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가> 1화
1+1은 2다.
세상이 열 번 망하고 다시 열 번을 망한 뒤에도 정답은 같다. 3이나 4가 될 리 없다. 한동안 시윤은 3이나 4가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모르는 척 미련하게 고집을 부린 건지도 몰랐다. 도경 오빠가 잠수 탄 지 세 달이 다 됐다. 아무리 전화를 하고 톡을 해도 도경은 답이 없었다. 온갖 불행한 생각에 빠져 있던 시윤은 1+1은 2라는 걸 깨닫고야 겨우 마음을 수습할 수 있었다. 미래는 늘 조금씩 더 나아져야 했다. 시윤은 그렇게 배웠다. 도경도 역시 그렇게 배웠을 것이다. 그러니 미래는 2가 아니라 3이 되고 4가 되고 10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도경에게 시윤은 곱해도 더해도 그대로인 1이었다. 억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윤의 배경과 현실이 말해주고 있었다. 대학 입시 때도, 회사 입사 때도 계속 겪어온 일이었다. 잠시 외면했을 뿐 몰랐던 사실은 아니었다. 시윤이 도경을 만난 것은 3이나 4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도경도 3이나 4가 되는 선택을 한 것뿐이었다. 1+1은 2. 그제야 시윤은 도경에 대해 담담해질 수 있었다. 시윤은 연애도 다른 세상일과 같다는 걸 서른 살이 되고야 알게 된 자신이 한심했다.
“아니, 나 아직 만으로 스물아홉이야.”
시윤은 그나마 이것이 조그만 위안이 됐다.
회사를 마치고 시윤은 저녁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된 가게는 시윤도 가끔 가던 곳이었다. 레트로한 게임기와 커다란 콜드브루 장비가 같이 있는 어딘가 어중간한 가게였다. 그래서인지 낮에는 카페를 하고 저녁에는 술을 팔았다. 가게로 들어가니 좁은 가게 안에는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오가면서 본 얼굴도 있고 전혀 모르는 얼굴도 있었다. 바키가 시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여기야.”
바키는 귀여운 외모에 걸쭉하고 시원한 반전 입담을 가진 대학 친구다. 학교에서 유명한 존잘남을 손절한 뒤 자신을 “잔인한 Bloody Queen”이라 불렀고, 줄여서 바키가 됐다. 시윤은 그런 바키가 늘 부러웠다. 시윤이 곁에 앉자 바키가 말했다.
“너 속도 좋다. 어떻게 올 생각을 했냐? 이게 무슨 자린 줄 알고?”
“찬솔이가 오라고 해서 온 거야. 왜? 무슨 일 있어?”
“라미 언니 찬솔이랑 결혼한단다.”
“뭐?”
시윤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람들 속에 한껏 차려입은 라미와 찬솔이 축하를 받고 있었다. 시윤은 도경이 잠수 탄 이유가 라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학 동기 찬솔과 결혼이라니. 바키가 말했다.
“저년 도경 오빠랑 그렇게 붙어먹더니…. 야, 도경 오빠한테 연락 다시 오는 거 아니야? 너 연락 오면 다시 만날 거야?”
시윤은 자신이 없었다. 시윤은 어릴 때부터 말 잘 듣는 아이였다. 만약 도경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나오라고 하면 시윤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나갈지도 몰랐다.
“어? 시윤아. 왔어?”
시윤을 발견한 라미가 다가와 물었다.
“도경 오빠같이 안 왔어? 도경 오빠한테도 여기 오라고 했는데.”
“왔냐. 야, 야, 내가 쏜다. 니들 마음껏 마셔!”
찬솔이 아는 체하고는 곧바로 라미를 다른 테이블로 끌고갔다. 바키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미친 거 아니야? 같이 안 왔냐니. 그게 할 말이야?”
“찬솔이랑 라미 언니랑 사귀었어?”
“몰라. 찬솔이가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나도 몰랐지.”
“그럼 도경 오빤 어떻게 되는 거야…?”
“너 지금 그 새끼 걱정할 때야?”
“아니, 그게 아니라….”
“보면 모르겠냐? 도경 오빠랑 찬솔이 놓고 잰 거잖아. 근데 찬솔이네 집안이 더 좋았던 거지. 미친년.”
갑자기 시윤은 어느 토요일 저녁이 떠올랐다. 로비에서 도경과 방이 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시윤은 마음이 심란했다. 조금 전 술자리에서 찬솔과 도경이 자리를 비웠을 때 라미가 한 말 때문이었다.
“너 도경 오빠랑 결혼할 거야?”
“아직 생각 안 해 봤는데요.”
“얼른 결혼해라.”
“갑자기?”
“도경 오빠 괜찮잖아. 탐나서 그래. 나 결혼하고 싶거든.”
“고마워요. 언니.”
시윤이 말하자 라미는 피식- 웃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저 오빠가 결혼 상대로 좋은 사람이니 잘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은 마치 돌을 삼킨 것처럼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시윤은 라미가 그 말을 도경에게도 했다는 걸 곧 알게 됐다. 호텔 방에서 도경이 관계 도중 피식- 웃었기 때문이다. 라미가 웃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시윤은 내색하지 않았다. 라미네 집은 부유했다. 라미는 쇼핑몰을 운영하는 CEO이자 그 회사의 모델이기도 했다. 라미를 수능 1등급이라고 한다면 시윤은 4등급이었다.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시윤은 생각했다. 그저 자존감 떨어지지 않게 마음 단단히 먹자고 다짐했을 뿐이다. 시윤은 웃는 도경을 마주 보며 따라 웃었다.
“602동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데.”
관계가 끝나고 통화를 했을 때 시윤의 엄마가 다짜고짜 한 말이다. 그 말을 시윤이 기억하는 이유는 자기도 떨어져 죽은 게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