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을 엿보기 위해

by Mhkim




사진은 시간의 예술이다.

세상에 똑같은 사진도 없지만 똑같은 인물 사진도 없다는 말을 요즘 들어 알아가고 있다. 누가 내 사진을 또는 어떤 사람의 사진을 복사하기 전에는 말이다.


내가 처음에 사진을 찍으면서 ”흐르는 시간:Fleeting moment “를 잡고 싶어 사진을 찍는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근데 그런 말이 사실은 엄청난 오만이었다는 것을 요즘 깨닫는다. 진실은 내가 시간을 잡는 것이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루의 86400초 중에서 어쩌다 운이 좋으면 딱 그 장소, 그 시간에만 일어나는 일의 100분의 1초 정도를 내 카메라에 담는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나가버린 한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스튜디오에서 찍는 사진도 사진사가 아무리 조명과 세팅을 정확하게 해 놓아도 대상이 사람이나 생명일 경우 매 순간이 같을 수가 없다.


왼쪽의 파이널 컷을 찍기 위해 수도 없이 트라이를 했다 (오른쪽 사진들은 그중 극히 일부이다.) 그 많은 사진 중 같은 컷은 한 장도 없었다.


사진은 공연예술 (performing art)과 많이 닮았다.

아들이 전문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프로페셔널 비올리스트이다. 그 친구의 연습량은 매일 서너 시간이 기본이다. 그리고 무대에 선다. 그렇게 연습을 해도 오디션이나 청중들 앞에서 실수를 한다. 매번의 연주가 같지 않다.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클지는 상상도 안된다.


나는 사진을 찍기 전 까지는 평생 시각 디자이너로 살면서 혼자서 일을 해왔다. 아무도 안 보는 스튜디오에서 시간의 흐름은 상관치 않고 작업을 했다. 물론 한정된 시간 안에 결과를 내놓아야 하지만 데드라인에 못 맞출 것 같으면 잠을 조금 덜 자면 되었지 내가 이 시간을 어떻게 잡을까 하는 생각은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사진은 달랐다. 기회가 있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찍지 못하면 그날은 속된 말로 종 치는 거다. 사진사에게는 타이밍을 잘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게 그림이 될지 안 될지, 이 자리에서 조금 더 옆으로 가야 될지 말지, 아니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아님 아래서 위로 올려다봐야 할지 등등을 결정해야 한다. 게다가 야외에서의 촬영은 햇빛의 각도나 움직임, 강약까지 생각하며 찍어야 한다. 물론 모델의 얼굴만이 아니라 프레임에 들어오는 전체 모습도 감안해야 한다. 그때 그 순간의 퍼포먼스를 머릿속으로 빠르게 스캔하여 가장 좋은 타이밍을 맞춰, 사진기의 세팅도 제대로 맞춰 잘 찍는 것이 사진사의 일이다. 아니, 본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비롯하여 많은 사진가들이 세팅을 다 해놓고는 마치 사냥감이 자기 그물에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포수같이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리고 순간에 맞춰 셔터를 누른다. 그래서 영어로 사진을 찍는 행위를 슈팅 (shooting)이라 하나보다 생각한다.


(사진설명: 아주 깜깜한 와인 셀러에서 왼쪽에 보이는 사진에서와 같이 천장에 뚫린 조그만 창에 들어오는 빛에 의존해서 찍은 사진들이다. 이 빛들이 이때는 이렇게 떨어졌지만 찍는 순간에도 조금씩 움직여서 모델의 얼굴에 조금씩 다르게 그림자가 생겼다.)


열심히 연습 또 연습을 해야 한다.

지난 오월 일본에 워크숍을 갔을 때 짬을 내어 일본의 노장 사진가를 만나 뵌 적이 있다. 그 유명하다는 다이도 모리야마와 같은 선생 밑에서 배웠다고 들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23년 파리포토에서였다. SNS로 알게 된 또한 연세가 지긋하신 미국 사진가 한 분이 내가 파리포토를 참관한다며 포스팅을 올렸더니 비로 답신이 오면서 자신의 일본 친구가 그곳에서 전시 중이라며 함 가보겠냐고 운을 띄웠다. 나는 부스 넘버와 이름 하나만 들고 무작정 그를 찾아가 인사를 하고 부스에 걸린 그의 사진을 빠르게 둘러보고 작가와 함께 셀피를 찍어 친구에게 보냈었다. 그의 뛸 듯이 좋아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저 나는 우연히 같은 공간에 있게 되어 별생각 없이 가본 것이데 말이다. 그렇게 알게 된 일본의 유명한 노장 사진가는 히토시 푸고 (Hitoshi Fugo)씨. 그를 동경에서 다시 만나 내 포트폴리오를 리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천황의 황국이 내려다 보이는 호텔 꼭대기 층에서 만난 그는 자리에 앉기 전 황궁을 내려다보며 “아름다운 황궁이 바로 저기 있군” 한다. 나는 그제야 “아, 이 경치가, 보통의 일본 사람들에게는 무척 감상적인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서로의 신변에 대하여 호구조사를 하고 (ㅎ) 사진으로는 프랑스와 더불어 세계 최고라 하는 일본의 사진 시장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내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었다. 답변은 “열심히 많이 찍으셔요.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잘 찍을 수 있게 준비되도록 하셔요” 하하하. 정곡을 찔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다음에 기회가 되면 내 포트폴리오를 또 보고 싶다는 말? 그럴 기회가 있을까 싶지만.


카메라를 악기 다루듯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수개월을 오디션 하나만 준비하던 아들이 하루는 ”저, 오늘은 하루 종일 악보에서 한 페이지도 아니고 두줄만 연습하다 종 쳤어요.” 했을 때가 생각났다.

세상의 모든 직업이 퍼포밍 아트일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서 만 시간의 법칙도 나왔겠지만 사진은 시각예술 중에서 가장 시간에 민감한 장르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 오백분의 일초의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엿보려면 내가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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