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동> 제 3화
쑥대밭이 된 집안. 역시 맞아서 엉망이 된 아빠와 엄마. 그리고 사내 넷이 보인다. 그 앞에서 대장인 듯한 사내가 떠들고 있다.
“우리가 무슨 자선사업간 줄 알아? 에라 이 사기꾼 새끼. 돈 내놔. 너 일부러 부도낸 거 아냐? 어떻게 할 거야 우리 돈? 그 돈도 애새끼 줄줄이 딸린 불쌍한 사람들 돈 한푼 두푼 모아서 투자한 거야!”
가만히 듣고만 있는 아빠. 기철은 맥없이 앉아있는 아빠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젊은 남자 셋도 까딱없다며? 남자는 힘이라면서? 쌤통이다. 사내들이 기철을 이상한 듯 바라본다.
“웃어? 넌 새끼야 뭐야?”
어이없다는 듯 사내 하나가 기철의 뺨을 거칠게 갈긴다. 짝! 소리가 난다. 죽어도 아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아빠의 눈에 다시 불똥이 튄다. 아빠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꺼져! 이 새끼들! 우리 집에서 나가!”
아빠가 사내 하나를 있는 힘을 다 짜내 벽으로 날려 버린다. 그러자 뒤로 물러서 있던 사내가 앞으로 쓱 나선다. 동그란 눈, 동그란 얼굴이 착하디착해 보인다. 몸을 낮추며 팔꿈치를 붙여 V자로 가드를 하는 사내. 머리 위로 솟은 팔 탓에 영락없이 피카추로 보인다. 한 번 당한 듯 겁을 먹는 아빠. 주먹을 내뻗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스트레이트가 날아와 작렬한다. 아빠가 맥없이 주저앉자 기철 역시 눈에 불똥이 튄다! 발끈하며 피카추를 밀친다.
“하지마!”
그러자 피카추가 원투 잽을 날린다. 순간적으로 탁탁- 쳐내는 기철. 피카추가 몇 번이나 주먹을 날리지만 계속 막아낸다! 흥미로워하는 피카추! 기철은 마치 탁구를 하는 기분이었다. 상대의 어깨를 보면 어디로 공이 튈지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다만 공이 아니라 주먹일 뿐이다. 페인트를 취하고 때려도 역시 막아내는 기철. 피카추가 균형을 잃고 휘청한다. 기회다! 팔을 치켜드는 기철! 하지만 동작이 이상하다. 왼손은 가슴에, 오른손은 어깨 뒤로 넘어가 있는··· 탁구 스매싱 자세다! 짝- 뺨을 맞긴 맞았는데 소리만 크고 충격이 없다.
피카추가 다시 V자 가드를 올린다. 기철이 피카추의 잽을 막으려 하자 이번엔 정강이를 찬다. 페이크다. 발차기 페이크에 스트레이트. 잽 페이크에 하단 차기가 연속으로 들어온다. 속수무책인 기철. 맞은 부위가 마치 몽둥이로 맞은 듯 아프다! 비틀대는 기철.
퍽- 퍽- 퍽-
이내 기철이 정신없이 맞기 시작한다. 피카추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집요하게 기철을 사정없이 밟는다. 아프다! 무지하게 아프다! 이 사내는 달랐다. 주먹이, 팔뚝이, 종아리가 모두 쇠몽둥이 같다. 하지만 피카추는 숨조차 거칠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기철은 고통과 무시무시한 공포에 마음을 잡아먹힌다! 굼벵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어린아이처럼 징징거리며 운다.
“그만해! 하지 마! 이잉- 제발··· 아프단 말이야!”
순간, 아빠가 몸을 던져 기철을 감싼다. 피카추의 매질을 온몸으로 막는 아빠. 그러자 다른 사내들도 발길질하기 시작한다. 다구리 당하는 아빠와 기철. 쏟아지는 발길질과 욕지거리. 매달리는 엄마의 울음소리····. 기철은 공포와 무기력함에 아이처럼 엉엉 운다. 아빠가 기철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괜찮아. 기철아.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다. 우리 새끼. 괜찮다. 괜찮아.”
“·····이게 뭐 괜찮아! 아프단 말이야 아빠! 히잉-”
사내들이 떠난 집. 가족 모두 아무 말이 없다. 참담한 표정으로 손에 묻은 인주를 닦아내는 아빠. 피떡이 된 꼴이 말이 아니다. 계속 울기만 하는 엄마. 아빠는 가족을 죽 둘러보고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엉망이 된 집 안을 살피고는 3월 달력을 북 찢었다. 그렇다 벌써 4월이었다. 아빠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빠는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
아빠가 마당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갔다. 그게 기철이 본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