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패션위크 백스테이지 촬영

by Mhkim




{난생처음 가보는 패션쇼의 스태프 사진사}

영화 섹스 앤 시티에서 보면 뉴욕에서 좀 있는 집 아낙들의 새해 이벤트 캘린더는 이월 초에 열리는 뉴욕 패션위크로 시작된다고 한다. 영화의 장면에는 최고급의 자동차 브랜드가 협찬하는 탑 디자이너의 쇼에 여전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잔칫집 구경 가듯 차려입고 나서는 하이클래스 여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때쯤이면 패션 잡지나 메이저 방송사의 뉴스룸에서는 올해의 가장 핫한 패션쇼를 매일 앞을 다투어 소개한다. 멋지게 차려입은 셀리브리티들의 레드카펫 향연. 마치 뉴욕이라는 도시가 추운 겨울의 긴 동면에서 깨어나는 듯한 시끌벅적거림이 내 기억 속의 뉴욕 패션위크였다.


그러던 내가 뉴욕 패션위크에 패션쇼 촬영을 위하여 뉴욕에 갔다.


현실은?

영화와는 아주 달랐다.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못 미치는 자그마한 쇼에 사진사로 투입되었다. 아니 사진 찍는 것을 허락받았다는 말이 맞는다. 소위말하는 신진 (이머징: emerging) 디자이너의 패션쇼였다. 사실 나 같은 초보가 마크의 워크숍에 내 돈 주고 들어가서 찍는 패션쇼가 혹시라도 으리으리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과대망상일 거라는 생각을 지금은 한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일 년 전. 여전히 어리바리하고 뭘 하는지도 잘 몰랐을 때였다. 게다가 패션쇼는 난생처음이었으니…


{디자이너 소개: Caroline Zimbalist}


캐롤라인 짐발리스트. 그녀는 바이오플라스틱이라고 이름 붙인, 식물에서 뽑아낸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칼러플한 색상의 화려한 화병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휘트니뮤지엄 기프트숍에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 후, 캐롤라인은 귀걸이나 목걸이, 팔찌등의 장신구를 비롯해 본인의 컬렉션을 자신이 파슨스에서 전공했던 의상디자인으로 확장시켰다. 식물에서 뽑아낸 천연염료를 사용하여 옷감에 손수 프린트를 하고 디자인을 하여 하나밖에 없는 의상을 제작하는 것이 그녀의 특징이다. 그 결실로 뉴욕 패션위크 중에 본인 브랜드의 쇼까지 기획한 것이었다.


(캐롤린의 대표작인 화병 중 하나. 패션쇼의 주요 아이템이었다.)


캐롤라인의 작품들은 공예와 패션제품의 지속가능성을 직접 구현해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많은 찬사와 주목을 받고 있다. 워낙 패션이란 게 쓰레기를 만드는 산업으로 유명한데 그녀의 작품들은 다르기 때문이다. 재생이 가능한 에코프렌들리 제품(renewable eco-friendly product)으로 약간의 집시풍을 띤 화려한 색상의 제품들이다.


어찌 보면 패션에는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재료의 친환경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이었던 미술계의 거장 마르크 샤갈의 작품과 오버랩된다. 오래전 엘에이 라크마 (LACMA) 미술관에서 열렸던 샤갈의 오페라 무대의상 전시회의 작품들과 너무도 많이 비슷하여서였을까? 나의 어렴풋한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고자 내 사진아카이브를 뒤적여 보았는데 생각보다는 만든 솜씨가 많이 달랐다. 또한 샤갈의 작품들은 친환경, 재생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1950-70년대의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이 가진 기운이, 분위기가, 색채가 샤갈의 무대의상들을 소환해 나올 만큼 내 시각으로는 비슷했다.


샤갈의 “마법의 피리 오페라” 무대 디자인과 의상, 1967 - 샤갈 특별전, LACMA, 2017


예술적으로 누구의 영향을 받았든 간에 2019년에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후 불과 몇 년 만에 자신의 컬렉션으로 뉴욕에서 단독 패션쇼를 할 정도로 빠른 성장을 해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자신의 작품을 손수 판매하는 상업적인 마인드까지 겸비한 아주 드문 케이스의 디자이너라 하겠다. 그림도 아무나 못 그리지만 장사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나 또한 지난 25년간 내 물건을 직접 파는 디자이너로 눈물 콧물 흘리며 배워서 안다. 쉽지 않다.


내가 뉴욕에서 참가했던 패션쇼 후 일 년 만인 2025년 초, 그녀는 포브스가 선정한 30 under 30 Artist and Style에 뽑힐 정도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 물론 당시의 나에게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디자이너의 이름이었지만 말이다.


역시 유명해지려면 뉴욕에 살아야 한다는 말이 실감 난 순간이었다.


{백스테이지 촬영기}



패션쇼가 열리는 날, 나는 약간의 들뜬 마음으로 첼시의 어느 갤러리 앞에서 마크와 세이지를 만나 제법 삼엄한 경비를 뚫고 이벤트가 열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에서는 벌써 모델들의 메이컵과 의상 착용이 거진 끝날 무렵이었고 스태프들은 런웨이 준비를 하느라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드레스코드는 까만색 상하의. 나 역시 스태프 사진사로 일하는 거라 까만색 옷으로 TPO에 맞추어 참석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제까지 보아왔던 패션모델 촬영 때와 비슷했고 스케일이 크다는 것만 달랐다. 여기저기서 헤어와 메이크업 디자이너들이 모델의 얼굴과 스타일등을 마지막으로 다듬어 주고 있었다. 나는 마크에게서 들은 모델들과 사진 찍을 때 주의할 점등을 숙지하였다. 첫째도 둘째도 그들과 사사로운 얘기는 하지 말 것. 개인적으로 그들의 연락처를 받아 직접 사진을 보내주지 말 것, 등등이었다. 모든 것은 우리의 프로듀서인 세이지를 통해야 하고 독자적으로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 이곳에 참석하는 모델들이 겉으로 표시는 안 하지만 서로 좀 더 좋은 사진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 그들에게 휘둘리지 말라고 미리 귀띔을 해 주는 것이었다.


겉모습의 아름다움을 위해선 뭐든 한다.

패션 사진을 찍으면서 알게 된 것들은 이 분야의 경쟁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것.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는 책 제목이 (영화보다 책이 먼저 나왔다.)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크게 보면 어느 분야나 잘하려면 경쟁의 구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질은 같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젊었을 적에 일했던 실리콘 벨리는 기술 경쟁의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 패션은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에 목숨을 거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기업의 문화는 리더가 정한다고 첨 보는 디자이너인 캐롤라인은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어른스러웠고, 차분했고, 자신의 모델들을 잘 다스리고 있었다. 그녀의 침착함이 인상적이었다.


패션쇼 준비과정에서 처음 만났던 모델. 그녀의 의상과 캐롤라인의 화병이 완벽한 매치를 이루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모델들의 파안대소하는 모습에서 긴장감보다는 쇼를 즐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리더의 자질 때문인 듯.


모델들의 워킹 연습


다이어트를 목숨 걸고 하는 패션모델들도 쇼를 앞두고는 맘껏 먹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촬영이 끝날 때쯤, 군것질 거리를 찾던 마크가 “얘네들도 배가 많이 고팠나 봐. 남은 게 하나도 없네.” 하며 웃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번 패션쇼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사진 두 장. 내 앞의 모델에게 “손으로 춤을 춰볼래?”하며 찍은 사진이다. 담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잘 찍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백스테이지를 떠나며…

이 워크숍에서 또 하나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모델 오디션에서 떨어진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그녀들은 따로 한쪽에 모여 앉아 자기들과 같은 오디션에서 선택받은 동료들의 워킹을 차분하게 끝까지 보고 있었다. 나의 눈에는 그들이나 뽑힌 친구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아마도 의상에 맞추어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게 다 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언젠가 이들도 패션쇼 모델로 뽑혀 이곳의 모델들과 같이 무대를 주름잡고 다니기를 바라며 그곳을 떠났다.



{워크숍 리뷰}


인사이더라야 가능한 Access

마크와 세이지와 함께 갤러리를 나오면서 세이지는 내가 평소 전통 공예나 오가닉 한 제품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를 캐롤라인의 쇼에 투입한 것이라 했다. 덕분에 나는 대중적인 매스미디어로는 알아차리기도 힘든 특별하고 유니크한 패션쇼를 경험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화답했다.


이런 식의 새로운 문물이나 기회는 그들과 같은 패션계의 인사이더를 통하지 않고는 존재 자체를 알 수 없다. 그래서 나와 같이 사진을 배우는 동료들은 “액세스: Access를 얻기 위해 돈 주고 배운다.”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 액세스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사진을 잘 찍고 못 찍고를 넘어서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는 이 세계를 알기 위한 연줄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배워가고 있었다.


프로같이 행동하기

며칠 뒤, 내 인스타 페이지에 백스테이지 촬영 사진을 올리며 캐롤라인을 태그 했더니 곧바로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시 찍었던 사진을 보내줄 수 있냐고. 난 세이지에게 전했으니 그리로 연락하시라 대답했다. 프로토콜을 숙지하는 것이 이럴 때 필요하다. 프로가 되고 싶다면? 프로 같이 행동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일 년 후

아래 왼쪽의 사진은 일 년 후 이 글을 쓰면서 내 눈에 들어와 (당시는 멋진 사진이란 생각을 못했지만) LFI라고 불리는 라이카 포토그라피 인터내셔널 (Leica Photography International) 잡지에 별생각 없이 출품했다가 덜컥 라이카 마스터샷에 뽑혔던 사진이다. 전혀 예상밖의 일이라 깜짝 놀랐었다. ”사람들의 보는 눈이 다 다르구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내 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해 준 한 장의 사진이다.




캐롤라인 역시 일 년 뒤인 FW2025 Collection을 찾아보니 작년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의 의상들을 선보였다. 일 년 전 컬렉션의 마크샤갈의 분위기를 완전히 떨쳐버린 그녀의 작품에서 디자이너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만 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뛰고 있었다.


(photo © James Emmerman)



카메라 기어:

라이카 M11 Monochrome + Noctilux-M 1.2/50 ASPH

라이카 M11-P + Summilux-M 1.4/35 AS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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