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서쪽 끝> 12화
6. 입구
“이거랑. 이거. 백설기도 한 두 개 사고….”
고둥이 떡집에서 떡을 골랐다. 눈이라도 쏟아질 듯 하늘이 잔뜩 흐렸다. 한철은 저녁 9시까지 훈련원공원으로 나오라고 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하나둘 사람들이 모였다. 60대 사내도 있었고 20대로 보이는 여자도 있었다. 흑인 남자도, 동남아계 젊은 여자도 있었다. 그렇게 모인 열두 명은 모두 따로 연락받은 듯 서로 모르는 눈치였다.
이번에도 고둥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게 갑자기 나타나서는 사람들을 끌고 떡을 골랐다. 30대 안경 사내가 시루떡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러자 고둥이 말했다.
“안돼. 그건 안돼.”
안경이 수수깡처럼 깡마른 사내를 툭툭 치며 말했다.
“너 이 새끼 하여간 거짓말이기만 해봐. 아휴, 내가 미쳤지. 진짜 부자 되는 거 맞아?”
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안절부절못하던 60대가 나에게 물었다.
“그쪽은 얼마 주고 왔어요?”
“네?”
“내가 속은 게 아닌지 몰라서…. 천만 원이나 내고 왔는데.”
“천만 원요? 저 사람한테요?”
내가 고둥을 가리키자 60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사람은 그냥 갔어. 그럼 얼마? 팔백? 오백?”
나는 천만 원이나 내고 온 사람 앞에서 그냥 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상황을 파악한 60대가 포기한 듯 말했다.
“뭐, 거기 가서 찾는 거 없으면 돌아와서 다시 돌려달라고 하면 되지.”
“뭘 찾으시는데요?”
“거기 가면 약을 구할 수 있다고 해서…. 지민이가. 우리 딸인데 많이 아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내 굵어진 눈발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리고 드디어 고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고둥을 따라 줄줄이 골목으로 들어갔다. 한철에게 물었다.
“모르는 사람들이야?”
“응. 나도 처음 봐.”
“딸 약을 찾으러 간다는 사람도 있고, 다 다른가 보네.”
“응. 갖고 싶은 게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너는 뭘 갖고 싶은데?”
“그보단 뭘 잊어버리고 싶달까?”
한철이 어깨를 들썩이며 피식 웃었다.
고둥은 을지로 5가의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돌아다녔다. 골목은 미로 같았고, 우리는 기차놀이 하듯 한 줄로 서서 뒤를 따랐다. 일행 중 몇은 고둥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따라가는 것처럼도 보였다. 한철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한철아, 여기 아까 왔던 데 아냐? 지금 우리 빙글빙글 도는 거 같은데?”
“이제 다 왔네. 저기 배나무 보이지?”
“어디?”
“저기가 보통 입구야.”
하지만 한철이 가리키는 곳에는 빈 하늘뿐이었다. 입구라고? 녀석은 입구를 어떻게 아는 걸까? 고둥이 한철에게 말했다.
“떡 이리 줘.”
떡을 받아든 고둥이 어느 낡은 여인숙 앞으로 다가가 대문을 향해 말했다.
“이 떡 좀 먹어.”
사람들 틈으로 보이는 대문 앞에는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누구한테 말하는 거야?”
“저 할머니.”
다시 고개를 돌려보자 그제야 대문 앞에 앉은 허리가 납작 구부러진 할머니가 보였다. 너무 작아서 못 본 걸까. 할머니는 고둥이 사 온 떡을 먹었다. 그리고 고둥을 따라 모두 줄줄이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한철을 돌아봤다.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나도 대문 안으로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