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사하라 사막은 아주 어릴 때 영화에서나 보았던 넓디넓은 모래사막 한가운데서 사고로 길 잃은 사람이 갈증에 죽어가는 장면이었다. 그 후론 최근에 보았던 Sci-fi 영화 Dune에서 본 햇볕에 반짝이던 끝없이 펼쳐진 모래언덕의 모습이나 그 와중에 무섭게 몰아치던 모래바람 정도이다. 그 외, 또렷한 기억으로는 사진기를 들고부터 일 년쯤 되었을까? 포르토 라이카 숍 앞에서 커다랗게 걸려있던 라이카 광고를 본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갔었던 사하라 사막의 같은 텐트촌에서 패션모델과 찍은 사진이었다. 당시는 그 장면을 보며 저런 것을 모델과 같이 찍을 때의 기분이 어땠을까? 얼마나 무지막지한 장비를 들고 가야 저렇게 찍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사막이란 아주 아주 먼 곳의 이야기였고 내가 그런 곳에서 사진을 그것도 패션 사진을 찍게 될 거라는 것은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아프리카대륙 북쪽의 모로코라는 나라의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한 ”사.하.라. 사막“ 에서 사람 모델과 사진을 찍었다. 그것도 전문 모델 뺨치게 늘씬하고 아름다운 스웨덴 출신의 젊은 여인과 함께.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꿈이었나 싶다.
(사진설명: 왼쪽은 사하라에 들어가기 직전에 묵었던 오아시스 마을의 호텔. 오른쪽은 사하라에서 1 박을 하고 아침에 4-wheel drive를 타고 사막을 나오면서 찍은 풍경)
2024년 사월 중순, 모로코로 떠나기 이 주 전, 내가 사는 동네인 오레곤주의 포틀랜드에서 일 년 전 포르투갈로 이주한 미국 친구 조운과 WhatsApp으로 모로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포르토에서 모로코는 비행기로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아주 가까운 곳이라 그녀는 한 달쯤 전에 남편과 투어를 다녀왔었다. 궁금한 사항들을 물어보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대화 중, 내가 갈 곳과 여정이 비슷한 것 같아 특히 관심이 갔던 사하라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물어봤다. 그녀는 사막의 새벽이 무척 인상 깊었다고 하면서...
… 갑자기 생각 난 듯, 자기들과 같은 여행의 팀원이었던 어떤 사진사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부부는 수수한 차림으로 카메라만 메고 다녀 별로 눈에 띄는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한다. 조운은 사하라의 새벽이 멋질 것 같아 아침 일찍 텐트를 나와 끝없는 모래언덕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 하나가 사막을 가로질러 빠르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고, 그 여자를 어떤 남자 하나가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니며 촬영을 하더라고. 누구지? 하며 다시 보니 그 사진사 부부였단다. 아주 다르게 보여 깜짝 놀랐다고 말을 끝내며 그녀는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나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별안간 내 머릿속에서 스위치 하나가 ”찰가닥“ 하고 켜지면서 “아하! 나도 거기에 가서 패션 화보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갑자기 평생 생각조차도 못해본 일이 내 머릿속에 활짝 펼쳐지며 꼭 해보고 싶은 마음이 뭉게구름처럼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나에게는 모델도, 의상도, 스케줄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
여행 준비로 정신이 없었던 두 주가 흐르고 나는 모로코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모두 잊었다.
(사진설명: 사하라에서 우리가 하룻밤을 지낸 곳. 텐트촌이라 하기엔 너무나 고급진 곳이어서 우리가 되려 놀랐었다. 각자의 방에는 화장실에 수세식 변기와 샤워시설도 있었고 아늑한 침대와 편안하게 늘어질 수 있는 푹신한 소파 너머로 붉은빛 모래사막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근데 건조해도 너무 건조했다. 입을 조금만 벌리고 있어도 목이 마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막이었다.)
중년이 넘은 남녀 사진사 열명, 그들의 배우자나 친구로 따라나선 여섯 명, 도합 열여섯 명의 여행 참가자들과 두 명의 여행 가이드, 전문 사진사 한 명. 모두 열아홉 명의 인원이 커다란 리무진 버스를 타고 11박 12일의 모로코에서의 여정을 함께했다. 현지인 가이드 둘과 나만 빼고 모두 백인일색의 그룹. 그래도 여자친구이며 네이처사진작가인 앤디와 동행한 여행이라 너무 낯설지는 않았다. 다들 나름의 개성과 교양을 겸비했고 전문 커리어가 있거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올바른 생각과 약간의 모험심을 갖춘 액티브하고 건강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영화 카사블랑카에 나오는 “Rick’s Cafe”가 없는 카사블랑카를 시작으로 “Pearl of the South: 남쪽의 진주”라는 전설을 가진 모로코의 아름다운 도시 마라케시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사진 설명: 여자사진사 4명, 남자사진사 6명, 나머지 여섯 명은 배우자나 친구들. 안내원 두명중 하나는 사진을 찍었고, 에리카는 이중, 가장 젊은 키 큰 여자. 웃기는 것은 여자사진사 4명은 죄다 혼자 왔다는 점.)
에리카는 우리 여행팀의 사진리더로서 내셔널지오그래픽 소속의 전문 사진작가이다. 그녀가 펴낸 모로코 사진집이 마지막 종착지인 페즈의 호텔 라이브러리에 비치되어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모로코와 극지방인 아이슬란드가 전문인 그녀는 사진을 찍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촬영 정보와 사진 찍기 좋은 장소들을 안내해 주었다. 스웨덴 출신으로 미국 사진작가와 결혼하여 어린 남매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했다. 큰 키에 날씬한 몸매에 전문 모델 뺨치는 이목구비를 갖춘 그녀를 만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사막에서 사진을 찍은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이틀째 되는 날 저녁 식사 중 내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일행과 담소하며 활짝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나의 “사하라 모델 촬영의 꿈” 이 퍼뜩 떠올랐다. 나는 무대뽀로 그녀를 쳐다보며 사하라에서 패션 화보 사진을 촬영하고 싶은데 내 모델이 되어 주겠냐고 다짜고짜 물었다. 뭔 일인가 하며 일행 모두가 고개를 돌려 우리 둘을 보았고 그녀는 크게 웃으며 흔쾌히 그러겠노라 답했다.
나: “정말이지?”
에리카: “응”
나: “진짜지?”
에리카: “그래”
에리카: “대신 모든 준비물은 네가 책임져.”
나: “오케이!”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우리가 묵던 마라케시 호텔의 기념품 가게에서 보았던 여름 드레스들이 생각났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뛰어나가서 그 가게로 향했다. 마침 문을 닫는 중이었는데 다행히 점원을 붙잡고 오 분 반 시간을 달라하고는 내가 생각했던 까만색의 원피스드레스를 찾아내서 선금을 쥐어주며 낼 아침까지 홀드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나왔다. 다음날 떠나기 직전 에리카와 다시 가서 그녀에게 드레스를 입어보라고 하곤 혹시 몰라 백업 드레스까지 장만했다. 촬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한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마라케시를 떠났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사하라에서 우리의 자유 시간은 딱 한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에리카와 나는 사막의 살랑거리는 모래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아래의 사진들이다.
우리는 사하라를 떠나와 페즈의 오래된 리야드 (Riad: 중앙에 정원이 있는 전통적인 아랍주택양식)에서 사흘을 묵은 후 귀향했다. 떠나기 전날 11일간의 모로코 여행을 마치는 페어웰 디너에서 가이드 압둘은 모두에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을 하나씩 얘기해 달라고 했다. 다수의 참가자들이 사하라였다고 대답했다. 나 역시 “사하라”. 그중에서도 에리카와 패션사진을 찍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주저 않고 말했다.
그 말을 하며 에리카와 나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웃었다.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 둘이 공동으로 제작한 ”사막의 장미“ 사진들은 우리 두 사람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
(사진 설명: 에리카는 전문 모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촬영을 진행했다. 사진사인 내가 보기에도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한국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말조심이 필요하다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그 말이 “꿈을 현실로 만든 씨앗”이었다. 친구의 우연한 말 한마디로 나는 상상을 초월한 경험을 한 것이다. 놀라웠다.
“그래, 사하라에서 모델사진은 찍었어?“
모로코 여행에서 돌아와 포르토에 사는 조운과의 통화에서 그녀가 내게 제일 처음 물어본 말이었다.
나: “에스!. 믿기지 않겠지만 진짜로 했어.“
조운: “오우 마이 갓!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나: “다, 네 덕분이야, 조운! 너무너무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을 너의 말 한마디가 이루어냈어.”
나: “말 이란 게 그렇게 중요해, 정말로!”
조운: “정말 그러네. 난 네가 진짜로 그렇게 하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네.”
나: “그러게 말이야. 고마워, 조운!”
나도 그런 씨앗을 심어주는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사진 설명: 에리카와 나의 사진 촬영. 고맙게도 여행에 참석했던 동료 사진사가 찍어 주었다.)
사진기어:
라이카 M11 Monochrome + Noctilux 50mm 1.2
라이카 M11P + Apo Summicron 35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