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동> 제 2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 기철이 말했다.
“야, 오늘 날씨 너무 좋지 않냐?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기분이 좋을 거 같아.”
“날씨가 좋긴 개뿔. 학원 갈 생각하니까 골치만 아프다.”
“야 그래도 하늘도 파랗고 날씨도 따뜻하고…….”
“그래, 파랗네. 파아아래. 하이고~.”
“야 무슨···. 관둬라. 하여튼 맘에 안 들어. 우와~ 그래도 날씨 진짜 대박 좋다.”
하늘을 보며 골목을 지나가는 기철. 골목을 돌자 쪼그려 앉아 있던 형 하나가 다가온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어떤 조직에서 합숙한다는 소문이 도는 동네 형 봉인이다. 기철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이 확 구겨졌다. 형이 말했다.
“너 좆 같다고 생각했지?”
“아뇨.”
“아니긴 좆만 한 새끼가 거짓말은···”
기철이 재빨리 돈을 건넨다. 받으며 찍- 침을 뱉는 형. 기철이 재빨리 머리 위로 손을 뻗어 키를 재본다. 기철이 조금 크다. 어릴 때부터 봉인에게 돈을 뺏겨 온 기철. 이제 익숙할 만도 한데 여전히 비굴한 느낌이 든다. 그러자 봉인이 말한다.
“비굴하다고 생각했지?”
뜨끔 하는 기철. 또 정신없이 고개를 젓는다. 봉인이 말한다.
“새끼야. 돈이 뭐냐, 돌고 도는 거 아니냐. 니 주머니에서 내 주머니로 왔다가 또 편의점 사장 주머니로 가고. 그렇게 돌고 도는 거지.”
“그중에 뭘 사 먹는 사람은 형뿐이잖아요.”
“요즘 우리나라 경제가 안 좋아. 회사원이든 조폭이든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다 힘들단 말이야. 공무원 빼고. ···꼬우면 니들도 뺐든가.”
돌아서 가는 봉인형. 기철은 생각했다. 무스로 노란 머리를 문어발처럼 만든 것도 모자라서, 슬리퍼에 선글라스를 끼는 이런 거지 같은 패션은 어디서 배운 걸까. 씨름하다 머리를 다쳤나? 합숙소에서 배우나? 순간 형이 갑자기 웃짱을 까 보인다.
“야 좆만아. 요즘 나 살 좀 붙지 않았냐?”
하지만 봉인의 옆구리엔 갈비뼈만 앙상하다.
“아뇨?”
“그냥, 네. 하면 되지. ···하여간 또라이 새끼.”
피식 웃으며 돌아서는 봉인. 돈을 뜯긴 친구가 기철에게 투덜댄다.
“야 운동했다는 새끼가 어떻게 맨날 뜯기기만 하냐? 너 저거 못 이겨?”
“야, 넌 탁구 선수가 쌈 잘한다는 소리 들어봤냐?”
“아아! 내 돈 어떡해! 하여간 너 날씨가 뭐 어때? 재수 없게!”
투덜거리며 가는 친구. 그게 왜 내 탓인가? 기철이 화가 나서 버럭 소리친다.
“야. 됐어. 가. 다신 보지 말자. 알았냐? 아 열 받아!”
친구가 뜨악하게 쳐다보지만, 기철은 씩씩대며 가 버린다.
집 앞에 기섭이 군복차림으로 서 있다. 앞섶이 찢어지고 얼굴이 벌겋게 부어있다. 기철이 묻는다.
“어? 형! 웬일이야?”
“···씨발.”
간신히 신음처럼 뱉은 욕 한마디.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다. 기철이 다시 자세히 묻는다.
“또 사고 쳤구나. 군대에서 부모님 모시고 오래?”
“아빠 회사 부도났데. 좆 됐다. 휴가 첫날···. 씨발.”
기철은 부도가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직감적으로 큰일이 났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순간, 집안에서 와장창 소리가 났다! 기철이 화들짝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