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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화가들은 자신의 자화상이 있는 걸로 안다. 고호 같은 경우는 36점이나 된다니 따로 모아 전시를 해도 될 거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들이 자화상을 그리는 큰 이유 중 하나는 힘들여 모델을 구할 필요도 없고 모델료를 아끼겠다는 이유 때문일 거라 한다.
하나 더, 나의 그때 그 모습을 기록해 놓고 싶었다. 사진이 젤 잘하는 게 기록이라…
사진공부를 대학원수업으로 여기겠다고 나에게 이년의 시간과 투자를 하고 일 년이 지났으니 대학원으로 치면 벌써 이 학년에 접어들었다. 어찌 보면 석사 논문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 마음 가짐을 다시 해보려고 인물사진 공부 겸 내 자화상을 찍어 보는 것이 좋을 듯했다. 아무렇게나 핸드폰으로 찍는 즉석 셀피가 아니라…
그래서 찍은 것들이 아래 보시는 사진들이다.
사실, 내 사진을 이렇게 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창피한 점이 없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용기를 내보았다. 좋게 봐주시면 좋겠지만 내 나름 배운 게 있어서 공유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우리의 워크숍에서는 프로듀서인 세이지가 시간, 장소만이 아니라 모델, 의상까지를 다 준비해 준다. 그래서 우린 그저 사진기만 들고 정해진 곳에 시간 맞춰 나타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혼자서 트라이포드를 들고 시애틀까지 가서 내 호텔방에서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면서 내 사진을 찍는 것은 완전 다른 차원이었다. 여간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내 렌즈의 최대 심도가 F1.2라 와이드오픈으로 렌즈를 열어놓고 내가 볼 수 없는 내 얼굴 어딘가에 초점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만 거리가 안 맞아도 원하는 곳에 초점이 안 맞아 다시 찍고 찍고 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괜찮나 싶으면 위의 두 번째 줄 왼쪽 사진같이 뿌옇게 나오곤 했다. 아예 핀이 안 맞는 게 당연지사이지 싶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모델들은 자신의 모습을 렌즈를 통해서 보지도 못하고 나만 믿고 렌즈 앞에 서있는데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담엔 모델과 사진을 찍을 때는 좀 더 많이 보여주고 좀 더 친절해야지 하고 다짐했다. 동병상련의 느낌은 내가 그 위치가 되어봐야 알게 되는 것 같다,
집에서 혼자 조명등을 앞에 세워놓고 여권 사진을 몇 번 찍은 적이 있었는데 이 사진만큼 편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사진들은 깨끗하게는 나왔지만 상업사진의 냄새가 물씬 났었다. 인공조명이란 아무리 잘해도 인공적인 티가 난다.
일 년 반 밖에 안되었는데 그동안 많이 늙어버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진들이었다. 그런 점들이 기록의 중요성으로 다가왔다. 여러분들도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잘 찍는 사진사를 찾아 본인들의 젊은 시절을 기념해 두시기 바란다. 나중에 보면 더 늙기 전에 찍어놓길 잘했다 싶으실 거라 감히 장담한다.
이 사진들을 찍었던 진짜 이유는 일 년 동안 사진을 찍고 연말에 찍는 사진과 비교해 보고 싶어서였다. 뭐가 달라지고 뭐가 향상되어 있을까 솔직히 궁금했다.
어땠는지는 마지막 편에서…
위의 사진 역시 트라이포드 세워놓고 찍은 나의 셀피이다. 포틀랜드의 우리 집 내 방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어 무척 아름답다.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노을이 질 무렵에 혼자 나가 찍었다. 왜 그랬냐고 물으신다면? 사실은 남편이 예전에 선물로 주었던 근사한 모자가 하나 있는데 한 번도 제대로 못 써 보았다. 누구의 결혼식에나 쓰고 나갈만한 것이라… 요즘은 나이가 들어 결혼식도 거의 없다. (장례식이 더 흔하다.) 내 아들도 성년이 된 지 한참 지났어도 꿈도 안 꾸는 듯하다. 이곳도 아이들이 결혼을 잘 안 하는 것 같다.
이러다 그냥 죽을 때까지 모셔 놓을 것 같아 에라 모르겠다 이 모자 쓰고 사진이라도 남겨놓자 하며 셔터를 눌렀다. 사실 이런 팬시한 모자가 어울릴만한 나이는 한참 지나서 대충 얼굴은 가리고 찍는 편이 좋을 듯했다. 가끔 보면 웃기네 하는 생각은 들지만 잘 찍어 놓았다 하는 생각은 확실히 한다. 반만의 얼굴이라도 더 늦기 전에 그때 잘 찍었다.
여러분도 한 번씩 혼자서 멋 내고 제대로 사진을 찍어 보시면 어떨지. 아님 잘 찍는 사진사에게 부탁해 보신다면? 강추한다.
물론 내게는 사진 공부였다. 믿거나 말거나…
기어인포:
라이카 M11 Monochrom
Noctilux 50mm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