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일 년 만에 다시 방문한 포르토였다. 모든 것들이 익숙했다. 워크숍에 참가한 사람들도 한 커플만 빼고는 다 아는 얼굴이었고 하다못해 호텔을 나와 언덕길로 올라가는 길 모퉁이에서 잔돈을 구걸하던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까지도 여전히 같은 장소에 앉아 계셨다. 그녀에게 5유로를 건네주는 제임스의 모습까지 작년과 빼어 닮은 것을 보며 갑자기 1993년에 나왔던 빌 머레이 주연의 영화 “그라운드혹 데이: Groundhog Day”가 생각날 정도였다.
그러나 달랐다. 내가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특히 두 주 전 방문했던 모로코여행 덕분에 한 해 전에는 눈치 못 챘던 이 도시의 다른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종의 “connecting the dots: 각각의 독립적이던 점들의 상관관계가 보였다“ 고나 할까?
아프리카의 북쪽에 위치한 아랍 국가의 하나인 모로코를 다녀온 후, 무어족이 지배하에 있었던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포르토에서 아프리카와 중동문화의 영향을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우선은 아름다운 타일장식에서, 현란한 색채의 향연에서 유명한 올리브유에서, 그리고 견과류가 많이 들어간 음식에서 이곳이 아프리카와 멀지 않은 땅이란 것을 새삼 느꼈다. 실감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또는 천주교. 건물 양식은 남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의 양식이 공존해 있다.)
해변에는 두 명의 이십 대 안팎의 패션모델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E는 흑인인 듯 보였고 C는 남유럽 풍으로 약간은 북아프리카 여인의 모습도 풍겼다. 둘 다 개성이 있었고 멋졌고 아름다운 아가씨들로 어떻게 찍든 잘 나올 수밖에 없는 프로필이었다. 옷은 기본적인 무채색 위주여서 내 흑백 사진기에도 잘 맞았다. 그동안의 경험덕에 미리 준비해 갔던 하얀색의 반투명한 머플러도 도움이 되었다. 이래저래 한번 해 보았던 해변 촬영이라 훨씬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지난해 같은 해변에서 헤매던 생각이 나서 이번엔 좀 잘하고 싶었다. 뭔가 스토리도 겸해서 찍으면 좋을듯했다.
C와의 촬영에 임하며 그녀와 함께 해변의 백사장으로 향했다. 그곳 바위 근처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옆에는 파도가 치고, 모래사장의 까만 바위 위에는 반나의 하얀 피부의 서양인들이 편안하게 자연과 함께한 모습. 나름 이국적인 정취가 풍겼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마음엔 바로 한 시간 반 밖에 안 걸리는 두 주 전에 다녀온 모로코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모든 것이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꽉 짜인 그곳. 특히 여인들에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록 보수적인 곳. 그녀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서 여인들은 본인들의 자유? 권리? 이런 것은 없는 듯 보였던 곳. 갑자기 내 눈앞에서 이 자유로운 포르토의 해변의 모습과 잘난 남성들의 나라인 그곳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C의 종교가 무엇인지, 그녀의 에스닉 백그라운드 (ethnic background)가 어떤지는 상관하지 않고 그녀에게 내가 원하는 사진의 내용과 구도를 설명해 주었다.
나: 내가 진짜로 찍고 싶은 대상은 저기 바위 위에 배를 대고 엎어져 누워계시는 아저씨야.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 너의 모습을 찍는 척하며 저 아저씨가 모르게 그를 포커스 해서 찍고 싶어. 무슨 말인지 알겠니?
C: 무슨 말인지 확실히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웃으면서…
촬영 후,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아래 이미지) “바로 이것이었어.” 했더니 그녀가 살포시 또 미소를 짓는다. 나와 그녀의 눈이 마주치며 우리는 말로는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다 한 듯하였다.
사진에는 자신의 모습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관심은 일도 없는 반나의 엎드린 중년 남성의 모습과 머리부터 자신을 곱게 감싸고 조신하게 앉아있는 젊은 여인의 모습이 대비되어 있다. 이 모습이 무슬림의 나라인 모로코에서 내가 느꼈던 남녀의 차이였다. 그때 찍지 못했던 광경을 두 주 후, 포르토 해변에서 만났던 것이었다.
(그녀가 숄을 머리에 히잡 같이 두르니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훨씬 선명하게 보였다.)
테스트샷 중 하나.
참고로 모로코에서는 여인들이 허락을 해준다면 그녀들을 찍을 수는 있었지만 대중에게 그 사진을 공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내놓고 보이면 안 되었다. 그곳에선 찍을 수도 내보일 수도 없었을 이 사진은 나의 상상이 어우러진 광경이다.
“사진이 꼭 진실만을 전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일어났던 순간이었다.”
모로코를 본 후 포르토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달라졌듯이 지난 일 년 반을 사진을 찍으며 사진에 대한 나의 시각도 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