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동> 제 1화
양옥집 형태의 단독주택과 다가구 주택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동네. 겨우 소방차가 한 대뿐인 소방서. 근방에 가장 높은 6층짜리 건물도 방공 규제 때문에 세모나게 잘린 동네.
타닥타닥!
경쾌한 소리가 들리는 2층 양옥집. 옥상에는 초록색 처마가 장식처럼 둘러 있다. 사자 손잡이가 있는 녹색 대문. 잘 꾸며진 정원과 항아리들이 모여 있는 장독대.
타닥타닥!
탁구공이 책상에서 벽으로 빠르게 왔다 갔다 한다. 집안도 부티 나게 잘 꾸며져 있다. 책장에 세워놓은 트로피. <독산 중학교 3학년 장기철. 제12회 구청장배 탁구대회 우승> 상을 받는 사진 액자. 책장에 꽂힌 교과서와 탁구 여왕 현정화의 <나는 여왕이기보다는 여자이고 싶다>
빠르게 공을 쳐 내는 예쁘장한 17살 소년 장기철. 중학교 때 기철이 탁구를 한 건, 사실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도 제대로 못 붙여 봤던 그 여학생은 마지막 시합 때 혼합복식 조로 뛰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우승하면 고등학교 가서도 같은 팀 하자.”
그때 기철의 가슴이 얼마나 뛰었던지! 그리고 마침내 승리를 했을 때 또 그녀는 얼마나 환호했던지!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한 기철은 탁구를 그만둬야 할 상황에 처했다. 탁구부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고등학교가 남학교였기 때문이었다. 기철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3년이나 해왔던 운동인데 그만둘 수 있겠어? 아쉽지 않아?”
사실 승리의 그 순간, 환호하던 그녀는 기철이 아니라 응원석의 남자친구에게 달려가 덥석 안겼더랬다. 기철은 이미 그때 탁구에 정나미가 똑 떨어졌다. 기철이 공을 탁- 잡고는 또 중얼거린다.
“중학교 땐 공학이었지만, 지금은 남학교잖아 ···3년간 뻘짓 한 거야.”
기철이 계단을 내려가 마루로 간다. 미장원 모자를 뒤집어쓴 엄마가 소파에 누워서 TV를 본다. 매일 미장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엄마가 묻는다.
“몇 시냐?”
“여섯 시.”
“아, 내 정신 좀 봐. 30분만 있다 오랬는데.”
“어디가? 엄마. 밥 줘.”
“니 아빠 운동하잖냐. 미장원 갔다 와서 차릴게.”
엄마가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마당에는 머리가 벗겨진 아빠가 악을 써가며 벤치 프레스를 하고 있다. 살며시 돌아서는 기철.
“기철아. 너 일루 와봐라.”
딱 걸린 기철. 귀찮은 표정이 역력하지만, 말을 안 들으면 난리가 날 게 틀림없다.
“왜요.”
“임마. 너 요즘 운동 좀 하냐?”
“하잖아요. 탁구.”
“그딴 거 해서 뭐해? 힘이 있어야지. 사내자식이 그렇게 비실비실해선 누구한테 말도 못 붙이는 거야. 하여간 요즘 것들은 약해 빠져가지고 말이야. 내가 말 안 했지? 지난번에 내가 주차장에서 젊은 놈 셋이랑 붙었는데····”
아빠는 최근에 주차장에서 젊은 남자들과 싸웠던 이야기를 자랑스레 했다. 주차할 자리를 찾다가 먼저 도착한 차를 제치고 주차를 해버리는 바람에 시비가 붙은 것이다. 아빠는 그런 얌체 짓을 하고도 뻔뻔스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딴 데 대. 딴 데 찾아보면 되잖아. 이 자리가 니 꺼야? 이름 써 놨어?”
결국 싸움이 났는데, 차에 타고 있던 남자 셋이 모두 약골이었던 모양이다. 한 남자는 불알을 차이고, 한 남자는 스트레이트 한 방에 기절, 나머지 한 남자는 목을 잡힌 채 이리저리 끌려다녔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아빠 잘못인데 말이다. 아빠가 말했다.
“그러니까 사내는 힘이 있어야 돼. 일루 와서 이거 몇 번 들고 가.”
“못 드는 거 뻔히 알면서! 싫다니깐 진짜!”
“이 자식이!”
달아나는 기철의 뒷덜미를 잡는 아빠. 뿌리치려 몸을 흔들지만 어림도 없다. 80킬로그램짜리 벤치 프레스를 하는 아빠에게 60킬로도 안 나가는 기철은 병아리 같은 존재일 뿐이다. 기철은 갑자기 형 기섭이 생각났다. 기섭은 입대하는 날 하루종일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집에 들어왔다. 왜 입대를 안 했냐고 화를 내는 아빠에게 기섭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애들은 아빠가 알아서 면제시켜주던데. 우리 집이 그렇게 가난해? 쪽팔리게. 나 가기 싫어. 절대! 절대 나 군대 안 갈 거야!”
그 순간 기섭은 하늘을 날았다. 아빠가 형을 번쩍 들어내 팽개친 것이다. 그날 유리 탁자도 함께 박살이 났는데, 결국 소원대로 기섭은 군대에 안 가게 됐다. 등에 유리 조각이 박혀서 한 달간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 달 뒤에는 현역 입대를 해야 했다. 할 수 없이 역기를 들어 본다. 용을 써보지만, 절대 들리지 않는다.
“이리 비켜봐. 잘 봐. 이렇게 손을 잡고···· 끙!”
아빠가 시범을 보이는 사이 기철이 살며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