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아닌 모델의 인물사진

by Mhkim





카메라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

어려서부터 사십이 넘으면 본인 얼굴에 책임을지라는 말을 듣고 자라왔다. 그래서 내가 사십이었을 때 진짜로 내 얼굴에 나의 모든 것이 쓰여있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것도 같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았다. 사람의 얼굴만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세상에 남을 밥 먹듯 속이는 사기꾼이 존재할 수도 없을 테니까. 하긴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인물사진을 찍어 가다 보니 내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속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이다 아니다 정도를 넘어서 어떤 때는 그의 초초함, 느긋함 정도는 알게 된다. 물론 전문 모델들은 연기자와 같아서 그들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포기했지만 그래도 그가 어떤 성품을 가졌는지 정도는 알아차릴 수가 있다. 특히 포르토의 경우는 워크숍의 반인 사 박 오일을 기숙사같이 한적한 빌라에서 지내며 같이 숙식을 해결하는 관계로 참가자들과 스태프는 훨씬 친밀해진다


게다가 그들의 인물사진을 한 번쯤 찍어보면 그 사람의 모르던 성품까지 알게 되곤 하였다. 어떤 웨딩전문 사진사가 그랬던가? 결혼사진을 찍다 보면 이 부부가 평생을 같이 살 것인지 빨리 이혼을 할 것인지가 보인다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배워간 듯하다.


(빌라의 밤 풍경)


빌라의 식구들 사진

그런 뜻으로 한 참가자의 약혼녀는 우리가 가족 같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여기 그런 가족들 몇몇의 사진을 같이 셰어 하고자 한다.


마크 드 파올라: 그에게 제일 감사하는 것은 나에게 사진을 가르쳤다는 것보다 내가 맘 놓고 뛰어놀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첨으로 내 맘대로 할 수 있었다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내 맘껏 나 자신을 그리고 내 주위를 내 카메라 렌즈로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제지간이라 좀 어려운 사이이긴 해서 그의 포트레이트를 찍어 본 적은 없었다. 이건 대상의 허락이 필요한 사항이라. 그래도 포르토 두 번째 방문에서는 한 이 년쯤 알고 지낸 후라 용기를 내서 내 모델 (subject)가 되어 주겠냐고 물었더니 순순히 허락해 주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다. 그래도 마크는 마크. 이 사진에 보면 그의 표정에서 쉴드 (shield: 보호막)를 친 것이 보인다. 그는 여간해서는 상대방에게 속마음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처음 사진이 젤 맘에 든다. 그의 약간은 우수에 찬듯한 부드러운 면이 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줄 두장은 마크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본인이 사진사인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게 하는 포즈이다.


그와 사진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 항상 같이 다닌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면인 필름 디렉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칸느 필름페스티벌의 모자에서 그가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 보이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라이카 SL3와 NoctiluxM 렌즈는 고 화질의 사진과 영상을 같이 찍을 수 있는 카메라 세팅이다. 자신의 브랜딩이 철저한 사람이다.



앤 머리와 하비어: 참가들 중에는 먼 곳을 오는 거라 가끔씩 부부나 파트너들이 여행겸 함께 오는 경우가 있다. 이 팀은 남편인 하비어를 따라 부인인 앤 머리가 같이 온 경우였다. 부인은 벨지움 출신이고 남편은 엘살바도르 출신의 기업인이다. 두 사람은 미국에서 같은 대학을 다니며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 정말 금슬이 좋았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몇십 년을 같이 산 부부라도 서로를 쳐다보는 모습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특히 앤 머리는 마음도 넓고 개방적인 사고를 가졌고 교양도 풍부해 보였다. 어찌 보면 귀부인티도 났었다. 그러나 어떤 백인여인들 같지 않게 거만하지 않았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니 가끔씩 그런 여인들을 보게 되는데 정말 밥맛이다.) 내가 메리를 도와 식사를 준비하면 부엌에 들어와 셋이서 같이 일하곤 했다. 그녀가 수영장 옆에서 차분히 책을 읽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메리: 프로듀서 세이지의 엄마이자 우리의 먹거리를 담당해 주었던 셰프.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청순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생각했다. 그런 그녀에게 포트레이트 사진을 찍을까 했더니 순순히 허락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완전히 편안한 모습이 렌즈에 들어오기까지는 한 시간 반이 걸렸다 - 계단에 앉았다, 누웠다 등등, 여러 가지 포즈를 시도해 보았지만 그녀의 편안한 모습을 담을 수 없었다. 급기야 다 포기하고 정원의 바닥에 주저앉아 서로를 마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었다. 그녀의 긴장이 풀어지며 살그머니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그 순간을 담았다.


보통의 경우 일반인의 편안한 모습을 찍으려면 15분쯤 기다리면 되는데 그녀는 좀 많이 걸린 편이었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카메라 앞에 정식으로 서 본 적이 없어 그러리라. 한참을 걸려 찍은 사진에서 그녀의 온화한 눈빛을 담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두 사진이 거의 똑같지만 왼편 사진에서 헤어가 자연스레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런 게 선풍기 없이 찍는 야외 사진의 묘미 같다.


단 하나 아쉬웠던 것은 그녀의 실키한(silky: 비단 같은) 목소리를 담을 수 없었던 점이다. 메리는 유명한 앵커 다이안소여 (Diane Sawyer)와 같은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와 전문 성우를 뺨치는 깨끗한 악센트를 지니고 있는데 아쉽게도 그것은 카메라의 영역 밖이라서 가능하지 않았다.



제임스: 이 아저씨는 2022년 10월 밀란에서 처음 만났을 때 찍은 사진 (오른쪽)과 2024년 6월에 포르토에서 찍은 사진(왼쪽)을 같이 올린다. 나 역시 두 장의 사진을 이렇게 나란히 놓고 보기는 처음인데 조금 놀랬다. 서로가 얼마나 친분이 있고 없느냐에 따라 카메라렌즈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는 것을 확연하게 알려주는 사진들이라 생각한다. 얼마나 다른지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왼쪽: copyright (c) Mark Mann Photo)

존 크라이들러: 위 왼쪽의 사진은 오바마 대통령을 찍었던 유명한 사진작가 마크맨 (Mark Mann) 이 찍은 존의 사진이다. 라이카 커뮤니티에선 그의 영정사진이 되었다. 보시다시피 마크맨이 본 존은 내가 알던 존의 모습이 아니었다. 첨에는 누군가 싶었을 만큼 다른 사람같이 보였다. 오른쪽의 다정한 눈빛을 가진 존이 내가 기억하는 그이다. 이와 같이 인물사진은 작가의 눈으로 본 대상의 모습을 카메라를 통하여 보여준다. 그러니 어떤 작가가 찍었냐에 따라 같은 인물이라도 사진으로 보는 모습은 달라지기는 것이 당연하다고는 상상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첨 알았다.


나는 포르토에서 존을 찍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다음 해에 찍어야지 하면서 말도 꺼내지 않았다. 갑자기 그의 부고를 듣고 나서 그 말을 안 한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됐는지 모른다. 그나마 떠나기 전에 제임스와 셋이서 찍은 사진이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되었지만 다음에는 절대로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인물사진을 찍어가면서
카메라는 대상의 마음을 담는 것뿐이 아니라
찍는 사람의 마음까지 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마음을 닦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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