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화> 3. 사무치게 (두번째)

단편소설 <서쪽 끝> 7화

by allen rabbit

그 뒤로 나는 한철을 따라다녔다. 한철은 사무실에 있다가 종종 공장이나 다른 회사로 탐방을 가기도 했다. 그런 뜻밖의 장소에서 나를 발견할 때면 한철은 깜짝깜짝 놀랐다. 하지만 나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가끔은 서울로 돌아오는 녀석의 차를 얻어타기도 했다. “왜 그래?” 차 안에서 한철이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녀석의 목소리가, 술잔을 든 손이 떨렸다는 이유로 무작정 녀석을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니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호텔 커피숍에서 따라온 나를 발견한 한철은 도대체 왜 이러냐며 기어코 멱살을 잡았다. 나는 마스크를 고쳐 쓰며 맥없이 대답했다.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는 거야.”


***


빵빵- 경적에 돌아보니 낯선 고급 SUV가 서 있었다. 한철은 나를 태우며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에 대해 말해줄 사람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기억에서 사라진 사람이 있다는 걸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한철이 말했다.


“막연하겠지만, 어쨌든 여기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어딘가에는 어쩔 수 없이 흔적이 남는데.”

“흔적? 지워진 사람의 흔적이라니 앞뒤가 안 맞잖아.”

“응?”

“그렇잖아.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는데,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뭘 보고 어떤 것이 그 사람의 흔적이라는 걸 알 수 있냐는 거지.”

“어떤 사람은 그걸 음식으로 알았데.”

“음식?”

“그 사람도 상실감으로 괴로워하던 사람이었어. 자기는 멍게를 싫어해서 먹은 기억이 전혀 없는데. 어느 날 자기가 멍게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야.”

“그러니까 그게 사라진 그 누군가 때문이라는 거야? 입맛이 바뀐 건 아니고?”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또 평생 독신으로 산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아이가 있었다고 느꼈다는 거야. 그것 때문에 정신질환 판정까지 받았는데. 나중에 우연히 산부인과 검사를 해 보니까 출산한 적이 있었다는 거야. 또 어떤 사람은….”


어디선가 콩나물 냄새가 났다. 곧이어 정수리에서 목덜미까지 소름이 스스스 돋았다. 내 표정을 읽은 한철이 멋쩍은 듯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나도 들은 얘기야.”


나는 지난번에 녀석을 만난 뒤로 지워진 사람, 사라진 사람, 기억상실, 상실감, 그리움, 등을 키워드로 계속 검색해 봤지만 특별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대부분 납치되거나 실종된 사람들. 잃어버린 자식을 평생 찾아다니는 부모들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 사람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믿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겪는 이 고통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설사 사이비 종교 지도자의 말이라도 기꺼이 붙잡을 생각이었다. 지푸라기가 더 필요했다.


“그럼, 세상에 있던 사람이 사라졌다 치자. 그럼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야?”

“서쪽 끝에.”

“서쪽 끝?”

“응.”


나는 피식 웃었다.


“플렛어서(flat earther) 같잖아. 서쪽 끝이 뭐야.”

“수학에서 원의 넓이와 같은 넓이의 정사각형은 만들 수 없다는 거 알아? 파이는 3.14로 시작해서 끝없이 이어지는 초월수이기 때문이야. 파이는 덧셈, 곱셈, 거듭제곱 같은 것으로는 구할 수 없는 값이야. 그래서 원과 같은 넓이의 정사각형은 만들 수 없어.”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도 있다는 말이야?”

“뭐,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거지.”

“…”

“서쪽 끝도 그런 곳이야.”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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