 짐을 모두 옮겨 놓고 가버린 뒤였다. 황당한 이사였다. 나는 전세금을 받지도 않고 이사를 했다. 마루와 방에는 이사하기 직전처럼 풀지 못한 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저녁에 603동 집주인이 부동산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갔다. 603동 집주인도 역시 사색이 되어 있었다. 부동산 사장님과 603동에게 들은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603동 집주인은 자신이 살던 집에 들어오기로 한 세입자 A이상한 이유로 전세금을 계속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테면 변기 버튼 힘껏 눌러야 물이 내려간다고 트집을 잡았다고 한다. 안 내려가는 게 아니라 "힘껏 눌러야 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 황당한 시비를 하며 돈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2시 반에 세입자 A가 집주인 B에게 돈을 전해주자 이번엔 집주인 B가 장기수선 충당금을 못 주겠다며 실랑이를 벌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돈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네? 뭐라고요? 정말요?"

정말이지 이런 경우는 난생처음이었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602동 집주인은 저녁이 되어서야 키를 받고 짐을 넣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사비가 는 것은 물론이고, 이사 당일에 맞춰놨던 인터넷, 가스, 등도 미뤄졌고 무엇보다 새로 구입한 가구와 전자제품들이 모두 다음날로 미뤄지면서 추가 비용이 생겼다고 한다.


만약 602동 집주인이 내게 전세금 못 받았다고 모른 척하면 어쩌지? 603동 집주인이 돈을 더 보냈으니 나보고 뱉으라면 어쩌지? 이틀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전세비 영수증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603동 집주인도 전세비 받아내느라 골 때렸을 테고, 602동 집주인도 빗속에서 이삿짐을 못 넣어서 발을 동동 거렸을 게다. 이만하면 나는 꿀 빠는 이사였다고 해야 할까?


신용은 자본주의의 가장 큰 재화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쓰는 카드도 신용을 이용해 빚을 내서 쓰는 것이다. 어느 한 군데 신용이 무너지면 다음부터는 그걸 확인하고 보증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12시에 주겠다던 전세금이 미뤄지면서 우리는 난리를 겪었다. 그 때문에 누군가는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이사  때  오면 어쩌지? 이삿짐은 뺐는데 이사 갈 집에 못 들어가면 어쩌지? 전세금 못 받으면 어쩌지? 이사를 갈 때마다 늘 상상하고, 불안해했던 바로 그 일이 정말 내게 일어났다. 벌써 다음번 이사를 생각하니 아찔하다. 정말이지 굉장한 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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