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젠가> 최종화
욕조에서 시윤은 핸드폰으로 게시판을 열었다. 게시물이 마침내 베스트에 올라가 있었다. 조회 수도 댓글도 난리였다. 시윤은 핸드폰의 문자와 톡을 확인했다. 엄청난 수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 톡이 와 있었다. 도경이었다. <시윤아 내가 잘못했다. 너한테 더 잘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지금 통화하고 싶어 시윤아. 난 네가 어떤 상황에 있든 상관없어. 사랑해 시윤아. 우린 잘해 나갈 수 있을 거야. 오빠는 믿어. 제발 전화 좀 받아!> 도경이 게시판 글을 봤다! 시윤은 도경에게 문자를 보내면서 왈칵 눈물을 쏟았다. 서럽거나 무서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연민 때문이었다. 시윤은 맹렬하게 지구로 추락하고 있었다.
시윤은 남자애에게 도경 오빠 얘기를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망설였다. 어차피 남자애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방에서 TV 채널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애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채 한가하게 치맥을 즐기고 있었다. 어쩐지 남자애가 손질도 안 된 홍합을 잔뜩 올린 맛없는 짬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윤이 고개를 저었다.
“짬뽕 같은 놈.”
시윤이 게시판의 댓글을 읽었다. 미친년이라느니. 성병이나 걸리라느니. 니 에미애비가 불쌍하다느니. 인신공격이 대부분이었다. 쓰리썸을 하라거나, 남친이 오면 닥치고 펠라티오를 해주면 용서받을 거라는 댓글도 있었다. 그저 몇 글자 말뿐인데도 상처를 줬다. 시윤은 울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때 누군가 복도에서 미친 듯이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쾅쾅쾅-!!
방에서 뭐야? 하는 짬뽕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시윤은 그게 누구인지 알았다.
“도경 오빠.”
“시윤아! 시윤아! 너 여기 있어?! 시윤아! 나야 문 열어! 시윤아!”
도경의 목소리! 시윤은 금세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도경은 좋은 사람이었다. 싹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도경과 행복한 날들도 많았다. 하지만 시윤은 무대에서 내려가는 중이었다. 도경도 이제는 벗어야 할 무대 의상 같은 것이었다.
쾅쾅쾅!!
짬뽕이 프런트로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누가 와서 난리라고, 빨리 올라와 달라며 외쳤다. 도경이 소리쳤다.
“시윤아! 시윤아!”
“야! 니가 시윤이야?”
짬뽕이 어떻게 된 거냐고, 남자친구가 있었냐고, 자기는 아무 잘못 없다고 화장실 앞에서 소리쳤다.
“너 씨발. 꽃뱀 맞지?!”
시윤이 말했다.
“문 열어줘.”
“뭐? 미쳤어?!”
“내가 알아서 할게. 열어.”
“그걸 말이라고 해?! 이 미친년아!”
“알아서 한다잖아! 열어!”
짬뽕이 “씨발. 좆됐네. 미친년. 더러운 년.” 욕을 하며 옷 입는 소리가 들렸다. 도경에게 이곳을 알려준 건 시윤이었다. 시윤은 울면서 모텔 이름이며 위치, 호실까지 정확히 알려주느라 문자를 몇 번이나 보내야 했다. 시윤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여전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욕조를 나올 때 시윤은 잠시 망설였다. 짬뽕이 현관문에 대고 자기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윤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괜찮아. 괜찮아.”
철컥!
현관문이 열렸다. 도경이 보였다. 시윤을 발견한 도경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여기는 7층. 지구가 가까웠다. 시윤은 맹렬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도경의 머리를 핸드폰 모서리로 찍었다!
불시의 공격에 도경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도경의 표정은 오묘했다. 마치 뜨끈한 순댓국에서 얼음을 건져 먹은 표정이었다. 도경이 얼음을 뱉듯 소리쳤다.
“너 미쳤어?! 이게 뭐 하자는 거야!”
“그래, 미쳤다!”
“난 바키니까!”라고 시윤은 덧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바키라니. 이번엔 하마터면 시윤이 웃을 뻔했다. 웃음을 참는 시윤의 모습이 도경을 더욱 화나게 했다. 도경이 소리쳤다.
“도대체 니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도경이 짬뽕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사람 뭐야? 이 새끼 누구냐고?!”
썸남? 치킨? 짬뽕? 생각해 보니 시윤은 짬뽕의 이름도 몰랐다. 시윤이 핸드폰으로 짬뽕의 머리를 찍으며 소리쳤다.
“너도 꺼져!”
느닷없는 일격에 화가 난 짬뽕이 시윤의 머리를 철썩 때렸다!
“이런 씨발.”
“악!”
비명을 지르는 시윤. 시야 가득히 별들이 반짝였다.
“이 개새끼가!!”
순간, 성난 도경이 짬뽕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짬뽕도 물러서지 않았다. 둘은 끌어안고 침대 위를 뒹굴고, 서로 노려보며 방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우당탕-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했다. 남자들이 멱살을 잡고 힘을 쓰는 사이, 비틀대던 시윤이 턱을 세게 얻어맞았다. 누가 때렸는지, 뭐로 맞았는지도 몰랐다. 천장이 뱅글뱅글 돌았다. 아프다기보다는 턱과 몸이 분리되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시윤은 줄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감은 눈 안쪽에서 별들이 비처럼 쏟아졌고 시나브로 까무룩 해졌다. 시윤은 인공위성이 되어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코피가 로켓처럼 주르륵 흘렀다. 그리고 시윤은 마침내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시윤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와르락!
어디선가 젠가 무너지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