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2. 찾는 게 있지? (두번째)

단편소설 <서쪽 끝> 5화

by allen rabbit

한철이 나를 부른 것은 며칠 뒤 토요일 오후였다. 고급 주택가에 있는 유명한 와인바였다. 종업원을 따라 올라가니 사방이 탁 트인 옥상에 한철이 혼자 앉아 있었다. 녀석은 하얀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에서 곱창전골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괜찮아. 여기 주인을 잘 알거든. 먹고 싶어서. 아, 냄새 불편하면 말해. 치울게.”


지난번엔 두통 때문에 한철과 이야기하다 말고 도망치듯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왔었다. 녀석은 내가 마스크를 두 장이나 쓴 걸 기억하고 이렇게 사방이 뚫린 옥상을 택한 것 같았다. 한철은 와인을 권했지만, 두통이 염려된 나는 소주를 택했다. 유명 와인바 옥상에서 곱창전골에 소주를 마시는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한철이 연거푸 술을 마시더니 화가 난 듯 물었다.


“백연희가 누구야?”

“내 소설 속 여주인공. 너도 나와. 이한철.”


나는 쓰고 있는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했다. 다 듣고 난 녀석이 물었다.


“그래서 끝이 어떻게 되는데?”

“그런데 사실은 이한철 너도 백연희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지!”

“장르는 뭔데? 서스펜스? 스릴러?”

“웃지 마. 멜로야.”


하지만 녀석은 웃는 대신 이번엔 잔을 든 손을 심하게 떨었다. 내가 물었다.


“너 왜 이렇게 심각해?”


한철이 뚫어져라 나를 바라봤다.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한철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투자 상담 전화였다. 녀석은 자기를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누는 것도 큰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갑자기 녀석과 나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주말 오후인데 지금까지 아무도 이 옥상을 기웃대지 않았다. 녀석은 아마도 옥상을 통째로 빌린 모양이다. 나는 무엇이 녀석을 변하게 했을지 궁금했다. 통화가 끝나자 물었다.


“너 돈 버는 거 별로 관심 없다고 했었잖아.”

“나 수학 좋아했잖아. 숫자는 정직하니까. 재산이 많아지면 숫자도 커지잖아. 그럼 나도 커지는 거 같거든. 이건 돈을 버는 게 아니야. 그냥 숫자를 키우는 거지. 숫자는 끝이 없거든.”


사뭇 진지하던 녀석은 괜한 소리를 했다는 듯 힘없이 웃었다. 녀석이 물었다.


“너 형 있었지?”

“응. 지금 외국에서 살아.”

“이런 생각 해봤어? 사실은 너한테 다른 형제가 더 있는데, 그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있었는지 기억도 못 하게 되는 거야.”

“사라진다고?”

“응.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야. 지워지는 거지.”

“그게 무슨 소리야?”

“뭔가 찾는 게 있다면, 뭔가 잃어버린 게 있다는 뜻이잖아.”


갑자기 또 가슴이 짓눌리는 것처럼 나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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